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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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모든 기록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조선왕조실록』 은 어떤 왕도 열람할 수 없는 기밀문서였다. 자신의 업적을 후대 왕이 이어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록된 엄청난 양의 역사가 10권의 책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덕일 작가님은 이를 위해 무려 10년간의 구상과 5년간의 지필 활동을 했다고 하니 대단하신 것 같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인 1권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을 담고 있다.

고려 말기 상황은 원 간섭기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기황후』 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며 당시 상황을 그렸지만 역사왜곡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황후를 등에 업고 왕 행세를 부리던 기철의 최후와 공민왕의 개혁 이야기가 깊고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고려는 토지를 둘러싼 부패가 만연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해 매번 원상복귀되는 상황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성계는 토지 제도의 문제를 알았는지 후에 자신이 왕이 되고 나자 과전법을 실시하며 개혁을 이뤄냈지만, 이는 기존의 경정 전시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 새로웠다. 역사에서 승자였던 이성계가 자신의 눈으로 쓰인 역사임을 알게 해준 부분이었다. 그래도 누락된 토지를 조사, 기록하여 농민들의 울분을 털어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정도전과의 관계는 군신관계를 넘어 진한 우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명의 주원장이 정도전을 보내라 협박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지켜냈던 것을 보면 이들은 같은 꿈을 꾼 동지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가 2번의 왕자의 난을 수습하지 못한 걸 보면 왕과 아버지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이방원을 세자로 임명했으면 조선의 역사는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방원에 의해 북벌정책을 통한 황제국은 물 건너 갔지만.


만약 방원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북벌을 했다면 조선의 영토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주원장이 계속 조선을 경계할 정도면 가능성 있는 싸움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이 명의 위에 있지 않았을까?

이덕일 작가님이 조선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둔 것이 보인다. 역사를 좀 더 바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단 것이 좋았다. 드라마를 통해 관심을 갖긴 하지만 고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이 많아 왜곡한 역사관이 심어지기도 하니 앞으로 이런 콘텐츠들이 사랑받고 읽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란 없고,

미래를 언제나 그랬듯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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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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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모두가 편안한 세상에서.
아무도 그늘에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아무도 조롱받지 않는 세상에서.
혹시 내가 이상주의자냐고? 물론 그렇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여기에 만족한다는 뜻이니까. (p. 36)

 

44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페미니즘의 정의, 어디까지가 페미니즘인지를 알 수 있다.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이 '평등한 인권'을 위한 운동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평등을 말한다. 그 범주 안에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인종 등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아니란 점이다. 사회에선 남성과 이성애자, 백인과 비장애인이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틀을 만들어놨다. "~는 이래야 해"가 대표적이다. 이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튀는 사람 또는 목소리가 큰 사람, 물 흘리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배척받는다. 배척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코르셋이고, 최근 탈 코르셋은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나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허망한 노력과 시간을 벗어던지겠단 의미로 시작되었다.


 

폭력이 우리의 인격을 조각했다. 당신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은 크든 작든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폭력은 우리를 부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격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폭력의 손잡이를 쥔 그들보다, 우리가 정교하다. 우리가 미래에 가깝다. 우리가 옳다. (p. 46)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은 "왜 화장 안 했어?",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어머, 살찐 거 봐!", "쟤, 성형했네. 코봐" 등 언어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가장 많다. 이 모든 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 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로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여성에게 쏟아지는 말들이다.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몸의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남자들에게는 몸을 키우라고 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살을 빼라고 한다. (p. 68)

책에서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논한다. 위의 폭력은 여성에게 쏟아진다면 교차성 페미니즘은 이중으로 폭력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흑인 여성, 장애여성, 트랜스 젠더같이 오래전부터 차별받았던 두 부분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흑인 여성은 흑인이라서 일차적으로 차별받음과 동시에 여성이라서 이차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다.


 

포괄적인 페미니즘이 더 효과적인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행동이다 넓은 차원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이야기할 때, 모든 공동체가 서로 다르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공동체에 필요한 페미니즘 행동이 다른 공동체에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의 페미니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의 평등을 위한다는 것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최선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공동체에 약이 되는 것이 다른 공동체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종, 젠더, 계급, 성적 지향, 종교 등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 (p. 179)

 

 

책은 교차성 페미니즘만큼이나 페미니즘의 다양성도 중요하게 다룬다. 각 이해관계는 페미니즘 내에서도 존재한다. 궁극적인 평등의 목적은 같아도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만큼 장애나 성소수자는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생각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깊이도 다르다.  

