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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평점 :
문유석 작가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었다. [개인주의자 선언]과 [쾌락 독서]를 통해서 판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실히 무너뜨렸다면 이번 책은 본연의 전공을 맛깔나고 저자의 색깔을 확실히 입혀 어렵게만 느껴지는 법을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준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군의 지인 한 명만 있으면 사회생활이나 여타의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병원이든 법원이든 전화로 부탁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 지 모를 때 든든한 보험을 들어 놓은 것처럼 안심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법을 처리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고 당연히 과거보다 훨씬 더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이 법을 더 잘 이용한다는 불신은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법을 전공하거나 법 관련 일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 막상 법이 거론되는 사건에 휘말리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 정도의 선량함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사실 법이란 어떤 윤리적인 인간의 행동에 대한 기준에서부터 출발하여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9)”을 뜻한다.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 이것만큼은 어기거나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서로가 다른 성향을 갖고 있음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능하도록 정한 약속이기에 때로는 불만과 수용이 힘들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약속이다. 하지만 막상 그 애매모호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농후한 어떤 법 조문이 나의 상황에 적용될 경우에 ‘최소한의 선’이라는 이름에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서 우리의 억울함을 해소해달라고 청하거나 받을 벌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세세한 법률 조항이 아닌 헌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정의가 그냥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겪지 못했던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려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에 내가 공짜로 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때아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노예제와 노비제가 폐지되고 성평등에 대한 당연한 진리가 우리 사회의 문화 속에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떤 한 사람의 성격이 어떻든간에, 재물을 얼마나 가졌든간에, 출생성분이 어떻든간에 인간은 모두가 동일한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당연한 것임에도 존엄함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목숨을 건다. 나와 동일한 존엄함을 가진 누군가가 내 것을 빼앗아 갈까봐 말이다. 그 존엄함을 인정하고 누리기 위해 우리가 가진 자유를 언제든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최소한의 선’을 누릴 공공질서를 위협한다면 나의 자유에는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단순한 논리에도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과연 이 시대에 정의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정의라는 것도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염세적인 시선이 때로는 극단적 행동도 불사하게 만든다.
우리가 속한 어느 단체나 공동체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시선 속에서 불의함의 존재한다. 최종결정권자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런 불의한 선택에 동조하는 이들의 시류에 또한 분노가 넘쳐흐른다. 그럼에도 끈임없이 비판하고 질시하고 화를 내는 감정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의 글 속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답을 얻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관종’이다. 관심받고 싶어하고, 남들에게 관심도 많다. 인간은 탄수화물 중독 이상으로 인간 중독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탄수화물보다도 인간이 더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124)”
우리가 인간 중독으로 어차피 이 사회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전쟁이나 대량학살, 난민촌에서나 비로서 찾게 되는 가치가 아니다. 전염병과 싸우는 게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성소수자가 주로 드나드는 클럽에 누가 어느 날 들렀는지, 누가 언제 어느 모텔에 들렀는지까지 알 수 있도록 개개인의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이 아무 문제 없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마음.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하고 있다는 일을 알게 되고는 앞뒤 따질 겨를도 없이 ‘아유 어째! 그래선 안 되지!’하는 소리가 터져나오게 되는 마음. 학생들에게 점심 한끼라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해주되, 이왕이면 사춘기 아이들의 자존감까지 배려해서 누구든 돈을 내고 먹고 누구든 무료로 먹는지 알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보자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사회를 만든다.(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