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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저 펄펄 날리는 흙먼지가 모두 밀가루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의 이동 병원에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
는데, 알고 보니 그를 만나려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였다. 그럼에도 그런 강촌에서 전염병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록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2005. 11. 25. FRI. AM 12:12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한비야
며칠 전 강단에서 한비야 팀장님을 만났었다.
(그녀가 선생님대신 언니나 팀장님으로 불러달랬다)
때마침 이 책을 읽고 있던 때라 책속에서 그녀가 폴짝 뛰어
올라 내 앞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 '바람의 딸 지구 세바퀴 반'에서 처음 만났던
한비야. 그 때 월드비젼이라는 구호단체를 알게 했고 벽 한쪽
귀퉁이에 '월드비젼'을 적으며 내게 꿈을 갖게 했던 여자.
그 때는 그녀를 내 눈앞에서 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
었는데... 참...세상 살맛나게 하는 순간이다.
이제는 내 지도속엔 없어진 월드비젼.
그러나 그녀의 지도속에선 활기차게 바둥거리는 그것.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조건이다.ㅠㅠ
나도 집에 거울이 있는 사람이니 나의 객관적인 외모가
B+라는 거 잘 알고 있다. (너무 후한 거 아닌가..ㅡㅡ;)
그러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얼굴로 살고 싶다.
부모님이 물려준 이목구비 예쁜 얼굴이 아니라
밝고 환해서, 당당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
매사에 최선의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는 얼굴로 살고 싶다.
정말 예뻐 보였다.
방글방글 웃으며 정말 이 일로 인해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재잘재잘 말하는 모습이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고 예뻤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존경하면서도 약간의 자만심이
곁든 그녀의 말투에 약간은 거리감이 있었다.
실로 그것은...해도 해도 끝없이 예쁜 자만심이었다.
세계를 도보로 세바퀴 반을 돌고 이제는 자신이 좋아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신하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으니...
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그녀만의 사치라고나 할까...
현장으로 떠나는 자기를 붙잡고 다섯 살 난 딸아이가
또 어디 가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돌보러 간단다. 지금 그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하거든." 이라고 했더니.
그 딸아이가 눈물을 글써이며 하는 말.
"아빠. 나도 아빠가 필요해요."
어렸을 때 막연하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월드비젼.
그것이 나같이 나약한 조무래기들에게는 힘겨운 대상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이제서야 알았다.
마음만 있다고해서 되는게 아니었다. 자신의 거의 모든 생활을
포기해야하는 상황. 극과 극을 달리는 기후와 전염병.
타향해서 거의 모든 생활을 해야하는 외로움.
아직까지 그 무엇보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감히 손도
댈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던 것.
예쁜 새장을 포기할 수 없는 나로서는 절대로 동시에 두가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구제하고, 남을 위해 불 속에 뛰어든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막내누나. 난 지금 권투 시합중이야.
센 상대방 선수에게 잽을 많이 맞아 비틀거리다가
방금 정통으로 한방 맞아서 링 위에 뻗어 있어.
심판이 카운트를 하기 시작했어. 하나, 둘, 셋.
그러나 나. 정신은 놓지 않았어. 숫자 세는 소리 똑똑히 듣고
있어. 그러면서 힘을 비축하고 있지.
열 세기 전까지만 일어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때 일어나서 다시 싸우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막내누나. 지금 링 위에 누워 있다고 걱정하지 마.
열까지 세기 전에 꼭 일어날께.
한낱 동정심으로 주위에 손을 뻗어보려는 내 행동이
예쁜 새장을 포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결국 품위는
자기 존재에 대한 당당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통제력,
타인에 대한 정직함과 배려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