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평점 :
정우철 도슨트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읽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명화들을 남기고 떠난 화가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 폴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그리고 그림만 봐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진 화가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와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생의 마지막 모습도 그려진다. 생전에 유명세를 얻고 그림이 잘 팔려 생활고를 겪지 않은 화가도 있지만 대부분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시대를 앞서간 화풍으로 인해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비참한 생활을 한 작가들도 많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창조적인 이들은 대부분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과 책 등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시도를 선보이는 새로움을 원하지만 막상 그렇게 몹시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고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과 마주하게 되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 간주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활용하며 난도질을 서슴치 않곤 한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게 되면 그 낯선 것들이 주는 신선함에 사람들은 매료되어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만약 이 화가들이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그림만 그리며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자 했다면 아마도 지금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이들이 생전에 그림을 그리며 불과 100년 후에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엄청난 가격으로 매매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오래된 고전들을 작품에 대한 저작권도 자유로워져 다양한 출판사와 다른 번역가의 출판도 가능하고 원하기만 한다며 불후의 명작들을 누구나 손쉽게 집에서 읽을 수 있는 데 반해, 미술 작품들은 미술관처럼 공공 전시가 되는 작품들을 제외한 개인 소장한 작품들은 어쩌면 그 소장가가 죽을 때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기도 한다. 분명 명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져 화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책으로 프린팅된 흐릿한 화질로나마 명화를 접할 수 있고 화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모딜라이니가 열네 살의 연하 잔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감동을 더해 준다. 모딜리아니가 잔의 초상을 그릴 때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고(78)”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온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에는 예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눈동자가 선명하다. 이 작품을 보고 잔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83)”
또한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난 판화가 케테 콜비츠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유화가 아닌 판화를 선택하여 대량 생산을 하고 대중들이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한다. 콜비츠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판화로 만들고 전쟁의 비극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투사가 된다. 콜비치의 아들 그리고 손자가 전쟁에 참여하여 죽게 되는 비참한 일을 겪게 되고 나치에 맞서 평생을 투쟁하게 된다.
“만약 그냐가 살아 있어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그 밖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지를 다질 수 있을까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감상이 존재하겠지만 ‘자신의 삶과 재능으로 그저 개인의 만족만 추구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한 가지 질문만큼은 모두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에 이미 힌트를 주었던 콜비치의 말로 모범 답안을 대신해볼까 합니다. ‘나는 이 시대에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209-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