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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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다. 하루키의 아주 짧은 동화같은 이야기에 우리나라 이우일 님의 그림이 더해져 묘한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그냥 텍스트로만 읽는다면 10-20분이면 충분히 읽을 정도로 짧은 내용이지만, 하루키의 묘사로 만들어진 신기한 인물들을 쉽게 떠올리도록 도와준 그림 감상을 통해 양 사나이라는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상상의 나래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밤,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을 후후 불며 하루키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어떨런지? 양 사나이는 참 착한 사람같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성 양 어르신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도넛을 만들고 파느라 작곡할 시간도, 여유가 있을 때 피아노를 치며 악상을 떠올리려고 하면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찾아와 시끄럽다고 하는 통에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나흘 앞으로 다가오고 초조해진 양 사나이는 양 박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양 박사는 양 사나이에게 작곡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어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며,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 양 어르신 전기>에 따르면 성 양 어르신은 203미터의 구덩이에 떨어져 돌아가셨는데, 백분의 일로 줄여 구덩이에 빠지면 그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사나이는 집 뒤 공터에 구덩이를 파고 빠진다. 구덩이 속에서 양 사나이는 오른 ‘꼬불탱이’와 왼 ‘꼬불탱이’, 208과 209, 바다까마귀 부인, 부끄럼쟁이 그리고 양 박사를 만나게 된다. 양 사나이는 저주를 풀고 성 양 어르신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 수 있을까? 
하루키는 우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우물은 아니지만 구덩이가 나오고 주인공은 그 구덩이에 들어가 닥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최근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난데없이 구덩이 속에서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등장한 이데아가 나온다. 우물이든 구덩이든 땅 속 어딘가에 하루키 만의 이야깃거리들이 가득차 있나보다. 난 어디에서 그걸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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