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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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영 님의 [아무튼, 산]을 읽었다. 부제는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이다. 아무튼 시리즈 29번째 책이다. 저자의 인생스토리가 다분히 묻어나는 산에 대한 사랑은 ‘거 어차피 내려올거 뭐하러 올라가냐’고 투덜대는 이들까지도 ‘동네 뒷산을 한 번 가볼까’ 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지리산에서부터 시작된 산에 대한 동경은 에베레스트 트레킹과 산을 전문으로 하는 월간지로의 이직에서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너로서의 역동적인 삶의 변화는 읽는 내내 가슴을 설레게도 숨차게도 만들었다. 진정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용기내어 선택하고 힘겹지만 견뎌낼 수 있었던 삶의 발자취를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표지에 그려진 산뜻하고 뭔가 끊임없이 힘이 샘솟는 듯한 말괄량이 소녀의 모습처럼 아마도 저자는 산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총천연색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각종 간식과 여러 필수품을 넣은 배낭을 두르고 심지어 오르고 내릴때 도움을 주주는 등산 스틱까지 손에 쥐고 왁자지껄 떠들며 단체로 산을 오르는 이들을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초반의 그런 활기찬 싱그러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앞을 가린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고지에서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없다. 학생 때에는 종종 산에 오르곤 했었다. 그런데 그게 나의 의지라기 보다는 주로 타의로 인해, 때로는 강제로 산행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지금처럼 등산복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한겨울에 월악산을 청바지에 솜잠바를 입고 산에 오른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 깡이었는지, 아니 무지의 소산으로 용감하기만 했던 것인지 무사히 내려왔다. 학부 졸업여행으로 설악산을 가서는 마치 밀린 숙제를 해치워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앞만 보고 올라갔다. 저자가 알피니즘(어떤 방법을 택하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등정주의)과 머메리즘(매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등반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에 대한 언급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가벼운 몸 덕분에 제일 먼저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 등산에 대한 아무런 생각과 고민없이 맨몸으로 올라왔던 터라, 정산에 오르고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먹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동기들이 올라올 것이고 금방 내려갈 수 있겠지란 생각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 동기가 올라오기까지 두 시간 동안 덜덜 떨며 주린 배를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 정말 조금만 더 기다려야 했다면 그 누군가에게 가서 먹을 것을 구걸했을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내려올때는 다리가 풀려 올라갈 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고 완전히 하산했을 때에는 기진맥진 그 자체였다. 그 많은 열량을 소비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쓰러지지 않은게 다행일지 모르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에는 산을 심하게 얕본 것이다.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50)”
“산을 처음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바라던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외부의 욕망이 아닌 내면의 본성을 따르며, 내 안의 순수를 지키며, 본연의 나를 인정하며, 그렇게 소박하게 위대하게 살아가는 것. 지금껏 그래왔듯 산과 함께. 내 안의 산에서, 내 바깥의 산에서 무한한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갈망하며, 산을 넘고 나를 넘어 더 크고 넓고 깊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날기 위해 나는 새처럼 언제라도 훌쩍 배낭 하나 메고서 오르기 위해 오르는 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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