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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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해서라면 참 할 말이 많다. 태어나자마자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평생 불려야 하는 것. 그렇기에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내 이름은 ‘오금미’다. 성도 흔치 않은데 이름은 더 특이해서, 살면서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받아 적기 어렵고 발음하기도 까다롭다. 또박또박 발음해도 사람들은 ‘근미’나 ‘금희’로 알아들었다. 


오랫동안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은 어느 나라 문자로 써도 마찬가지로 어렵고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하지 않으면 받아 듣고 받아쓰는 모든 이들이 다르게 알아 들었다. (p. 184)


학창 시절의 내게 이름은 총체적 난국이자 짜증의 원천이었다. 국어 시간에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이 나오면 선생님과 학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고, 걸핏하면 호명되어 본문을 낭독해야 했다. 훗날 지하철 노선도에서 ‘오금역’과 ‘미금역’을 연달아 발견했을 때는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주목받는 걸 즐기는 성향이라면 축복이었겠지만, 나는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내 성정과 달리 이름은 늘 타인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것은 늘 스트레스였다. 인생이 유독 안 풀리던 어느 날, 사주 카페에서 “이제는 쓰면 안 되는 불용 한자”라거나 “사주와 충돌하는 이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삶의 굴곡이 정말 이름 때문인 것만 같았다. 


한 존재의 삶은 거의 모두 이름과의 투쟁이자 불화였고, 그리움이자 서글픔이었다. (p. 8)


그러나 이름은 뒤고 숨고 싶을 때 핑계가 되어주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개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이름을 지키기도 했다. 내 이름의 진짜 속뜻을 알게 되어서다. ‘금처럼 귀하고 높은 자리에 우뚝 서서, 그 자리에서 너 자체로 아름답게 빛나라’. 할아버지는 손녀의 삶에 커다란 포부를 심어주는 축복을 담아주셨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순간 나는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름의 빈자리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 이름조차 없이 지워진 사람, 이름은 있으되 차마 불리지 못한 사람, 혹은 아무렇게나 막 지어진 이름을 가진 예술 작품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깊은 통찰로 재해석된다. 


이름은 그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발화의 도구이자 정체성이다. 또한, 이름의 뜻대로 앞으로를 살아가라는 예언적인 선언이었다. 나는 방황하는 인물들을 보며, 결국 타인에게 올바르게 호명당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보았다. 저자가 말하는 ‘이름의 점성’이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대한 지표인 셈이다. 


일일이 호명할 것이다. 이건 다시 쓰면, 나는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겠다는 다짐이다. 일삼아 조근 조근. 내킬 때마다 글씨로만. 왜냐하면 다시는 입 벌려 소리를 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들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을 테니까. (p. 85)


이름을 사랑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증오하며, 결국에는 기억하고 추모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내 이름에 얽힌 사연을 깊이 톺아본다. 그리고 소망한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름처럼 나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고 당당하게 위로 걸어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요즘은 종종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본다. 화면에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뜨는 것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완전히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내 특별함이 오롯이 나만의 외로운 무게가 아님을 다행스러워하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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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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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이 지옥 같던 사회 초년생 시절, <출근길의 주문>이 세상에 나왔다. '돈을 버는 게 이렇게 지옥 같다면 앞으로 남은 3~40년은 어떻게 버터야 하나' 막막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닮고 싶은 롤 모델은커녕, 실수만 보이면 이 잡듯 눈에 불을 켜던 이들뿐이었다. 아무리 일로 만난 사이라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인데 불협화음만 생겨 괴로울 때 이 책을 교과서처럼 신봉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개정판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어딘가엔 작가 같은 선배가 있겠지' 바라며 환상처럼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문장의 맥락과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는 연차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실수를 하고 일터에서 돈 벌기가 쉽지 않음을 실감하지만, 그럼에도 이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믿으며 읽는 이 책은 앞으로 여성 직장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짚어주는 듯했다.


작가가 말하는 핵심은 직장에서 소위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인 기대감을 버리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는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p. 75)는 말처럼, 친밀감에 기반한 신뢰가 아닌 자신의 능력과 자질, 적당한 거리 두기와 분명한 의사표시를 통해 입지를 다지고 부당한 처사에 맞서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길 필요가 없다. 곧은 마음만으로 버텨내기 어려운 곳이 사회이고, 우리는 때로 휘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국 이 거친 일터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의지뿐이다. 타인이 나를 송두리째 바꿔주고 성장시켜주는 판타지를 버릴 때, 비로소 주체적인 생존이 시작된다.


