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예찬 - 문구인 김규림이 선택한 궁극의 물건들
김규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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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고 비싸고, 누가 봐도 좋아할 것 같은 물건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것들에 큰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자취를 하면서였다. 작은 방을 내 취향으로 가득 채워 보고 싶었지만, 막상 살아 보니 ‘취향’보다 먼저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4평 남짓한 방은 생각보다 더 작았고, 필요한 것만 들여놓아도 금세 숨이 막힐 듯 빼곡해졌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생각보다 꼭 필요한 건 많지 않다는 걸.


자취를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더 이상 물건으로 취향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실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작고 귀엽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기꺼이 귀찮은 일들을 곁에 두는 이 마음이 결국 나를 더 나답게 살아가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p.24)


그 마음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 건 저자의 소비 일기 때문이었다. 저축과 투자로 ‘불리기’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소비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과시도 변명도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소비는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무엇으로 나를 기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작가는 ‘아무거나’의 자리를 조금씩 줄이고, ‘반드시’의 자리를 넓혀 간다. 덤으로 받는 안경닦이 대신 매일 손에 닿는 만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생필품을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한다. 그 선택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묘하게 단단하다.


나 역시 그런 소비를 따라 해 보았다. 매일 쓰는 물건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는 일. 생각보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나를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험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단순히 돈을 쓰는 소비 행위를 넘어, 잘 소비한 물건 하나가 삶을 훨씬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이끌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한 진심 어린 ‘예찬’이다. (p.278)


소비는 낭비가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하게 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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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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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한 발 뒤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크게 분노하지도, 선명하게 편을 들지도 못한 채 작은 표시만 남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책이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악인이 흔할까? (p. 7)

그래, 알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사이코패스일 리 없고,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하루를 계획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는 것을. 그럼에도 수없이 스쳐가는 타임라인을 보면 온통 의도적인 악인들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 침묵조차도 끊임없이 의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앎과 삶 사이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연재해 온 칼럼들을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각 글은 독립적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실리’ 이상의 무언가를 향한 질문이 공통으로 흐른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 앎은 과연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 조형근은 거창한 정의의 자리에 서기보다 어중간하게 살아온 소시민의 위치에서 사회와 정치를 바라본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다채롭지만, 그 출발은 삶에 있다. 

누군가 앞장서서 대신 비판하고, 분노해 주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복잡해졌다. 명쾌한 결론 대신, 판단의 책임이 다시 독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책임'에 대한 감각은 송곳처럼 미세한 일상의 틈새를 파고든다.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랜 생각과 신념의 결과라면 과연 어디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지치지 않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혐오가 일상화된 시대. 그가 꺼내는 이슈에 머리가 지끈거린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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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학교 오늘의 젊은 작가 52
이서아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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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가 되기 위한 학교라니.

음식점 한켠에 멀뚱히 서 있는 네모난 기계를 떠올리며, 정말 내가 아는 그 키오스크를 말하는 게 맞는지 줄거리를 읽고도 의심했다. 외모도, 출력값도 딱히 탐날 것 없는 저 기계덩이가 왜 ‘되고 싶은 존재’인걸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은, 읽다 보니 인간과 로봇(인조인간)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처럼 느껴졌다.

감정을 지닌 ‘심장인간’과 이성을 강조한 ‘ORE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 그 안에는 효율화의 걸림돌이 되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세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키오스크 학교가 있다. 고전적인 루트로는 성공할 수 없고, 평범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 사회적 안전망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결국 키오스크 학교로 향한다.

모라, 초희, 보배, 옥엽, 원혜, 주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정식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혼란에 빠진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심장인간도, 결함을 지닌 ORE 인간도 모두 인간이기 이전에 ‘아이’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각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뿌리가 된다. 그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이를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아이들의 선택을 통해 보여준다.

서로의 교류와 연대를 끊어내려는 학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끝내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탈출한다. 그 일련의 과정과 점차 드러나는 진실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하나의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작금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과거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득되던 가치들이 이제는 교육의 대상이 되었고, AI의 광속적인 발전 속에서 인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결이 필요하지만 단절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이 모순은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어릴 적 과학의 날 행사에서 보았던 기술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미래만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발전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한한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내게 남긴 대답은 결국 ‘연대’였다. 여린 손을 맞잡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탈출한 아이들처럼, 우리에게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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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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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을 둘러싼 출판계 사람들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출간만 하면 수만 부는 거뜬히 찍는 인기 작가 ‘아모 카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다. 그는 뒤로 압박을 넣고, 자신의 위세로 편집자를 몰아붙이며 상에 다가가려 하지만 문턱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초중반까지의 카인은 솔직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자체는 인간적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욕망을 다루는 태도였다.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믿지 않고, 편집자에게조차 무례하며, 자신의 완벽성에는 단 한 치의 의심도 두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였다면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했을 법한 인물이다. 그런 카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그의 작품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온 편집자 ‘치히로’의 존재다. 치히로 역시 단순한 조력자라기엔 복잡한 사연과 감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녀를 통해 카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벽에 균열을 낸다.

예술의 세계에서 늘 대립하는 두 가치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 대체로 우리는 작품성에는 후하고, 대중성에는 박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고전 <깊이에의 강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에 사로잡혀 본래의 색을 잃고 끝내 삶을 허망하게 마감한 그 작가의 생애가, 현대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재현된 인물이 바로 아모 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만약 상이라는 구분이, 상에 따라 주어지는 명예와 위계가 이토록 중요하지 않은 사회였다면, 인간의 욕망은 지금보다 덜 위험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의 욕심이 과도하게 증폭된 세계에서 과연 ‘건전한 욕심’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장된 캐릭터로 형상화되었지만, 우리는 누구나 카인의 마음 한켠을 품고 살아간다. 인정받고 싶다는 결핍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것을 타인과 세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마도 평생 우리 앞에 놓인 시험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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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함, 인생을 담아드립니다 -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환대하는 법
최나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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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영원한 시간 중에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건 찰나의 삶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 (p.5)


그리워할 모, 특별하게 다룰 리, 담을 함. 모리함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소망을 작은 액자에 담아 보존하는 작가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전통 표구를 배우게 된 그는,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시간에 닳지 않고 언제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사연을 듣는다. 그리고 그 원형과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표구의 재료와 복원의 과정, 메시지의 시각적 구현까지 진심을 담아 완성해 나간다.

이 책은 ‘기억’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다. 가까운 현재의 기억은 선명한데,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기억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떤 기억은 그리움이 되고 어떤 기억은 끝내 닿을 수 없는 꿈으로 기록된다. 그 아이러니함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작을 기록하는 것도, 이어지는 삶을 보듬는 것도 결국은 함께한 물건들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우리를 다시 처음으로 데려간다. 사라진 것 같아도 그 앞에 서면 마음은 다시 출발선에 선 듯 떨린다. 그렇게 그 물건은 삶의 시작과 끝을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p. 57)

모리함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한 조각을 작품으로 남긴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파편을 물리적으로나마 붙잡아 두고, 그 액자를 통해 초심을 상기하며 다시 여행을 떠난다. ‘기억을 오감으로 확장한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장마다 소담하고 정성스럽게 놓인 액자들을 보고 있자니, 내 기억이 아님에도 마음이 자꾸만 뭉클해졌다.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들의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다하여 다가가고 싶다. 이것이 그 기억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정중한 답례라고 믿는다. (p. 86)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연말에 어울리는 고민 하나를 선물 받은 기분이라 오히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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