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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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의 [화재의 색]을 읽었다. [오르부아르]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에두아르 페리쿠르의 누이 마들렌 페리쿠르가 주인공이다. 전작에 비해 만만치 않은 벽돌책이지만 이미 등장 인물들을 어느 정도 알기에 금방 몰입이 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에두아르와 마들렌의 아버지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 장면부터이다. [오르부아르]에서는 에두아르가 꽤 부잣집 아들이구나라고만 추측했는데, [화재의 색]에서 묘사된 페리쿠르 집안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재벌에 해당되는 엄청난 부자였다. 거대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페리쿠르 씨의 장례식에는 대통령까지도 참석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엄숙한 순간에 마들렌과 이혼한 프라델 대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폴이 3층 유리창 앞에서 몸을 던지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할아버지의 관 위에 떨어진 손자 폴은 병원으로 실려가고 마들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화재의 색]에는 마들렌과 그녀를 둘러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로 아버지 페리쿠르 씨의 신임을 받았던 페리쿠르 은행의 권한 대행 귀스타브 주베르, 두 번째로 마르셀 페리쿠르의 동생이자 무능력한 국회의원인 샤를 페리쿠스, 세 번째로 마들렌의 시중과 말벗이 되어준 하녀 레옹스, 마지막으로 폴의 가정 교사이자 마들렌의 내연남 앙드레 델쿠르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 폴의 갑작스런 투신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마들렌은 장례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폴이 영구 장애를 입은 채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오로지 아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며 간절히 간호하지만, 도대체 왜 아들 폴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몸을 던진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주베르는 마르셀의 권유로 마들렌과 재혼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마들렌의 거부로 페리쿠르 은행의 거부가 될 것이라는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형의 도움으로 간신히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온 샤를은 마르셀의 죽음으로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되고 유언장에 그에게 남긴 유산이 얼마되지 않자 불같이 분노한다. 페리쿠르 씨의 유산은 대부분 딸 마들렌과 손자 폴에게 남겨졌다. 아들의 사고로 심약해진 마들렌에게는 레옹스가 항상 옆에서 큰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내연남이자 폴의 가정교사인 앙드레는 주요 신문의 칼럼니스트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갖고 있어 마들렌이 주선으로 페리쿠르 씨의 장례식 기사를 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폴의 투신으로 놓쳐버리게 된다. 


이렇듯 마들렌의 주변의 가까운 인물 4명은 마들렌이 아들 폴에게 집중하던 차에 그녀의 유산을 노리고 엄청난 배신을 하게 된다. 마들렌은 순식간에 거의 모든 재산을 잃게 되고, 옳긴이가 언급한 것처럼 ‘몽테 크리스도 백작’이 되어 하나 하나 복수의 장을 만들어간다. 주베르와 레옹스, 샤를과 앙드레의 몰락을 지켜보며 속이 다 시원해지는 개운함도 있었지만 이미 결론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에 전작과 다른 약간의 식상함이 느껴졌다. [오르부아르]에서 보여준 주인공들의 기구한 사연과 그로 인해 삶이 피폐해져가는 과정 중에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생의 기운들이 이어지기를 바랬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복수극이 펼쳐지는 전개에 더 중심을 둔 것 같다. 그럼에도 저자의 3부작 중에 마지막으로 [우리 고난의 거울]이라는 제목의 에두아르의 꼬마 연인 루아즈가 주인공이라는 작품이 기대된다. 원작은 출판되었던데 어서 번역본이 나오기를...


“당신의 소설을 통해 어떤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르메트르는 이렇게 답변한다. <깊은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는 소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개개의 소설들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활동입니다. 문학은 독자들의 세계관을 확장시켜 줌으로써 그리하는 것이죠. 나는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소설가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내 생각을 감추지 않으며, 내 작품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내가 전달하고 싶어 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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