다종다양한 사람이 모인 직장에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빌런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직하더라도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 시선을 바꾸어 직장의 빌런들이 나의 파괴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자리 잡지 않도록 나만의 비책을 세우거나 숨구멍을 만드는 것. 부정적인 피드백에 갇혀 허우적거리기보다, 다음으로 넘어가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항상심은 이런 것이다. 우울증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무엇이든 그러저러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잘 달래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p. 180)


특히 여성이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기 어렵기에, 책임을 지는 자리에 나와 같은 '그녀'가 존재한다는 건 나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여전히 책임은 피하고 익숙한 실무만 하고 싶은 주니어이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 연차가 쌓여 말에 힘이 실리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면, 과거에 겪었던 부당함을 아랫사람에게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가뜩이나 나를 어려워하는 부하 직원 앞에서 '나도 힘들어!'라며 나약한 소리를 하는 선배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성이 분명하게 의사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나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충분히 암시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요청들’을 쌓지 않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면 좋겠다. (p. 34)


특히 여성이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나 직급을 갖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 책임을 지는 자리에 나와 같은 그녀가 있다는 건, 내가 여기에서 나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책임 없는 쾌락, 그저 익숙한 실무를 하고 싶은 주니어이지만, 누구나 주니어의 자리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관리자의 역할과 책임을 지고 통솔하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느꼈던 것들을 최대한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일 많은 건 하면 되는데 인간들 짜증 나는 건 도저히 못 해먹겠어.” (p. 254)


어쩌겠는가. 짜증 나는 인간들 틈에서도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라면, 억울하지 않게 내 원하는 바를 분명히 하겠노라고. 징징대지 않고 묵묵히 내 일의 자질을 갈고닦으며, 나를 잘 달래가며 한 걸음 더 성장하자고 주문을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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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감각
무과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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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했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고 싶었다. 그뿐이다. 거창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p. 10)


익숙함을 벗어날 때마다 관성처럼 생각한다. '나는 무얼 위해 이 선택을 했을까.' 선택의 순간과 이를 이행하는 순간 사이에는 시차가 있어서, 때로는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선택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심쩍은 현재의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이 도사리는 여행을 선택하는 건, 그 자체로 사소한 모험이다. 대단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좋아하던 랜드마크를 나도 좋아하겠지 하며 도장 찍듯 돌아다니던 20대의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나만의 여행 속도와 취향을 깨달았다. 여행은 인생의 질문에 답하기 위함도, 단순히 휴식을 위함도 아니다. 오롯이 현재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위해 이제 나는 떠난다.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를 차곡차곡 따라 읽으며,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 '당시의 나' 그대로를 기록해서 좋았다. 짧은 일기나 단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자의 마음임을 안다. 여행을 시작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의 역사나 숨은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압도하는 풍광과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것에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나는 보통의 일상을 여행지에서 보내는 이야기에 전율한다. 주말마다 산책하고 카페를 찾는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똑같을 뿐인데, 여행이란 필터가 씌워지면 모든 것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무디었던 감각들이 생생하게 진동한다. 매일매일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만을 고민하는 아주 행복한 질문 속에서, 토로하던 무거운 마음은 심연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맑은 물이 걸러지듯 순수한 목소리가 고개를 내민다. 지나고 나면 그리워질 것을 알기에, 촉수를 바짝 세우고 흘러가는 모든 순간에 집중한다.


저자의 여행은 억지로 하지 않기에 미덕이 있다. 그의 기록은 낯선 곳에서도 본래의 나를 잃지 않고 소신을 세우는 생활하기에 가깝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오늘의 제철 재료를 고르고, 손수 밥을 지어 먹고, 때때로 거리로 나가 목적 없이 걷는다. 의무나 임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기에, 본연의 하루에 깊이 집중한다.


