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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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작년이었던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었다. 생동감 넘치는 서사라 수록작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신기하게도 그 소설은 출간 후, 큰 화제를 모아 열풍처럼 퍼져나갔다. 그 과정을 보며 이번에는 또 어떤 보석 같은 소설이 수상작에 있을지 옅은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번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박솔뫼 작가의 「사과」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창밖 풍경이 형체를 잃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화자 '애리'는 흔들리는 그 흐릿한 풍경과 닮은 자신의 일상을 말한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오던 '선호'와의 인연 그리고 결국 서로의 차이로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마음속에 작은 빗금이 그어졌다 이내 메워지는 미세한 회복의 궤적과 닮아 있었다.


「사과」는 어떤 날과 어떤 날의 사이에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여전히 짐작도 못 하는 것들 사이에서 쓴 소설이다. 그러나 기분은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고 사이를 넘어 앞으로 뒤로 어딘가로 범람해 나아간다. (대상 수상작가 수상소감 中)


이 슴슴한 소설이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명확히 맺어진 관계도 없이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지만, 애리의 방처럼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헛헛한 마음을 그려내고 싶었던 걸까. 채워졌다 비워지는 삶의 속성 속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다고 표류하진 않은 채 나아가는 감각이 맴돈다. 마치 동네 산책처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골목을 돌 때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다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일상처럼 말이다.


황예인 평론가는 <그래도 비워두기>에서 애리의 '비어 있음'이란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짚어낸다. 선호의 텅 빈 방은 애리의 방과 다르다. 침대와 책장,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음에도 애리는 가구들 사이 텅 빈 구석을 발견한다. 이런 무채색의 마음은 책장을 넘길수록 그 폭을 넓혀가며 다른 작품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수록작인 황시운 작가의 「일일업무 보고서」에 이르면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져 내린 내면이 돌덩이처럼 육중하게 다가온다.


반려묘를 잃은 상실, 학폭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에 대한 울분. 그럼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부유하듯 찾아 헤매는 모습까지. 소설들은 인간이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작은 응어리가 있으며, 아무리 비워낸다 해도 결국 다시 채워 넣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일깨운다.


특히 「일일업무 보고서」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히 남았다. 하반신 마비로 배변활동마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진'은 결국 통제력을 잃은 신체에서 배설물이 흘러나오는 상황을 막지 못한다. 악취와 수치심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을 '더럽다'고 말하던 부분은, 비록 겪어보지 못했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낼 수 없는 이의 서러움과 슬픔이 오롯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결국 그만둘 수 없는 생의 굴레에서 우리는 영원해 보이는 사투를 이어가며 늙어갈 테고,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또한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별일 없는 일상이 주는 작은 평화에 안도하다가도, 궤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는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한 채,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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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공감과 이해를 경쟁력으로 만드는 대화의 기술
비치키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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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대화의 경쟁력을 기대한 것에 비해 다소 아쉬운 책이다. 1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기존 자기 계발서에서 접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화법이 주를 이루었고, '인간은 진심을 담아 대화할 수 있다'는 식의 명제는 다소 뻔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2부로 넘어가 대화의 깊이와 관점을 다루는 파트에 이르자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들이 생겼다. 특히 AI와 인간 대화 차이를 다룬 부분에선 김애란 작가님이 "AI와 인간의 차이는 망설임"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보는 대체될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오가는 순간은 대체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지만, 내 질문에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까지 지어 보일 수 없다. (p. 30~31)


AI는 망설임 없이 완벽한 답을 내놓는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인공지능의 등장은 지식을 얻고 체화하는 데 걸리던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나는 AI의 발전으로 촉발된 인간의 불안함은 기술의 뛰어남 그 자체보다, 빠른 속도와 완벽함 앞에서 인간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진짜 무서운 지점은 맹목적인 믿음이다. 모든 대답을 진실인 것처럼 확신하는 AI와의 대화 구조 속에서, 검증 없이 믿어버리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발전하는 기술을 우리가 어떤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흔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깊이 생각하는 거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깊은 것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다. 판단력은 더 많이 덧붙이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는 능력에 가깝다. (P. 118)


AI의 탄생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늘 존재했다. 논리보다 목소리의 크기가 중요한 사람, 내 감정만 중요하고, 반대의 경우는 생각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내가 왜 이해해야 하냐고 따지는 사람들. 그 사이에 생긴 소통의 공백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측으로 메우고 있다.


핵심은 균형이다. 무비판적으로 결과물을 긁어다 쓰지 않는 것. 'AI는 완벽하고, 인간은 감정적이다'라는 단순한 구도에 갇히지 않는 것. 주체적인 태도로 AI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할 때,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유연하게 넘어서는 서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보는지만 분명하다면, AI는 그것을 세상 밖으로 구현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p .198~199)


내 식으로 중심을 잡아 균형을 찾아가는 자기통제.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질문을 던져주었단 점에서 의미 있었다. 결국 감정을 읽는다는 건, 남에게 단순히 공감을 잘해주는 것을 넘어 맥락에 맞게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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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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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보는 것이 완전히 뒤틀린 인생이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두 사람의 인생. 한없이 위태로운 두 인생이 하나로 겹쳐 보였다. (p. 181)


기억을 되돌리는 기술과 지워내는 기술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 한쪽이 공식 인정을 받아 정당한 치료로서 통용된다면, 다른 한쪽은 음지에서 돈과 욕망을 위해 암암리에 행해진다. 전자가 회복술, 후자는 제거술이다.


