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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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작가의 [카페, 공장]을 읽었다. 표지 그림이 아기자기한 4명의 소녀들이 시골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방치된 공장터에서 카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카페공화국이다. 지도앱을 켜고 주변 음식점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면 음식점 만큼이나 카페가 뜬다. 이제는 식후 커피 한잔이 공식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심지어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면서도 분위기와 맛이 좋은 곳에서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특히나 스타벅스의 인기는 엄청나서 요즘 서머 프리퀀시 적립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레디백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개장하는 스타벅스를 순례한다는 얘기를 들을때에는 나도 이제라도 스티커를 모아볼까라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인천에는 스타벅스가 부평역 앞에 하나 밖에 없었다. 어느 주일날 저녁미사를 마치고 후배와 함께 차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스벅 2층에서 만났다. 그때에도 빈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그 당시는 공부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수다를 떨거나 데이트를 하는 장소였다. 당시 즐겨 마시던 차이 티 라테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 둘이 있는 자리는 우리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무슨 남자 둘이 커피를 마시러 왔지 라는 시선처럼 여겨져 후딱 마시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커피 맛이 뭔지도 몰라서 매번 다른 걸 마시곤 했는데, 이듬해 커피의 본고장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커피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라고 주문을 해야 하는 커피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카페’라고 주문한다. 그 카페를 처음 마시면 더럽게 쓴 맛에 인상이 구겨지고 심지어 심장이 벌렁거리기까지 한다. 아니 대체 이런걸 왜 매일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마시는건가 의아해하던 나는 얼마 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카푸치노와 카페를 즐기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꼬르네또(크로와상) 빵과 아침을 먹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수없이 Bar(이탈리아에서는 카페를 보통 바라고 부른다)를 들락날락 거렸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신기하게도 다시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냥 간혹 카페를 가게 되면 이런 저런 처음 보는 음료들을 테스트하거나 추억의 차이 티 라떼를 마시곤 했다. 그리고 본당이 아닌 사무실 근무를 시작하면서 드립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티타임을 하며 회의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당시 허영만 작가의 [커피 한 잔 할까요?] 만화책에 심취하면서 각종 드립 커피를 위해 기구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더운물을 뜸뿍 머금은 커피 가루가 막 구워진 머핀처럼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른바 ‘커피빵’이었다. 커피빵은 물의 온도와 물 붓는 방식, 원두의 숙성도와 분쇄 입자 크기 등이 잘 맞아 떨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커피빵이 생겨나면 제일 맛있는 커피가 내려진다는 속설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커피빵과 커피의 맛은 별 상관이 없다는 과학적 반론도 있었지만 정이는 그저 원두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흡족했다.(88)”
나도 아침마다 직원들을 위한 커피를 내리면서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로 갈고 천천히 물을 내려 커피빵이 잘 만들어지는 날이면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사무실로 가서 함께 데워진 찻잔에 커피를 나누고 마시며 안부인사를 건네는 아침은 무엇인가 서로에게 활력을 주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이, 영진, 민서, 나혜 이렇게 4명의 시골소녀가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카페, 공장은 어이없이 문을 닫게 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소중한 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카페에 쓰는 돈이 아깝다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며 나누었던 무엇인가가 있기에, 그리고 그 카페에 머물며 정성스레 준비된 음료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렇게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구나’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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