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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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연 작가의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읽었다.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고, 아니 집 앞에 카페도 맘편히 머물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타국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은 배가되어 ‘플라멩코’라는 제목만 보고도 가슴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인 굴착기 기사 남훈 씨는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어 그동안 애지중지 해왔던 장비를 누군가에게 넘기기 위한 절차에 들어선다. 십년 넘은 중고이기는 하지만 그의 굴착기는 매트에 먼지 한톨 머물지 않도록 쓸고 닦아 깨끗이 유지되어 있었다. 또한 작업 중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튜닝도 잘 되어 있었다. 굴착기를 넘길 제대로 된 주인을 찾기 위해 매매자를 만나 이런 저런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남훈 씨는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처럼 보인다. 결국 남훈 씨는 굴착기를 넘기지 못하고 그의 인생 2차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남훈 씨는 굴착기를 넘기고 은퇴 후 계획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가 오래전 삶을 놓아버릴 정도로 망가져가다 다시금 생의 의지를 되찾으며 쓴 ‘청년일지’의 내용이 시작될 때인 것이다. 마치 버킷리스트처럼 남훈 씨는 ‘청년일지’에 은퇴 후 반드시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적어 놓았다. 
과제1.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
과제2.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낡은 속옷은 몽땅 버릴 것. 멋지고 깔끔한 새것으로 구입한다. 그다음 백화점에서 명품 정장을 살 것!
소설 속에서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해외여행이 가능해진 상황을 가정한다. 남훈 씨는 그동안 고생한 아내와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오래전 꿈이었던 언어학자를 포기한 자신을 떠올린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뭔가 독특한 언어의 전문가가 되고싶은 바람에 남훈 씨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과제3. 외국어 배우고 해외여행 하기.
과제4. 건강한 체력 기르기.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남훈 씨는 내친 김에 체력관리를 위해 플라멩코 교습소에 등록을 한다. 남훈 씨는 이제 굴착기 기사에서 행복한 노년 생활을 그리는 평범한 가장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실 남훈 씨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바로 지금 배우자인 아내와 딸 선아를 낳기 전에 이혼했던 전처와의 딸 보연이었다. 남훈 씨는 그동안 사느라 6살 이후로 만나지 못한 이제는 마흔이 나이가 되었을 딸 보연을 다시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행여나 그동안 애써 모은 돈을 보연에게 보상해줘야 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보연이 원망하고 분노하며 왜 이제서야 다시 자신을 찾아왔느냐고 따지지는 않을까란 고민에 휩싸인다. 

남훈 씨는 굴착기 기사를 은퇴하며 만나게 된 세 명의 청년들(굴착기를 넘겨줄 사람, 스페언어 강사 카를로스, 플라멩코 강사)에게 직접 만든 스페인 음식을 대접하며 보연을 만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남훈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내는 남훈이 딸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내와의 해외여행을 꿈꾸던 남훈은 그의 첫 스페인 여행을 30년 만에 다시 만난 딸 보연과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응어리진 딸 보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스페인 세비야 광장에서 멋진 양복을 입고 플라멩코를 추는 남훈 씨의 모습은 그동안 모진 삶을 견뎌온 남훈 씨와 그의 딸 보연의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해피엔딩을 꿈꾸게 만들어준다. 나이가 들어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괜히 잠잠했던 문제를 부풀리게 될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삶을 마감하지 전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숙제는 마음의 터럭을 말끔히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잘못한 일들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바로잡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용기는 그와 나를 분명히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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