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밥 먹여준다 -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의 첫 고백
김하종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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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종 신부님의 [사랑이 밥 먹여준다]를 읽었다. 부제는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의 첫 고백”이다. 이제는 귀화하여 한국인이 된 신부님의 원래 이름은 Vincenzo Bordo 이다. 빈센조, 올초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제목이다. 이탈리아에서 빈센조는 드문 이름이 아니기에 우연의 일치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에 나온 빈센조는 멋진 슈트를 차려입고 화려한 액션으로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면, 또 다른 빈센조 하느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김하종 신부님은 사제복 대신에 앞치마를 두르고 매일 매일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최근에 밀라노에 스타벅스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해서 아마도 로마 이하의 남부 지방에 스타벅스와 같은 프렌차이즈 카페가 들어서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파스타와 피자의 나라에서도 맥도날드는 꽤나 대중적이다. 역시나 아이들의 입맛은 전세계 다 통용되는 것 같다. 어느 날 로마에서 맥도날드보다는 조금 더 고급진 버거킹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었다. 분명 내 앞에도 옆에도 여러 명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려는 찰나 갑자기 욕지기가 밀려들었다. 주문대 앞에는 나와 사람들을 갑자기 사라지게 만든 노숙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구토를 유발시키는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된 나는 앞뒤 볼 것 없이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람에게서 그런 끔찍한 악취가 날 수 있다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김하종 신부님처럼 하루 한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인 이들일 위하여 매일 800여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몇번이나 울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신부님이 노숙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빠뜨릴 수 없는 고백을 해야겠다. 열악한 시설과 언제나 부족했던 쌀과 음식도 문제였지만 나 자신도 문제여다. 안나의 집에서 봉사하는 동안 이상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강하고 역겨운 냄새였다. 금세 냄새 나는 지점을 알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친절하게 말했다. 

<옷이 조금 더러운 것 같은데 마침 저한테 새 옷이 한 벌 들어왔어요. 화장실 가서 목욕하시고 깨끗한 옷 입으시면 어떠실까요?>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따라왔다. 옷 벗는 것을 도와주는 순간 악취가 심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바지 벗는 것을 도와주다가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상처에는 구더기가 있었다. 보는 순간 토할 것 같았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잠깐 밖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돌아왔다. 하지만 살 썩는 냄새와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이 팬 상처를 보고 더 이상 참기가 힘들어 결국 토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근처에 사는 도움을 줄 만한 간호사에게 전화를 했다.(139-140)”


어떻게 마음수양을 해야만 그들을 보듬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115)”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빵이나 국수가 아닌 밥을 고집하는 이유는 안나의 집에 밥을 먹으로 오는 이들이 밥을 주는 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하니, 그 어떤 극도의 장애물도 배고픈 이들에 대한 신부님의 사랑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노숙인들이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루트리스(Rootless)라고 표현한 이유는 술에 취해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을 떠올리는 글귀에서 찾으며 숙연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신부님, 지금보다 더 망가질 수 있겠습니까. 살거나 죽거나 그게 그거예요. 죽으면 오히려 저한테는 해방이에요. 신부님은 고독한 게 뭔지 잘 아시죠. 모든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저같이 실패한 인생에게는 친구라고는 술 한 병뿐이에요. 이 술 한 병은 몸이라도 따뜻하게 해주잖아요.(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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