브레인 임상 연구센터의 의사 김수오는 담당 교수 몰래 어머니의 회복술을 집도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과거를 잊은 것이 아니라, 강제로 기억을 제거당했다는 것. 불행히도 그 기억은 잔혹한 흔적이었고, 과거를 되찾은 어머니는 자신을 불안 속에 가둔 채 살아간다. 이제 분노한 수오가 진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경재를 알게 되며 진실이 드러난다.


주경재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인물은 물론, 곁에 두는 비서의 과거까지 강제로 없애는 인물이다. 삭제에 그치지 않고 가짜 기억을 심어, 수술대에 오른 이가 더 이상 '진짜 나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소설은 임상적 행위에 불과해 보이는 기억 수술이란 상상으로, 한 인간의 삶과 본래의 정체성이 어떻게 철저히 망가지는지 서늘하게 보여준다. 지나온 흔적을 복원하려는 김수오와 끊임없이 없애려는 주경재. 이들의 악연이 교차하며 치닫는 복수의 끝이 회복술과 제거술의 혼합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기억의 공백 사이로 타인의 삶이 몽땅 주입된 주경재는 숨은 쉬되 살아있지 않은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타인의 삶을 유린하던 자가 자신의 기술로 스스로의 존엄을 땅바닥에 팽개쳐버린 셈이다. 우리가 살아온 일상은 보기 좋은 면만 잘라 붙이거나 조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위적인 손길로 삶의 궤적을 쥐락펴락하면 어떤 경고장이 날아오는지 소설은 생각해 보게 한다. 


흔히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 말한다. 그러나 경험에 따라 살아갈 힘도, 죽도록 아픈 트라우마로 각인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미 지나간 과거라는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삶 안으로 체화할 것인지. 좋고 나쁨을 떠나 이미 영향을 미친 기억을 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할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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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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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한 시대가 저문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대표작 몇몇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투명한 나선>을 펼치는 마음이 유독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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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리즈' 중 하나인 <투명한 나선>은 주인공 물리학자 유카와의 개인사와 감정적 면모가 처음으로 깊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형사 구사나기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물리학자 유카와를 찾아가는 구도가 공식처럼 작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공식을 비틀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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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떠오른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고, 자취를 감춘 그의 여자친구 소노카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형사들은 소노카의 행방과 동기를 쫓던 중, 그녀를 돕는 조력자 나에가 유카와와 메일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참고인으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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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와는 사건과 무관한 개인 정보라며 말을 아끼지만, 사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내며 수상할 정도로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 형사들 몰래 독자적으로 행동하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구사나기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기시감을 느끼는 점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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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 사이에 얽힌 가족사는 핵심 내용이라 자세히 담을 수 없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그리고 아무리 냉혹한 사람이라도 저마다의 역린이 있다는 걸 말한다. 용서받기 힘든 개인의 선택이 존재함에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때로는 눈과 귀를 닫는 인물들의 모습이 깊은 잔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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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르 소설을 잇달아 읽으면서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자주 접해서일까. <투명한 나선>은 그들에 비해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인물 간의 관계와 가계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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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하우스 ㅣ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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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고급빌라 '프린츠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동양의 악귀와 서양의 악마, 구마 사제와 무당까지 등장하는 새로운 오컬트 소설이다. 인간의 욕망, 돈과 권력, 이 모든 걸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조소하는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서 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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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란 독을 가진 벌레들을 한 독에 넣어 서로를 먹고 먹히게 해서 강력한 저주의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프린츠하우스는 바로 고독의 항아리와 같다. 고독에서 태어난 신원불명의 귀신, 이를 이용하려는 악마는 어린 학생인 승아의 몸에 빙의한다. 승아를 좌지우지하는 악마는 프린츠하우스 사람들과 승아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힘을 극대화해 줄 강력한 영체인 주인공 선우까지 집어삼키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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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고독처럼 터지기 직전인 화려함의 이면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선우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온 승아가 알고 보니 이 집의 전 주인이고, 승아에게 빙의된 악마가 선우를 농락하며 제 입맛대로 조종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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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로 알았던 무당 한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린 선우는 승아를 구하려 했던 이사악 신부와 그를 믿으며 퇴마에 동참한 프린츠하우스 사람들의 비밀에 다가서며 이 집에 깨끗한 사람이란 없단 걸 깨닫는다. 그들이 퇴마하는 대상은 악령만이 아니다. 지난날 자신들이 저지른 죗값이자 여전히 숨기는 욕심이다. 악령이란 무형의 존재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취약함과 아이러니가 얽히고설키는 과정 자체가 호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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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흉흉한 소문을 모르는 타인에게 집을 팔아넘기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선우. 불행을 털어내기 위해 타인에게 불행을 전가하는 집을 사고파는 행위.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모두 압축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악마를 퇴치하며 튄 불티는 상흔을 남겼다. "쓰는 내내 죽을 맛이었다"라는 작가의 말이 지극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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