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이나 작사가의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왜 ‘나를 숨 쉬게 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었는지를, 저자에게 일상적인 단어들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무미건조해보이는 일상을 견딜 수 있는 찰나의 행복을 잡을 수 있음을, 그래서 뒤에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제목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중가요가 주는 통속성에 위로받고 공감하며 사춘기를 보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예전에 그 노래들을 좋아했던 열정에 향수를 느끼면서 다시금 그 노랫말을 되새겨 보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도 어떤 노래의 전주만 나오면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 이야기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황금알보다는 그걸 낳는 오리를 찾아 곁에 두는 사람인 셈이다. 스스로 가장 축복이라 여기는 취미 습관이다. 이런 식으로 좋아한 이후로 나는 좀처럼 무언가에 쉽게 질리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만 반복적으로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피로도가 쌓이지만, 한 사람의 작곡가가 만드는 곡들은 그렇지가 않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나중에 알고 봤더니 다 한 사람이 만들었더라는 이야기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간증이 아니던가. 나는 여전히 윤상이 만드는 음악의 어떤 부분이 정확히 나를 자극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메커니즘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낱낱이 파헤칠 마음은 없다. 그가 만드는 음악은 단언하건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 그걸로 됐다.(126-127)”
내게는 이 책에도 지질함의 대명사로 언급된 윤종신 님이 그렇다. 고등학교 겨울 방학때면 하릴없이 도서관에 출근하며 지겹도록 들었던 윤종신의 초창기 앨범은 쓸쓸함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들어간 신문 열람실에서 또 하릴없이 삭삭 소리를 내며 신문을 넘기던 그 무료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데서 오는지, 아니면 그 지루하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혼자인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단지 그때로 마감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지 묻고 또 물었던 시절! 그렇게 나를 지금까지 위로할 수 있는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산해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리는 차 안에서, 갑자기 들어간 카페에서 그 노래들이 들려오는 우연한 상황들은 슬쩍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든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노랫말들에 새겨진 의미를 꼽씹던 추억이 떠올라 그러한걸 보면 쓸쓸함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어디서 또 우연히 내 기억의 노래들이 나올까 기대하며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본다.
“누가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혐오의 순간을 겪는다. 못나고 부족한 것들이 크게만 보이는, 멘탈 면역력이 바닥을 치는 어느 밤. 악플 잠복균은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올라온다. ‘어쩌면 그 사람 말이 맞을지 몰라’로 시작되는 자기의심은 대단한 속도로 혐오까지 달려간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외로운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악플은 그 얄궂은 시간 속에서만큼은 논리력을 갖는다. 나를 상대하는 검사가 끝없이 들이미는 증거처럼, 언제 본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아픈 말들이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듣는 일방적인 비난과도 마찬가지일테다. 비난을 듣고 나면 처음에 분개하고 방어하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 자꾸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게 되는 비난의 말들이 있다.(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