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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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아 작가의 [밤이여 오라]를 읽었다. 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다뉴브, 블타바, 도나우 이름은 다른지만 모두 같은 강을 가리킨다. 같은 강줄기가 흘러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민족들이 부른 이름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프라하의 카를교 위를 걸으며 이 강 이름이 블타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재 개그처럼 ‘불타봐’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흐르는 강의 이름이 다뉴브이고 블타바와 같은 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아 정말 유럽은 큰 대륙으로 다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직관적인 깨달음이 다가왔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유럽의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남과 북이 분단된 나라라는 사실과 재미삼아 south or north? 농짓거리나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또한 마찬가지로 발칸 반도의 나라들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온 인종청소라 칭하는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이 1995년에 일어났다고 하는데, 당시에 그런 뉴스를 본 기억이 전혀 없는 걸 보니 누굴 욕할 처지가 아닌듯 싶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여전히 이들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지도를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비극적인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아님 부끄러운 일일까? 


이 소설의 주인공 변이숙에서 조한나라는 번역가로 활동하는 주인공은 마르코라는 사람의 책을 번역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집에서 머물며 발칸 반도를 여행하게 된다. 마르코가 알려준 앞서 언급한 인종청소가 벌어진 지역들을 방문하며 한나는 자신과 마르부르크에서 만나 사랑했던 기표를 떠올리게 된다. 한나의 고향은 제주였지만 소설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한나의 어머니의 아버지가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광복 이후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미군정의 허락과 서북청년단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상당수도 내륙의 감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한나의 슬픈 역사는 서역 반대편에 마르코의 삶에서 재생되고 한나와 기표가 안기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는 사건은 마르코와 나쟈가 모두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청하지 않는 가해자의 쓸모없는 유산으로 인해 갈등을 빚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소설 속에서 그려낸 망상이 아니라 불과 얼마전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만, 사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 쿠데타로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는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게 될 이야기를 전해줄 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만 들어야 하는 현실은 사뭇 인간이란 무엇인지? 결국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1차원적인 철학적 명제로 소급된다. 


“가늘게 숨소리를 내는 마르코 곁에서 세상은 고요했다. 테러는 이곳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쟈만 아니었다면, 마르코도 나도 파리의 테러 뉴스를 보면서 아침을 먹었을 것이다. 누군가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구나, 나는 거기 없으니 괜찮아. 값싼 동정과 연민을 보낸 후 각자의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사라예보에서도 그랬다고 했다. 

TV뉴스에서 세르비아군이 부코바르를 침략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을 때, 안락한 자신의 거실에서 그걸 보고 있던 사라예보의 평범한 시민들 대다수는, 아, 정말 끔찍한 일이야, 하고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예보는 그보다 더욱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나는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사진 한 장을 기억했다.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듯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사람들이 언덕 위에 비치 의자 같은 걸 내놓고 앉아서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 불꽃이 얼마나 뜨겁게 이글거리는지 캔맥주를 마시며 웃고 있는 사람들 얼굴이 번지르르했다. 그건 시리아에 포탄을 퍼붓는 장면이었고, 구경하는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SNS를 돌아다니는 사진에 붙여진 제목은 ‘나는 악마를 보았다’였다.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과연 그들만이 악마일까?(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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