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온유 작가의 [유원]을 읽었다. 원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다정한 엄마와 아빠가 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생일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시작된다. 그날은 12년 전 화재로 사망한 원이의 언니 예정의 생일날이었다. 그리고 해마다 예정의 생일날에는 아빠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어떤 아저씨가 밤늦게 찾아온다. 이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것일까? 원은 TV에서 고층 아파트에 사는 어떤 꼬마들이 창밖으로 물건을 던져 길을 걷던 노인이 머리에 맞아 중태라는 뉴스를 듣게 된다. 그리고 원과 예정 그리고 아저씨와의 관계는 12년 전 11층 아파트에 살 때 발생된 화재와 연결되어 있다. 12층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던 할아버지가 다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밖으로 버린 것이 11층에 살던 원이네 집 베란다에 쌓여있던 잡지와 책에 불이 붙게 되었고 급기야 14층까지 불이 번지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 없이 어린 동생과 함께 집에 있던 예정은 도저히 현관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고 이불에 물을 적셔 6살 원이를 감싸고 창밖으로 던지게 된다. 밑에 있던 그 아저씨는 원이를 받아내며 그만 한 쪽 다리의 뼈가 다 부서지고 만다. 그리고 예정을 비롯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질식사로 죽게 된다. 원이를 받아낸 아저씨는 시민 영웅으로 추대받게 되고, 원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원이는 불편함 없이 친구들의 친절을 느끼며 학교 생활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원이가 점심 시간에 자기만의 아지트로 삼은 학교 옥상에 오르기 전의 계단 한 구석에 쌓인 책상에 머물다, 우연히 그곳에 오는 수현을 만나게 된다. 수현은 아무렇지 않은듯 굳게 닫힌 옥상문에 열쇠를 넣고 문을 열어 들어간다. 원이는 수현과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그녀의 동생 정현과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수현은 바로 원이를 받아낸 아저씨의 딸이었다. 원이는 수현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미묘한 마음과 갈등을 느끼게 되지만 이내 원이에게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원이 수현에게 마음을 열어 그동안 ‘이불 아기’로 살아오면 느껴온 불편함과 부담감 그리고 언니 예정의 삶까지 두배로 살아내야 한다는 내적 고통들을 서서히 밖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수현의 아버지 진석에게 드디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다. 아저씨가 자신을 받아낼 때 많이 무거웠을 거라고. 그런데 지금 아저씨가 자신에게 그렇다고. 원은 수현과 정현의 고향인 남해를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멋진 생일 선물을 받게 된다.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패러글라이딩에 매달려 하늘을 날며 비로소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247)”
“안톤 시거라는 인물은 동기가 없잖아. 왜 악인이 되었는지 같은 건 설명해 주지 않아. 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지, 어떻게 모든 순간에 그렇게 가차 없을 수 있는지 같은 것도. 근데 살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종종 있잖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영화에서는 시거를 사이코 킬러라고 부르는데 나는 시거 같은 사람은... 그냥 돌멩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 
- 돌멩이?- 
-교회 주차장에 깔려 있는 자갈 같은 것 말이야. 뾰족뾰족하고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것들. 그냥 그런 상태인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태인 거야. 거기에 내가 넘어져서 긁히고 베여도 화를 내는 게 무의미한 거야. 내가 돌멩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무의미한 거고, 돌멩이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인 거야.(269-2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