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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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님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었다. 아직 배가 많이 부르지 않지만 임산부 표시 패찰을 가방에 단 분이 힘겹게 출입문 쪽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에 빈자리가 생겨 그분에게 손짓해 앉게 해 드렸다. 그분이 앉은 옆자리가 생기면 이제 내가 앉아야지 하는 찰나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내 바로 뒤에 붙어서 키가 작은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도 소근소근 용케 긴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임산부 옆자리가 비워지고 순간 바로 앉을까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뒤의 여성이 신경쓰여 가만히 있었더니 냉큼 그 여성이 큰 가방을 끌며 착석완료. 그 이후로는 빈자리가 생기지 않아 다른 노선을 타고 갈까 고민하던 차에 어느덧 임산부는 내리고 드디어 나도 편안히 앉아 뒷 이야기가 궁금했던 책을 펼쳤다. 평소보다 좀 더 집중이 잘 되 몰입하던 차에 갑작스럽게 눈물이 또르르 흐를 것 같아 잠시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혀 심호흡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사람들이 가득한 퇴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웬 남자가 혼자 눈이 벌개져 울고 있다면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을뻔했다.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버리지 못한 신발 상자 안에 남겨진 수많은 편지와 사연을 그 증거로 제출합니다. 또 당신이 머물던 집에 찾아와 굳이 당신의 흔적을 보고 싶어한 아버지와 어머니, 홀로 방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당신의 동생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병에 걸려 고통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은 절대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 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129)”

집으로 돌아와 남은 부분을 다 읽다가 다시 한 번 가슴이 출렁거렸다. 사람들을 많이 지켜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오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한 번 보면 오랜시간 잊히지 않고 트라우마처럼 남을 것만 같은 곳을 청소하며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알려준 김완 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눌렀을 피아노 건반의 소리들이 가족의 부재로 상실감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그립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친 밤에는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언젠가 냉랭한 태도로 입을 굳게 다문 내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던 아버지의 약해진 얼굴도, 물불 못 가릴 정도로 화가 나서 지르던 고함소리도,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파리한 손을 붙잡고 기도하던 유난히 짧고 두터웠던 손도 모두 생각난다. 
내 감정은 피아노 건반처럼 밝고 어두운 것, 기쁘고 서글픈 것으로 온통 뒤섞여 있다. 언젠가 어머니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날이 찾아올까? 자연의 섭리처럼, 청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밤의 장엄함처럼, 모든 왜소한 것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의 기억만이 나를 감싸는 그런 시간이 정말 찾아와 줄까?(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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