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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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문진영 [두 개의 방], 윤대녕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손홍규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안보윤 [완전한 사과],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정용준 [미스터 심플], 황현진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띠지에 ‘블라인드 심사가 발견해낸 문진영이라는 낯설고도 준비된 이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나도 이번에 대상을 받은 문진영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여타의 소설도 그렇겠지만, 문학상 작품집에 수상작으로 나온 단편들을 읽다보면 뭔가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나보다 하는데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채기가 힘든데, 이어지는 문학평론가나 다른 작가들의 리뷰를 통해서 궁금증이 풀리곤 한다. 


대상을 받은 [두 개의 방]은 편집자인 ‘나’와 저자인 ‘그’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산책을 하자며 중간에 만나 술 친구가 되어가는 평범한 이야기의 흐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갑자기 ‘나’의 동창생인 은미가 등장하고, ‘그’는 이제는 철거되어 없어진 예전에 자기네 집에 ‘나’를 데리고 간다. 전혀 상관없고 어떤 교차점도 찾기 힘든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전환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 내가 알고 만났던 이들과의 관계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는 화인 ‘나’가 출근하는 길에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일한 사람을 보게 되고, 그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게 되고, 그곳에서 대학시절 썸을 타던 해옥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우연한 해옥과의 만남을 흐지부지 만들고 싶지 않아 각자의 업무가 끝난 다음에 다시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지만, 해옥은 ‘나’의 제안에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시 우연히 포장마차 안에서 둘은 해후하게 되고, 얼마 후에 ‘나’와 해옥은 고성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해옥과의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나’는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라는 정거장 이름의 기원을 알기 위해 시청 민원 콜센터에 전화를 걸게 되고, 해옥과의 추억이 담긴 강원도 고성의 도자기별 카페가 등장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지명들은 실제로 저자가 머물던 곳들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고성에 가면 도자기별 카페에 가보고 싶어졌다. 


대상작품보다도 내게는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이 더 인상적이었다. 화자인 ‘나’에게는 삼촌이 한 명이 있다. ‘나’가 어릴 때에는 곧잘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주던 삼촌은 어느 덧 지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자는 소설가가 되고 화자의 누나는 ‘나’와 함께 삽화를 그리는 작가가 된다. 삼촌은 소설가가 된 ‘나’에게 지루한 소설을 소개받고 주류에서 도태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삼촌과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지는 ‘나’의 아버지는 삼촌을 한심한 녀석으로 생각하지만 이복동생인 삼촌이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혼란에 빠졌을 때 삼촌이 놀러다니던 이웃마을 놀이터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동생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폭언을 던지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며 스스로가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꼰대의 전형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낭만적인 요소를 잃지 않고 있다. 남편의 무뚝뚝함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지쳐갈 때마다 삼촌의 다정한 말 몇 마디가 어머니의 삶을 구원하였기에, 어머니에게 삼촌은 덜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삼촌은 재력가 집안의 딸이지만 노동운동을 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희숙씨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며 삼촌이 희숙을 설득하여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후 희숙은 사라지게 되고 삼촌은 희숙을 찾아내어 동거를 시작하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노동자들을 구하다 희숙은 죽고 만다. 이후 삼촌은 지루한 소설을 읽으며 삶을 견뎌낸다. 


“삼촌은 콘크리트를 사랑했고 어떤 점에서는 운명적인 사랑이기도 했다. 콘크리트가 양생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삼촌 역시 무언가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탓에 삼촌은 오해를 받았다.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반응이 느려서 무심하거나 무정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의 눈에 비친 삼촌의 일부일 뿐이었다. 삼촌과 콘크리트가 진짜로 닮았다고 할 만한 부분은 콘크리트가 양생되는 시간보다는 그것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간과 관련이 있었다. 창고를 짓거나 담을 쌓을 때 흔히 쓰는 시멘트블록은 양생되기까지 닷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무얼 짓는 데 쓰더라도 상관없을 만큼 단단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시멘트블록이 단단해질 수 있는 한계치의 구십 퍼센트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닷새면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지만 나머지 십 퍼센트를 채우려면 삼십년 동안의 양생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삼촌도 그와 비슷해서 어떤 고통을 고통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기까지 열흘이 걸렸다면 그 고통의 최대치를 느끼기까지는 백 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유사성의 절정은 결국 시멘트블록이 대부분 삼십 년을 버티기 전에 재개발 등으로 사라져버리듯 삼촌 역시 그렇게 될 때까지 살수 없다는 데 있었다. 삼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백 년 이상은 못살 테고 삼촌이 죽는 순간 그때까지 삼촌이 겪었던 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마저도 구십오 퍼센트 정도에 멈춰 있을 거였다.(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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