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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의자
사쿠라 모모코 지음, 권남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사쿠라 모모코의 [원숭이의 의자]를 읽었다. 띠지에 ‘일본 3대 국민 애니메이션’ <마루코는 아홉살> 작가, 사쿠라 모모코의 여전히 웃음 터지는 코믹한 일상! 이라는 광고 문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권남희 님이 번역했다는 걸 보고 구입했다. 웹서핑을 해보니 <마루코는 아홉살>은 지금 케이블 TV에서 절찬리 방영중인 꽤나 인기 있는 만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저자의 에세이가 3부작으로 한 번에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 2권에 해당되는 것만 구입해서 제대로 보고 1권부터 사서 볼걸 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원작은 무려 30년 전인 1992년에 나온 책으로 저자는 동시대의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충분히 작품을 남길 수 있을텐데 몇 년 전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도 띠지에 쓰인 ‘코믹한 일상’이라는 수식어를 충분히 붙일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유쾌했다. 코미디 작가를 했어도 대성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글에는 유머와 재치가 넘쳐났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보통 사람은 하나도 경험하기 힘든 이상한 일들이 그에게는 자주 발생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30년 전의 일상을 그리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과 사뭇 다른 배경이 연상되기도 하며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아쉽게도 일본의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사전 지식이 없으니 모든 부분을 공감할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모든 인류가 공감할 만한 소재들을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과 때로는 기인처럼 느껴지는 반응들이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인도 여행기는 정말로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호불호가 정반대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켜주었다. 아마도 당시에 일본에는 해외 여행기가 유행이었는지 대만 여행기가 히트가 되자 편집자는 저자에게 인도 여행을 권유한다. 인도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가이드 오아사(한자로 대마라고 쓰임) 씨와 함께 좌충우돌 인도 여행이 시작된다. 가이드가 인도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면 저자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뒤 한 마디로 학을 떼게 된다. “거리의 지저분함과 거짓말과 물건 팔기와 구걸에 심신이 너더너덜해졌다.(76)”고 표현했다. 이 외에도 애든 어른이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치질 이야기나 소변을 마시는 이야기는 폭소를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경험하는 소소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이런 게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은 소재들도 재미있게 풀어갔다. ‘이름 모르는 물건 사기’ 에피소드가 그러한데,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찾아보면 대부분 찾을 수 있지만 92년도만 해도 제목도 가수 이름도 모르는 앨범을 사기 위해서는 레코드 가게 점원에게 맞지도 않은 음을 흥얼거리며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을 사고 싶다고 물을 수 밖에 없었던 향수를 자아냈다.
이런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이어지다가 ‘이사오가 있던 날들’ 이야기에서는 감동을 훅 밀려왔다.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진심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라 그런지 저자의 고백이 고맙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만화를 그린다면 어린이들이 아주 많이 보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사오는 저자가 다닌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공부하는 친구였다. 그 나이 또래 애들이 조금 모자라 보이는 아이는 시비를 걸거나 놀리거나 했을 텐데 저자는 이사오를 처음 만난 3학년 때 “그날부터 이사오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172)”라고 말한다.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에서도 저자 옆에 이사오가 앉는 것을 반기며 ‘이사오, 내 옆에 잘 왔어’라는 마음 속 인사를 떠올린다는 것은 보통의 마음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졸업식 중에 교장 선생님께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넙죽 절을 하고 방귀를 두 번 뀌고도 태연한 얼굴을 하는 이사오지만 그가 남긴 졸업문집을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사오는 연날리기 대화에서 즐거웠던 추억을 썼다. 해변에 누워서 보던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연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자신과 물통과 하늘로 올라간 연과 물가의 돌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이사오가 쓴 글 속에 내가 잃어가던 것 전부가 있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비쳤다. 해변의 돌도, 물통도 그대로 비쳤다. 선택하지 않았다. 중립적인 감성으로 사물을 비추는 마음이 얼마나 얻기 힘든 것인가. 이사오는 언제나 모든 것에 중립이다. 거기에 이사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 있다.
나는 졸업문집을 펼친 채 울었다. 엉엉 울었다. 진심으로 이사오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사오의 에너지가 내 마음속 어딘가의 채널을 돌려줬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