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눈을 의심케 하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받아쓰기나 운동장 활동, 수학여행, 생일파티 같은 학교의 일상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 아이가 다칠까 봐', 혹은 '아이 자존감에 상처가 날까 봐' 제기되는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이다. 쏟아지는 민원을 감당하기 버거운 교사들은 결국 개선이 아닌 '폐지'를 택한다. 교권과 민원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제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괴이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신성아 작가는 워킹맘이자 주양육자로서 겪은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이 현상의 핵심을 '돌봄의 탐욕화'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탐욕은 단순히 욕심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아이만큼은 세상의 모든 위험과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무균실의 아이들'을 만들려는 강박에 가깝다.

과거에 돌봄이 공동체의 책임이었다면, 현대 사회의 돌봄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짐이 되었다. 국가와 사회가 비워둔 그 틈새로 부모의 불안이 싹을 틔웠다. 내 아이가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돌봄을 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가두고, 급기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내 아이의 안녕만큼은 확보하려는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질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의 어른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누구든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라는 점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p. 211)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개인의 유난스러움을 넘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구조적 결함에서 기인한다. 책임질 자녀도, 부양할 식구도 없는 비혼 여성인 내가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봄이란 결국 아이를 키우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취약함'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은 설마 내가 그런 부모가 될 줄 몰랐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현대 사회 돌봄의 정체성을 묻는다. 우리는 아이를 상처받지 않게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지만, 실은 아이가 세상의 거친 풍파를 견뎌낼 '사회적 면역력'을 빼앗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비예찬 - 문구인 김규림이 선택한 궁극의 물건들
김규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짝이고 비싸고, 누가 봐도 좋아할 것 같은 물건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것들에 큰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자취를 하면서였다. 작은 방을 내 취향으로 가득 채워 보고 싶었지만, 막상 살아 보니 ‘취향’보다 먼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4평 남짓한 방은 생각보다 더 작았고, 필요한 것만 들여놓아도 금세 숨이 막힐 듯 빼곡해졌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생각보다 꼭 필요한 건 많지 않다는 걸.


자취를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더 이상 물건으로 취향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작고 귀엽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기꺼이 귀찮은 일들을 곁에 두는 이 마음이 결국 나를 더 나답게 살아가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p.24)


그 마음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 건 저자의 소비 일기 때문이었다. 저축과 투자로 ‘불리기’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소비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과시도 변명도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소비는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무엇으로 나를 기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작가는 ‘아무거나’의 자리를 조금씩 줄이고, ‘반드시’의 자리를 넓혀 간다. 덤으로 받는 안경닦이 대신 매일 손에 닿는 만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생필품을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한다. 그 선택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묘하게 단단하다.


나 역시 그런 소비를 따라 해 보았다. 매일 쓰는 물건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는 일. 생각보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나를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험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단순히 돈을 쓰는 소비 행위를 넘어, 잘 소비한 물건 하나가 삶을 훨씬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이끌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한 진심 어린 ‘예찬’이다. (p.278)


소비는 낭비가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하게 나를 바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늘 한 발 뒤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크게 분노하지도, 선명하게 편을 들지도 못한 채 작은 표시만 남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책이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악인이 흔할까? (p. 7)

그래, 알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사이코패스일 리 없고,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하루를 계획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는 것을. 그럼에도 수없이 스쳐가는 타임라인을 보면 온통 의도적인 악인들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 침묵조차도 끊임없이 의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연재해 온 칼럼들을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각 글은 독립적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실리’ 이상의 무언가를 향한 질문이 공통으로 흐른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 앎은 과연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 조형근은 거창한 정의의 자리에 서기보다 어중간하게 살아온 소시민의 위치에서 사회와 정치를 바라본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다채롭지만, 그 출발은 삶에 있다. 

누군가 앞장서서 대신 비판하고, 분노해 주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복잡해졌다. 명쾌한 결론 대신, 판단의 책임이 다시 독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책임'에 대한 감각은 송곳처럼 미세한 일상의 틈새를 파고든다.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랜 생각과 신념의 결과라면 과연 어디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지치지 않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혐오가 일상화된 시대. 그가 꺼내는 이슈에 머리가 지끈거린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오스크 학교 오늘의 젊은 작가 52
이서아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오스크가 되기 위한 학교라니.

음식점 한켠에 멀뚱히 서 있는 네모난 기계를 떠올리며, 정말 내가 아는 그 키오스크를 말하는 게 맞는지 줄거리를 읽고도 의심했다. 외모도, 출력값도 딱히 탐날 것 없는 저 기계덩이가 왜 ‘되고 싶은 존재’인걸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은, 읽다 보니 인간과 로봇(인조인간)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처럼 느껴졌다.

감정을 지닌 ‘심장인간’과 이성을 강조한 ‘ORE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 그 안에는 효율화의 걸림돌이 되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세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키오스크 학교가 있다. 고전적인 루트로는 성공할 수 없고, 평범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 사회적 안전망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결국 키오스크 학교로 향한다.

모라, 초희, 보배, 옥엽, 원혜, 주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정식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혼란에 빠진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심장인간도, 결함을 지닌 ORE 인간도 모두 인간이기 이전에 ‘아이’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각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뿌리가 된다. 그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이를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아이들의 선택을 통해 보여준다.

서로의 교류와 연대를 끊어내려는 학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끝내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탈출한다. 그 일련의 과정과 점차 드러나는 진실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하나의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작금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과거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득되던 가치들이 이제는 교육의 대상이 되었고, AI의 광속적인 발전 속에서 인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결이 필요하지만 단절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이 모순은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어릴 적 과학의 날 행사에서 보았던 기술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미래만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발전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한한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내게 남긴 대답은 결국 ‘연대’였다. 여린 손을 맞잡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탈출한 아이들처럼, 우리에게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오키상을 둘러싼 출판계 사람들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출간만 하면 수만 부는 거뜬히 찍는 인기 작가 ‘아모 카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다. 그는 뒤로 압박을 넣고, 자신의 위세로 편집자를 몰아붙이며 상에 다가가려 하지만 문턱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초중반까지의 카인은 솔직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자체는 인간적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욕망을 다루는 태도였다.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믿지 않고, 편집자에게조차 무례하며, 자신의 완벽성에는 단 한 치의 의심도 두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였다면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했을 법한 인물이다. 그런 카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그의 작품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온 편집자 ‘치히로’의 존재다. 치히로 역시 단순한 조력자라기엔 복잡한 사연과 감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녀를 통해 카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벽에 균열을 낸다.

예술의 세계에서 늘 대립하는 두 가치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 대체로 우리는 작품성에는 후하고, 대중성에는 박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고전 <깊이에의 강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에 사로잡혀 본래의 색을 잃고 끝내 삶을 허망하게 마감한 그 작가의 생애가, 현대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재현된 인물이 바로 아모 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만약 상이라는 구분이, 상에 따라 주어지는 명예와 위계가 이토록 중요하지 않은 사회였다면, 인간의 욕망은 지금보다 덜 위험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의 욕심이 과도하게 증폭된 세계에서 과연 ‘건전한 욕심’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장된 캐릭터로 형상화되었지만, 우리는 누구나 카인의 마음 한켠을 품고 살아간다. 인정받고 싶다는 결핍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것을 타인과 세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마도 평생 우리 앞에 놓인 시험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