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이정은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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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플로리스트의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를 읽었다. Like-it 시리즈 8번째 책이다. Paris 라는 말만 들어도 에펠탑이 떠오르며 왠지 모르게 낭만이라는 단어도 연상되는데 더불어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 라는 제목이 붙었으니 그야말로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대체 하루만 지나면 금방 시들어버릴 꽃 같은 것에 돈을 왜 쓰는 거냐는 근검절약의 새마을운동 정신을 가진 사람도, 꽃은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을 축하하는 이가 전해준 꽃다발을 받게 되면 알게 된다. 아 꽃이 단순히 풀때기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공간과 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꽃장식은 있을 때는 잘 모르더라도 불필요한 지출 같아서 없애버린 후에는 꽃이 맡았던 영역이 꽤나 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딸이 엄마 폰 사진첩에는 볼게 없다며 투덜거리다 엄마가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오자 이번에는 분명 볼만한 게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살펴보지만 여전히 온통 꽃 사진 투성이라고 툴툴댄다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왜 엄마를 찍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엄마는 다 늙은 얼굴 뭐가 예쁘다고 찍냐고 이 꽃을 보라고 얼마나 예쁘냐고 나이가 들면 꽃들이 왜 이렇게 예쁜지 모르겠다며 아주 오래전 자신도 딸과 같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딸이 조금만 천천히 자신과 같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젊고 혈기가 왕성할 때는 스스로를 꽃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온통 또래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곤 했다. 그런데 서서히 사람을 둘러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세월의 변화에 상관없이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떨꾸는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봄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초여름을 알리는 매미 울음 소리와 더불어 울창해지는 잎사귀를 바라보며 독한냄새를 풍기는 은행을 밟을까봐 조심하며 노랗게 변해버린 인도를 걸으며 어느덧 앙상한 가지에 차가운 눈을 굳건히 견뎌내고 있음을 바라보며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우리의 삶을 그려보게 된다. 

저자와 같은 상황과 결정은 아니더라도 타지에서 공부하고 지내본 경험 때문인지 그녀가 보냈을 시간들이 적잖이 공감되며 그래도 그렇게 굳건히 지내온 삶을 이렇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음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모험과 새로움과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낸 어쩌면 지독히 견뎌왔을 시간을 세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저자 스스로 말했듯이 일상의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아온 이들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의 정체성은 그녀가 플로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도쿄와 파리에서의 유학과 이민 생활 적응기를 통해 일상의 변화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무모한 용기와 싱그러운 동기를 전해주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코로나 19가 마무리 되면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크로와상과 바케트의 거리를 마음껏 거닐고만 싶다. 

“파리지앵의 솔직함은 자유로움을 대변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 더 쿨하다는 인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도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면 거침없이 참견하여 의견을 낸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정치와 철학, 예술과 문화를 시작으로 주제를 막론하고 본인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이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오랜 역사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 감정선이 뚜렷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표현 방식은 ‘눈치 문화’에서 자라온 내게 부러움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주었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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