그래서 목적이 같다면 하나의 방법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한다. 1000명의 사람들이 있으면 1000개의 페미니즘 방법이 있는 것이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대로 가다 보면 당연히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진취적인 방향을 위해선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의견차로 생기는 불협화음은 건전한 논쟁이다

 


고통받는 여성에게 타인의 시간과 인내와 이해와 연민과 공감과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두자. 상냥하고 호감 가게 행동해야만 그런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도 그만두자. 내가 호감의 규칙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사회가 그은 선 밖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고통을 숨기지 않더라도, 남의 호감을 사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에게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 (p. 127)



우리가 인권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과거에 내가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에게 숨죽이며 살라는 말은 죽으란 말과 다름없다. 이들이 최근 목소리를 낸 것은 주류세력이 자신들을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무시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소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수의 원칙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소수는 여전히 무력하다.

이 책은 계속해서 다양성의 존중을 말한다. 과거의 나에게 겁내지 말라며 편지를 쓴다. 44명의 사람 중에는 남성도 있다. 그는 남성으로 태어나 갖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휘두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말한다. 강요하는 자는 없다. 다만, 자신들이 선택한 이 길에 후회가 없단 걸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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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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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문학'이었다. 매번 새 교과서를 받자마자 가만히 앉아 모든 작품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수능 제도하에서 읽어내는 문학은 내 감상은 배제된 암호 같았다. 빨간 볼펜과 노란 형광펜을 들고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표시하며 숨은 뜻을 모조리 받아 적는 수업은 재미없었다. 특히, 고대가요·향가·고려 가요는 현재 쓰는 어휘로 쓰이지 않아 외워야만 했다.

이 책은 그런 재미없던 수업에서 탈피하도록 쓰인 책이다. 주로 배우는 필수 고전을 그림과 함께 배치하여 이 작품이 쓰인 배경과 이야기를 다룬다. 제망매가, 가시리, 황조가 등 익숙한 작품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었다. 주제, 성격, 형식이란 틀에서 벗어난 구성은 내가 오히려 학생 때 이 책을 접했다면 스며드는 공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 역사다. 그런 점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그 시대를 알아가겠단 다짐과 같다. 중학생 때,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을 다 사서 읽어내려갔던 적이 있다. 교과서에는 일부분만 실려있어 다음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고,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완성된 모든 부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직접 찾아내는 즐거움이 문학을, 국어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가 말할 테니 너희는 받아 적거라' 식의 수업이 줄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다 저절로 이해하게 되는 문학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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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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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대사이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헌법 조항이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건 각종 갑질로 인한 부당한 피해다. 국가는 이런 파렴치한 이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주지 못한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은 돈이 많으면 살기 좋은 나라”란 말까지 나온다.
    
국가는 국민이라는데 왜 국민은 행복하지 못할까? 여기 한 남자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 한국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이며 서울대학교를 나와 검사가 된 김강현’. 그는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 새 나라를 건국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국민이 국가 그 자체인 나라를 직접 만들고 싶어서, 그런 나라라면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은 김강현이 자라온 사회 환경을 빠르게 다룬다. 군부정권 시대부터 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었던 큰 사건들, 동네 친구들 삥을 뜯던 그가 어떻게 공부에 눈을 떠 검사까지 되었는지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검사 조직 안에 있던 그가 검사를 때려치운 이유는 검사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재판의 방향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검찰이 국가였다. 무고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법의 길을 갔던 그와는 달랐다

 

우리라고 규정된 검사들은 우리를 위하여 수사했고 우리를 위하여 담합했고 우리를 위하여 무마했다. 국민을 위하여 꼬리치고 국민을 위하여 용감하고 국민을 위하여 투철해야 할 검찰은 우리를 위하여 오로지 우리만을 위하여 복무했다. 한마디로 검찰은 쓰레기였고 검찰청은 쓰레기장이었다. (p. 137)

 

 

