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다섯 번을 되뇌고 하늘을 본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
게임을 한다. 게임이 한다. 게임을 한다. 게임과 한다.
게임을 한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불을 끈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물론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도 그것을 끄는 일이다.
창이 없는 이 방에서 컴퓨터는 내 창이다.
거기에서 빛이 나오고 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이 나온다.
그곳으로 세상을 엿보고 세상도 그 창으로 내 삶을 훔쳐본다.
-2006. 10. 14. SAT. PM 11:05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담배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 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단편 소설 '흡혈귀'를 읽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동아리 토론 단편이었기에.
그런데 그의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담배를 피지 않아 그 느낌을 잘 모르겠지만
그의 말처럼
내가 그의 글에서 느끼는 매력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사진관 살인사건
-영화 '주홍글씨'의 바탕이 된 소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 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간.
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어.
흡혈귀
인간이 인간을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바람이 분다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위해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습니다.'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그가 경이로웠다.
킬리만자로를 오르기 위해
석 달 동안 새벽 신문을 돌렸다는 남자와 그는 무엇이 다른가.
또 나와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생각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왜 눈 덮인 정상에서 얼어 죽었는가.
아마도,
바람이 불어서였을 것이다.
마사이 초원에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어서
표범은 무료했을 것이다.
당신의 나무
나무가 무섭습니다.
나무가 왜 무서운가?
이곳의 나무들이 불상과 사원을 짓누르며
부수어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아니면 돌이 나무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한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한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이 뿌리를 내려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버린
한 여자에게 말이다.
네 몸이 그립다.
나무와 부처처럼 서로를 서서히 깨뜨리면서,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