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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주원규 작가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를 읽었다. 소설을 읽기 전 내용을 살펴보면서 읽는 내내 참 힘든 시간이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피한다고 그러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마주해야 하는 의무감이 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그냥 소설 속의 마냥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나도 풍부하여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다며 독자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의 전황을 살펴봤을 때, 그리고 저자가 오랜 시간 가출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의 말로 추정해 볼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면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이 없는 무한한 죄악의 원천은 바로 ‘돈’이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와 무한 경쟁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용납되지 않는다. 재력도 능력이고 재능이라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부모의 부를 과시하며 급우들과의 계층을 나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소수의 이야기이기를 바라지만 그 정반대의 도저히 집에 머물 수 없는 아이들은 거리에 내몰리게 된다.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괴물로 여겨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알고 싶지 않아서 애써 외면했던,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온 이들의 잔혹사를 살펴야 했습니다. 무섭고 끔찍하지만, 더없이 푸르고 순수하기도 한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든 마주했습니다. 해부하듯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는 가족의 폭력과 학교의 방임, 성차별, 대중의 무관심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한국 사회의 폐단을 가감 없이 논의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작가의 말 중에서(13)”
“하지만 길 위의 아이들은 복잡했다. 예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들은 폭력과 범법의 세계에 노출되어 있다. 때론 잔인한 처세의 규칙을 사용할 때도 있다.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비열한 거리의 규칙을 몸에 익힌 아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포획하려는 유혹에 빠져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길 위의 아이들이 먹고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102)”
아주 오래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약육강식의 행태로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능멸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때에도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고 나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충분한 교육을 받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방법으로 약자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으려 한다. 약자의 생존을 돕는 것이 귀찮고, 나와 상관없고, 때로는 약자의 고통을 통해 행복함 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깔끔한 옷차림으로 하루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퇴근 장소로 삼는 신도림역에 위치한 24시 맥도날드가 새벽녘에는 길 위의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야생의 장소로 극변되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역시나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나 무책임한 어른의 삶을 무덤덤하게 연명해나가는 것이 이렇듯 부끄럽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