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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가 촬영이 끝난 후에도 주인공의 모습에 몰입되어 현재의 사진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특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일수록 실재의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다보니 나중에는 어떤 것이 정말로 자신의 모습인지 헷갈려 정신적인 혼란을 겪기까지도 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밝은 밤]을 읽으면서,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는 고백에서 아마도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단순히 상상속에 그려진 인물 만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이 그 인물들 속에서 함께 숨을 쉬며 그려진 것이기에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아니 소설의 마침표가 찍힌 이후에도 한 동안 지속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삼천과 새비의 기막힌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이 모진 시간들을 견뎌온 것일까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야기의 화자인 지연은 천문학을 전공한 전문직 여성이지만 바람핀 남편과의 이혼을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희령으로 도피성 이주를 하게 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그에 반해 간혹 등장하는 그 여성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무심하고 이기적이다. 지연은 희령에서 새로운 연구소로 출퇴근을 하며 이혼으로 받은 상처와 자신의 선택을 용인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려 한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하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 할머니는 어릴 때 열흘 정도 머물며 그리웠던 외할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할머니와 엄마가 무엇 때문에 오랜 시간 연락없이 지내온 것일까?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며 지연은 할머니가 지내온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할머니의 엄마, 곧 증조모와 증조모의 친구 새비 아주머니 그리고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 등 지연과 지연의 어머니 미선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지연은 할머니 영옥의 이야기를 통해서 증조모 삼천과 새비 아주머니의 오래된 사연을 듣게 된다.
지연의 할머니 세대는 지금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에 이르는 어르신들이기에, 지연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분들의 지난 여정은 감히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일제치하 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한 번 겪기도 힘든 엄청난 사건들의 연속은 삶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가족과의 이별을 앞당기고 오롯이 마음을 붙일 친구와의 생이별을 당연토록 했다. 지금 보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사회적 통념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대가 불과 100도 채 안된 과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 시대는 급속도로 변화되었다. 백정의 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하루 아침에 차갑게 외면하고 말도 붙이지 않는 사회가, 의도적으로 중혼을 하고도 뻔뻔하게 자신은 잘못하나 없다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남자의 호적에 딸을 올려야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남성주의의 사회가 몹시도 불의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한 시기를 견뎌냈기에 가능해진 현재의 자유와 권리에도 쉽게 감사하지 못하는 속좁음은 과연 그 시대의 불의함을 욕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소설에는 한국전쟁 외에도 일본의 원폭투하로 인해 피폭당한 조선인들의 억울함 죽음에 대한 내용도 언급된다. 영옥의 아비가 천주교의 순교자 집안 출신으로 백정의 딸인 삼천내가 일제 군인들에게 끌려갈 것을 걱정한 나머지 순교자 흉내를 내며 집을 떠나 삼천과 살림을 차리지만, 그가 보여준 아량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오히려 삼천에게 한 평생 자신의 관대함에 감사하며 살것을 종용하는 나약한 아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새비 아주머니의 남편은 그 시대에는 거의 보기 드물었던 여성을 존중하는 남성으로 처자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을 하다가 그만 피폭되어 돌아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삼천, 영옥의 남편은 아내를 외롭게 만들고 결국은 자기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들이고 지연의 아버지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소설의 말미에서 지연의 어머니 미선과 영옥의 대화에서 드러나게 된다. 결국 소설에 등장한 주인공 여성들이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내며 자녀를 키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의 사랑이 아니라 여성들의 연대 덕분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피치못할 환란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지연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우리 시대를 관통해온 인간됨의 성찰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또 다시 밀려온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14)”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