특히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준비와 이동이 훨씬 단순해졌다(p. 255)'는 문장에 공감했다. 내가 떠나고 돌아오는 자유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물질적인 안정이 주는 힘이 컸기 때문이다. 배낭 하나에 꼭 필요한 물품만 넣고, 현지에서 살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개의치 않으며 그렇게 하나씩 마음을 가볍게 비워내는 것. 컨디션을 좌우할 식사와 숙소를 꼼꼼히 살피고, 가성비가 아닌 질 좋은 경험을 선물하는 것. 이는 삶이 쪼들리면 결코 할 수 없는 선택이며, 훗날 여행의 기억이 미화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삶의 확장은 경험의 폭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더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과수에게 여행이라면, 나의 여행은 모든 것에 의미를 두다가도 그 의미가 부질없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여러 차례 사고의 틀이 깨지고 다시 붙기를 반복하는 건, 그것이야말로 완전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테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떠날까 말까 한 평범한 여행자이지만, 내가 흘려보냈던 생각들을 다가올 여름휴가에 맞춰 되새겨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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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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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는 우리 사회가 나이를 단순히 숫자가 아닌 '계급'으로 활용하며, 어떻게 세대 간 멸칭과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읽는 내내 공감과 불편함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공존했는데,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연령주의(Ageism)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적 대안들이 과연 실효성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한국 사회는 규제가 생기면 또 다른 방식의 차별을 찾아내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 이전에,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과 타인을 향한 인식의 틀을 깨는 데 있다. 하지만 희망보다 혐오가 익숙해진 사회의 온도를 체감할 때면, 변화가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최근 화두인 수많은 갈등의 기저에는 ‘나를 우습게 본다’는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우리를 지배해 온 계급과 자산, 권력 중심의 논리가 대중을 향한 집단적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차별을 견뎌온 세대가 그 보상 심리를 자녀 세대 혹은 타인에게 투영하며, 역설적으로 차별의 공고화에 일조하고 있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저자가 언급한 “차별어를 듣고 자란 아이는 차별하는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미디어가 희화화하여 송출하는 세대별 멸칭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각 연령대에 완수해야 한다고 믿는 ’표준화된 생애 주기‘다. 10대에는 명문대, 20대에는 대기업, 30대에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자산 형성과 자녀 지원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트랙 위에서 우리는 늘 조급함과 불안을 느낀다. 


2030세대가 ’벌써 너무 늦은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이 궤도에서 이탈하는 순간 실패자로 낙인찍는 이분법적 사고와 유교적 가부장제가 결합된 높은 도덕적 잣대 때문이다. 나이에 따른 서열화는 결국 개인의 삶을 체면과 위치라는 좁은 틀에 가둬 버린다. 


타인의 삶의 이면을 헤아리기엔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다. 나이를 무기로 무례하게 구는 이들을 마주할 때, 멋진 모델을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절연된 세대론을 내면화한다.


배려를 강요할 수 없지만, 배려가 깃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의 책무다.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00충’이라는 표현이나, 미숙함을 비하하는 ‘0린이’, 노인을 비하하는 ‘틀딱’ 같은 언어들이 사라지려면 개개인의 각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나이 묻는 사회>는 단순히 연령 차별에 대한 고발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차별의 공식’을 짚어준다. 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투영된 우리 안의 괴물을 직시하고, 이제는 서열이 아닌 수평적 존중의 토양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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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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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소득만으로 자산을 형성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람들의 관심은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금융 소득'으로 쏠리고 있고, AI의 발달로 실직 위협이 일상이 되었다.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취업난 속에서도 우리는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일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건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서'다.


일터의 현실은 그리 숭고하지 못하다. 산업재해와 인명 피해, 직장 내 괴롭힘 등 안팎에서 들려오는 부당한 소식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저마다 삶의 무게가 다르다지만, 나만 유독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로울 때 '노동'이 아닌 '현장'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다. 


노동절을 앞두고 출간된 <생업>은 밥심을 믿고 밥정을 나누며 밥의 혁명을 수행하는 17명의 목소리다. 급식 노동자부터 청년 농부, 산재 피해 가족, 청소 노동자까지. 이들은 일터에서 권리를 박탈당했거나 현실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빛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듯, 이들은 누군가의 빛나는 삶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다. 누군가의 노동은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지기도 한다고 이 책은 일깨워 준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은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면서 모른 척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어려운 길을 자처한다.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모든 노동은 존중받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소위 '인정받는' 직업만 쫓는다. 멋지고 빛나는 일의 기준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향할 날이 오긴 할까. 정당한 대가를 받고 다치지 않고 일하며 서로의 고된 노동을 응원할 수 있는 사회. 고단하지만 따뜻한 한 끼를 기꺼이 대접할 수 있는 호의가 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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