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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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의 미래]를 읽었다. 부제는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공항에 가본지 참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공항에 가서 출국 수속을 밟고 보안 검사까지 끝나고 나면 단출한 몸가짐으로 면세점을 이곳 저곳 훑어본다. ‘아 이제 여행의 시작이구나.’ 낯선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을 안고 장시간의 비행도 기꺼이 무릅쓰고 이코노미석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기내식도 먹으며 슬쩍슬쩍 모니터에 표시된 경로를 살펴본다.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으로 초췌해진 몰골로 커다란 캐리어까지 끌고 나와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나서면 가장 먼저 낯선 곳의 공기와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바람냄새가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그 불안정이 주는 묘한 매력에 끌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빼앗기다 못해 생존의 위협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해외여행을 못가는 아쉬움을 토로할 때가 아니라는, 그런 배부른 투정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묵직한 현실감이 일상의 터전을 지키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이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반성의 시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의 궁극적 원인이 전세계적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방만하게 자연을 훼손한 결과라는 말에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테지만, 그렇다고 엎질러진 물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하게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가 변화할 수 밖에 없다면 기꺼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아니 오히려 변화의 선두로 앞장서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권고한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끊임없이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출근을 하며 매일 매일 조금씩 층수가 올라가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보면서, ‘저렇게 자기복제처럼 아무 개성없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도 분명 다 짓고 나면 엄청난 분양가가 매겨지고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비싼 가격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푸념처럼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그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되냐’라는 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작년에 생전처음 고층 오피스텔에서 지내보았다. 오피스텔 안에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어서 생활하기에 편리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막상 지내보니 엘리베이터 하나 타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특히나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분리수거를 위해서 1층 수거함으로 왔다갔다 해야만 하는 수고는 꽤나 큰 일거리였다. 가뜩이나 방이 좁은데, 코로나19로 이것저것 주문배달 받은 것이 많다보니 박스는 쌓여가고, 뉴스에서 그 박스에 행여나 바퀴벌레 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하루라도 저것들을 내 방 안에 놔두고 싶지 않는 오피스텔에 살기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온갖 잡다한 잡일들이 늘어나니 최신식 오피스텔에 사는 것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작년 봄에 이탈리아에서는 지역간의 봉쇄와 거주지에서도 쉽지 외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그들은 아파트 발코니로 나와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집안에만 있기에는 당연히 답답하고 불안했을테지만 그렇게 발코니에 나와서 서로가 안정된 거리를 유지하고 음악을 공유하며 심적 안정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이탈리아에 살 때는 그렇게 그 나라 사람들을 욕하고 하루 빨리 내 나라 한국으로 돌아가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그렇게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발코니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을 보니 갑자기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왜 그렇게 발코니 넓은 공간을 원하는지, 요즘 핫플레이스인 카페나 식당들이 루프탑에 있는 경우가 많은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변화시키고 결국은 우리의 문화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 길들어진 것들은 단지 말과 글로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말과 글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공간의 변화가 말과 글을 만들어낸 사람을 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계층 간 갈등의 일정 부분은 잘못 디자인된 공간 구조 때문이다. 현관 문을 열고 나오면 만나는 모든 공간이인도나 차도 같은 이동하는 공간이다.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공원도 없고 길거리에 벤치도 거의 없다. 앉으려면 커피숍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서울은 전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 숫자가 제일 많은 도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긴다. 돈이 많은 사람은 5,000원을 내고 스타벅스에 들어가고 적은 사람은 1,500원을 내고 빽다방에 간다. 이 도시에는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같은 도시에 20년을 살아도 공통의 추억을 가질 가능성이 적다.(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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