이후 JDZ(한일 공동 개발구역)에 새로운 국가 아로니아를 건설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치밀하게 준비한다. 시진핑을 만나 도움을 청하고 한국과 일본이 이 대륙붕 때문에 싸워 분쟁지역이 되며 점차 자신들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영세하지만 이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뽑는다. 1대 대통령이 된 김강현은 아로니아 국민들을 위해 힘을 쏟는다. 미국 잠수함이 영해를 침범하면 국민들을 최우선적으로 대피시킨 후, 그들을 격파한다. 자신들이 독립 국가임을 인정받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은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지만 이런 교육 제도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길 원한다. 모든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
 
국가란 이런 것임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은 이런 것임을 똑똑히 보여준다. 하지만 아로니아 공화국의 3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부인인 수영이 당선되며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수영의 공약은 아로니아를 없애겠다이다. 행복함을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억압이란 사실을, 국가란 국민을 종속시켜야만 존재하기에 종속되기 싫은 사람의 권리는 부정된단 사실을 수영이 일깨워준다.

 

그리고 10년 후, 어처구니없게도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국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밌고 신나는 국가든, 강하고 새로운 국가든, 국가는 스스로 존재하고자 국가 구성원에게 의무를 강제하고 책임을 부여하고 희생을 요구한다. 만약 국가 구성원의 의무와 책임과 희생이 없다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국가는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인간은 국가가 없어도 산다. 인간은 살았고, 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 ( p.415)

 

 

스스로 국가를 만든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국가가 있는 이상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제한받는 권리들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였다.
 
과연 우리는 국가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국가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과 자유가 버려지고 있는지, 인간은 국가 없이도 살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들처럼 필요해 만들었으면 필요에 의해 없앨 수도 있는 것이 국가가 아닐까? 상상도 못할 상상을 한 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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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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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홉 살 어린아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의 여성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28편의 소설로 재탄생되었다. 소설이라 말하지만 현실과 구분이 없을 정도로 우린 소설 같은 상황을 매번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 흔한 일이 더 이상 흔해지면 안 된다며 여성들은 거리에 나섰다. 미투 운동은 확산되며 이젠 참지 않겠다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여자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가장 가까운 여자의 모습은 엄마다. 누군가의 딸로, 결혼해서는 누군가의 아내와 며느리로, 아이가 태어나서는 엄마로,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할머니로 살아가는 우리의 엄마들. '누군가'란 타이틀이 앞에 붙어야만 그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엄마도 여자'란 말을 자주 말하면서도 사실 우린 엄마를 엄마로만 인식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사소한 집안일부터 나를 태어나게 했단 이유만으로 이미 불평불만의 대상이 돼버린 그녀가 '82년생 김지영'이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p. 90)라고. 엄마는 늘 저주처럼 말하지.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 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p. 51) 라고. 근데 진명 아빠,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p. 201) 라고 말한다.

엄마란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회 초년생의 그녀들은 생존을 위협받는다. 여자 혼자 자취하면, 어두운 밤거리를 지나면 위험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고성능의 방범장치나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청춘들은 취업난에 시달리며 비정규직, 인턴 등의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누울 방 한 칸 구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 여자의 집에 낯선 남자가 들어오려다 들킨다.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하자 고발한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까지 온갖 비난과 협박을 들으며 몇 년의 긴 싸움을 해야 한다. 처벌은 솜방망이다. 늘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내가 살 수 있는 현실은 소설과 같다.

여자가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비정규직들이 시위를 한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학생이 있다. 사드를 막기 위해 시위를 하는 할머니가 있다. 이는 불과 얼마 전, TV에서 뉴스에서 SNS에서 보던 일이다.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지만 여전히 부당함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참는 게 능사란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이제 정의는 나를 위해 투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분명 과거와 현재는 달라졌지만 나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는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담겨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중요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수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낸다. 더욱 크고,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해야 다수가 듣고 눈길이라도 주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이 여성 인권에 대해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처럼 어떤 책이, 음악이, 댓글이, 사람이 관심을 촉구할 수 있을지 지금은 모른다.


모르면서 당하는 것과 알면서 당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린 모르면서 당하는 쪽이어서는 안된다. 육십여 명의 그녀들처럼 이름은 모를지라도 그들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은 알려야만 흔한 일이 별일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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