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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ㅣ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평점 :
한은형 작가의 [그리너리 푸드: 오늘도 초록]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3번째 책이다. 이번 음식의 주제는 초록을 연상시키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초록빛을 띠는 채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초록이라는 말에 담긴 싱그러움을 부르는 음식재료와 음식의 이야기이다. 읽다보니 한은형 작가는 허브 매니아라서 그런지 아마도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도 거침없이 잘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실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향신료가 들어간 근동 지역의 음식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왠지 이번 책을 읽다보면 나도 전세계 어디를 가서도 초록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들은 마구마구 잘 먹을 것 같은 마법을 부릴 것만 같은 만용을 부려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맛 보았다는 ‘스테이크 타르타르’는 과연 어떤 맛일지 몹시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8월의 파리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도 “민트와 쿠민의 조화가 기가 막혔고, 레몬의 산이 고기의 결을 조밀하게 바꿨음에 놀랐다. 그리고 고기의 결 사이로 다진 케이퍼의 맛과 샬롯의 새침함도 슬며시 드러났다. 이건 뭐랄까....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허브의 존재감이 가득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날고기마저 이렇게 상큼할 수 있나 싶고.(85)” 라는 평을 내놓는다면 분명 맛있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바냐 카우다(bagna càuda)’이다. “온갖 익히지 않은 야채를 갈색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어로 뜨거운 그릇 혹은 뜨거운 소스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생야채를 찍어 먹는 게 뭘 그리 특별하겠어 싶을 수도 있겠는데, 나한테는 어느 음식보다 특별했다. 안초비와 마늘, 올리브 오일이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되는 녹진한 연갈색 소스에 찍어 먹는 생야채는 내가 아는 야채가 아니었다.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요리라고 한다.(192-193: 청담동 ‘콩부인’)”
“한때 향수병을 앓았다. 2016년 여름, 베를린에서였다. 내가 베를린에 간 것은 7월이었는데 간 지 열흘도 안 되어 향수병에 걸렸다. 향수병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고, 내 증상이 보편적인 향수병과 얼마나 합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향수병이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눕고만 싶고, 그토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최근에 내가 걸렸던 병의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계절성 정서 장애. 겨울 우울증이라고도 불린다. 겨울에 주로 걸리는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그 증상이 내가 앓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북해의 영향을 받아 사무치는 바람이 불었던 베를린의 7월을, 내 마음은 겨울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자 몸도 7월의 베를린을 겨울로 느꼈다.(57)”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그럼 혹시 나도 그때 그래서? 2008년 6월 중순 베로나에서의 4개월차를 보내며 처음으로 주말에 혼자 당일치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학원 수업 시간에 나왔던 파도바에 있는 Giotto의 작품 ‘Cappella degli Scrovegni’를 보기 위해서였다. 숙소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날이 화창했기에 얇은 면티 하나만 입고 기차를 탔다. 그런데 1시간 후 파도바에 도착했을 때에는 갑자기 장때비가 내려 바지와 신발이 다 젖었다. 갑자기 덜덜 떨리는 추위를 느끼며 숙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다시 그 작품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젖은 몸으로 지오토의 작품이 그려진 작은 경당을 20분간 감상하고 나왔다. 작품 보존을 위해서 그 이상은 머물수도 없었다. 온통 ‘blu blu tutto blu’ 라고 외치던 어학원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는지, 비를 맞아서였는지 그 유명한 파도파의 안토니오 대성당도 둘러보지 않고 다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모든게 하기 싫어졌다. 어학 공부도, 입에 맞지 않는 서양음식도, 코쟁이들도 다 꼴배기 싫었다. 일주일 후에 모든 걸 때려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온갖 난리를 피우다 다행히 그 향수병은 조금은 어이없는 대화로 치유받았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6월의 이탈리아는 정말 아름답다. 오늘도 초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미 조금씩 향수병에 점령당해가던 나의 몸과 마음이 홀로 떠난 첫 여행에서 맞은 비로 심각한 추위로 돌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말에 affective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그 무한한 애정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