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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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님의 [장면들]을 읽었다. 부제는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이다. 읽는 내내 '이렇게 무식하게 살아왔어도 되는 것인가, 이렇게 무관심하게 살아왔어도 되는 것인가' 란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기에 전반적인 소식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지만 자세한 내용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분노유발지 처럼 읽고 나면 욕 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 오히려 멀리하는게 심상에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당신이 뭔데'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나라 언론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이 말을 들었던 배경에 대한 내용은 조금은 충격적이고 이 세상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1부에서는 '어젠다 키핑'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JTBC 앵커로서 보도했었던 굵직한 내용들의 전말을 알려준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어젠다 키핑은 저자가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전에 어젠다 세팅이 있었다면 어젠다 키핑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인 커다란 이슈를 단순히 기사거리로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심도있게 많은 이들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함께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의제의 다양한 방향을 보도하는 것이다. 사실 기존의 방송국 뉴스는 꽤나 큰 특종이 있다 하더라도 한달 이상 같은 내용을 주제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 다른 뉴스거리가 계속 발생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청률 또한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시작한 <뉴스룸>은 달랐다. 종편이 시작될 때 한 목소리로 욕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JTBC 뉴스를 사람들이 보기 시작했고, 마치 어떤 드라마의 인기처럼 뉴스가 재미있다는 말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뉴스룸>의 인기는 비단 저자와 같은 걸출한 앵커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들만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되었을 때, 예전처럼 그냥 뉴스거리를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 매체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공정성을 지니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공영방송의 시대가 지나 개인방송의 영역이 확장되어가면서 진실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한 내용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보내고 있기에 더욱 더 '어젠다 키핑'은 중요한 화두였다고 생각된다. 


2부에서는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MBC에서 JTBC의 앵커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더불어 그가 추구하는 보도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사실 어찌보면 진보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저자가 이미 보수 언론이다 못해 기득권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 조중동 중의 하나이자 삼성과 친족관계로 얽힌 방송국에서 과연 예전처럼 뉴스를 진행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고 보란듯이 JTBC의 뉴스는 중앙일보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세이에서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소제목으로 진보 성향의 TV 방송과 보수 성향의 신문이 사주의 전략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다름'이 축적된 결과를 어느덧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이란 '민주주의, 인본주의, 합리적 진보'라는 말로 정리한다. 언론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기에 그 방법으로 합리적 진보를 선택한 이유 또한 전해준다. 


마치 지난 10년 동안의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아주 예리하고 눈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너무나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준 교과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세태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언론인이 있기에 아직은 뉴스를 보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부패와 타락에 이르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면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며 방황하는 존재들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안정한 것이니

흔들리고, 방황하며 실패할지라도.

그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말합니다.(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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