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미 현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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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현 사진작가의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어느 사진작가의 참전용사 기록 프로젝트]이다. 올해 초 ‘유 퀴즈 온 더 블럭’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미 작가의 사연을 보게 되었다. 지난 몇 년 간 사비를 들여 전세계의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사진 액자를 선물로 받은 어떤 참전용사가 비용은 얼마나 되냐고 물었을 때, 저자의 책 제목이기도 한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는 내용에는 눈물방울이 맺힐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의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읽게 되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의 시기를 보낸 세대는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표어와 포스터를 학기마다 제출해야 했고,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는 한국 전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기념식 같은 것을 해마다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6월이 되어도, 6.25 당일이 되어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나 방송은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이제 전쟁을 겪은 세대는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이 되셨다. 아직도 남과 북이 대치중이고 징병제가 지속되어 엄청난 국방비가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우리와는 아주 먼 일처럼 느끼고 살고 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서 살다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굉장히 위험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곤 한다. 세상에 우리나라처럼 치안이 잘 되어 있는 나라가 드물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시중으로 보이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 상황은 너무나도 자주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심지어 북한의 도발이 일부 정치인들과의 협잡으로 악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잊을만 하면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빨갱이 프레임은 남과 북의 교류에 커다란 장애물로 남아 있다. 이런 악순환의 연속으로 국정농단 사건 이후로 태극기 부대가 극단적인 시위에 태극기를 흔들며 군복을 입고 행진하는 어르신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세대의 갈등은 얄팍한 수를 가진 이들에게 농락당하며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라미 작가님이 만나 전해주는 참전용사들의 각각의 사연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우리에게 자유의 시대를 열어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참전 용사분들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PTSD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한국 전쟁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저자와 같이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와 영국, 호주, 네덜란드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군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보며 저자가 말하려 했던 그들의 눈빛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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