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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손원평 작가의 [타인의 집]을 읽었다.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4월의 눈’, ‘괴물들’, ‘zip’, ‘아리아드네 정원’, ‘타인의 집’, ‘상자 속의 남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열리지 않는 책방’ 이렇게 8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지 또한 멋진 작품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소설집의 품격이 한껏 올라가 보인다. 하지만 수록된 단편들을 읽을수록 우리가 처한 현 시대의 상황이 참으로 녹록지 않으며,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어른이 되고 사회 생활을 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을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예상했던 그 나이를 훌쩍 넘겼음에도 오히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좁아지고 잦은 비판과 염세적인 판단으로 활짝 웃는 일이 비일상적인 사건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편의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각자 다른 사건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공통적으로 그들의 중심에는 어떤 집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삶이 영위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주는 일터나 나의 육신이 원활히 순환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입에 넣어야 하는 식도락의 만족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아무 걱정없이, 아무런 눈치없이 온전히 내 한 몸을 편히 누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 집이다. 그런데 그 편안한 집을 얻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처럼 주인이 누군인지도 모를 땅에다 철저히 고립된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움막같은 집을 짓고 산다면 모르겠지만, 도시의 인프라가 만족스럽고 어떤 위협이나 불안감 없이 안정된 삶을 취할 수 있는 내 소유의 집을 갖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특히나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립된 삶을 살고 싶은 강렬한 자존감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상으로 받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부모님이 나의 터전을 마련해준다면, 그 누가 쉽게 그 안락한 손길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러한 행운을 누리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태평하게 극소수의 이들이 누리는 안락함을 중산층의 표본이라고 내뱉는다. ‘타인의 집’의 주인공인 ‘나’는 세입자의 세입자로 쾌조씨와 계약을 맺고 화장실이 달린 안방에서 혹시나 이 안락한 계약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재화언니가 쿠키와 레몬청을 권하며 화장실을 함께 쓸 수 있느냐는 제안을 외면하자 싸늘한 관계가 지속된다. 설상가상으로 보일러가 고장나서 쾌조씨가 계약을 맺은 집주인이 집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게 되고, 나를 비롯한 희진, 재화언니는 세입자가 아닌 것처럼 꾸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쓰는 방은 쾌조씨의 방으로 급변경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돈내산 미니냉장고와 그녀의 유일한 사친 스타벅스 한정판 텀블러 20개가 들어간 박스는 생활가전 버리는 곳에 놓아두게 된다. 집주인은 집을 내놓아 여러 부동산의 비딩을 즐기며 돌아가게 되고 주인공이 자신의 방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물건을 찾으로 내려가보니 이미 냉장고와 텀블러들이 사라져버렸다. “환하디환한 햇살이 창밖으로 보이는 음울한 뒷산과 대조를 이뤄 광휘로 가득한 쓸쓸함을 빚어낸다. 풍경과 빛과 음악, 그리고 고독한 내 존재는 완벽을 이룬다. 절망과 비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도 있었지만 어쩌면 삶이란 꽤 괜찮은 건지도…. 머릿속의 생각을 맺기도 전, 두 귀가 쫑긋 선다. 반갑지 않은 소리가 한순간 모든 걸 망쳐놓는다.(136-137)” 타인은 내 삶의 구원자일수도 있지만 이렇듯 내 삶을 망쳐놓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내면의 어둠은 바깥으로 발설할수록 몸집을 부풀려 결국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영화는 학창 시절과 짧았던 직장생활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78)”
“영화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왜 귀에는 덮개가 없을까. 눈은 감아버리면 되고 입은 닫아버리면 되고 숨은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참아버리면 그만인데 귀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 걸까. 왜 의지로는, 자력으로는 단 한마디로 막아낼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나는 지금 손으로 귀를 막을 수도 없잖아.(85)”
“내 어깨 위의 무게감이 다만 근육의 피로감이기를,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덮치지 않기를, 불행과 우울의 악취가 스며들지 않기를.(170)”
“기본적인 예의와 사회성을 갖추고 때로는 억울함을 견디며 손해 보는 느낌을 묵묵히 참아 넘기는 것. 그것이 나 같은 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소리 없는 투쟁이다.(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