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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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어부들]을 읽었다. 사놓은지 한 참이 지났고 심지어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 꽂혀 있었는데 갑자기 [어부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책은 아니더라도 촘촘한 줄간격과 글자 크기에 꽤나 장구한 이야기와 스토리에 몰입하기에 힘든 장황한 묘사가 잔뜩 있는 것은 아닐까 란 약간의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곧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는 지금은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고 이 소설 또한 나이지리아의 아쿠레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저자의 이름처럼 등장 인물들의 이름도 몹시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반복된 적응 때문인지 정겨움마져 느껴지곤 한다. 


사실 이야기의 큰 테두리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어부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어업에 관련된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저 아쿠레 마을의 어느 집에 사는 4명의 소년들이 그 마을의 미친 사람인 아불루의 광기어린 예언에 휩싸이며 일어나는 사건이 전부이다. 화자인 ‘나’는 벤저민이란 이름으로 벤이라 불린다. 벤에게는 이켄나, 보자, 아벰베의 3명의 형과 데이비드, 은켐 이렇게 두 명의 동생이 있다. 사건이 일어나는 당시의 벤은 12살 밖에 되지 않은 앳된 소년이다. 1990년대의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의 정치적, 시대적 상황도 저변에 깔려 있어 아프리카 대부분 나라에서 해소되지 않은 군부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과 불안정한 치한의 상황도 엿볼수 있었다. 벤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의 직원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곳으로 전근 발령을 받게 된다. 이야기의 화자인 벤은 아버지가 떠난 후 그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되었다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긴다. 


십대의 소년들이 다 그렇듯이 이켄나, 보자, 아벰베, 벤은 여러가지 놀이를 즐기다 아쿠레 마을을 관통하는 오미알라강에서 낚시를 하게된다. 조그만한 물고기를 잡는 것에 재미를 들린 소년들은 무려 3주 동안이나 부모님 몰래 낚시를 다니게 된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에게 들킨 소년들은 집에 들린 아버지에게 심한 체벌인 채찍질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아쿠레 마을에서 오미알라강은 저주받은 곳으로 여겨지고 그곳에 가까이 하지 말라는 터부가 있었다. 검색해보니 나이지리아는 이슬람교가 50%, 그리스도교가 40%인 것으로 소설에서도 벤의 가족들은 모두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목사의 권위가 상당한 것으로 나온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 제국주의 국가 시기에 식민지였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에는 당연히 성공회의 선교가 대단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켄나와 그의 동생들이 낚시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광인 아불루를 마주치게 된다. 그때 아불루는 분명 아무소리나 지껄인 것이겠지만, 아켄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이켄나는 그가 한 말들에 몹시 예민해지게 된다. 당시 나이지리아 사회가 교회를 다니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기도를 했음에도 상당히 토속 신앙적인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켄나는 아불루가 지껄인 말들에 휩싸여 사춘기 소년 특유의 반항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함께 방을 쓰며 단짝같았던 동생 보자를 무시하고 어머니에게 대들며 아불루의 예언에 심취하게 된다. 이후 보자와 아벰베 그리고 벤에게 펼쳐진 일은 그야말로 마치 늪에 빠지는 것처럼 불운의 천조각이 엉겨 계속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결과를 낳게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가족의 운명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내뱉은 아무말에 휩쓸려 망신창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들로 시작된 것이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 속에 꽈리를 틀고 누워 아주 조금씩 자라나 언젠가는 서슬퍼런 칼날로 누군가의 목을 베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나 새로운 쳅터가 시작될 때 동물들의 이름을 붙이며 이야기의 서막이 펼쳐지는 비유 부분은 저자가 가진 풍요로운 자연에 대한 재산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나는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 사람을 약화시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형이 그랬다.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수많은 것 -그의 평화, 행복, 인간관계, 건강 심지어 신앙까지 강탈해 갔으니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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