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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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먼 바다]를 읽었다. 작년 작품 [해리]에 느꼈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작가들이 한 번쯤은 소재로 삼고 싶어했을 법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래전 국민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만큼 어머어마한 시청률이 나온 제목도 ‘첫사랑’이었다. 몇년 전 간호대 강의 도중에, 한 학기 내내 ‘사랑’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겠지만, 전혀 말랑말랑하지 않은 철학적 논의를 거듭하던 순간, 누군가 손을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질문인가?’ 반가운 마음에 말해보라고 했더니,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였다. 강의를 퉁치고 싶은 간악한 간계에 넘어가 줄까 하다가 정신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을 이어갔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이미호 로사가 미국에서 40년 만에 첫사랑과 다시 만나, 40년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을 고뇌하며 시작된다. 미호는 성당 고등부 활동을 하면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 요셉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만다. 요셉 또한 미호를 좋아하게 되지만, 미호는 가난한 사제가 되겠다는 열망이 강한 요셉을 하느님에게 양보하기로 결심한다. 미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독재정권을 비판하다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직장도 잃은 채 집에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미호의 엄마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모른 척 살아가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미호의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인지 병을 앓다가 죽게 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미호는 아버지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지독한 가난과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미호는 독일로 떠난 후 요셉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고 유학 도중 아이를 갖게 된다. 40년이 지난 후 우연히 요셉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아 미국에서 만남을 재회하게 된다. 미호의 동료 교수들은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각자의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미호는 연수 후 만나게 될 요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반전도 놀라운 사건도 없이 잔잔하게 진행된 이야기이지만, 살기 위해서 잊을 수 밖에 없었던 소중한 추억들에 대한 그리움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 준다. 
“누군가 그랬었다. 인간은 모든 것에 적응한다고. 환경과 고단함과 슬픔 어쩌면 매질까지도.(153)”
“만일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육체가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도 영혼만은 조금도 다치지 않아서 자신이 깃들어 있던 집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정돈하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상태로 매만지고 떠났다는 말일까? 마침 품격 있는 집 주인이 이사를 가기 전, 그 집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처럼?(173)”
“결국 추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상대를 대했던 자기 자신의 옛 자세를 반추하는 것일까.(208)”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250-251)”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그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버질(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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