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학교 오늘의 젊은 작가 52
이서아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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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가 되기 위한 학교라니.

음식점 한켠에 멀뚱히 서 있는 네모난 기계를 떠올리며, 정말 내가 아는 그 키오스크를 말하는 게 맞는지 줄거리를 읽고도 의심했다. 외모도, 출력값도 딱히 탐날 것 없는 저 기계덩이가 왜 ‘되고 싶은 존재’인걸까. 그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은, 읽다 보니 인간과 로봇(인조인간)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처럼 느껴졌다.

감정을 지닌 ‘심장인간’과 이성을 강조한 ‘ORE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 그 안에는 효율화의 걸림돌이 되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세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키오스크 학교가 있다. 고전적인 루트로는 성공할 수 없고, 평범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 사회적 안전망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결국 키오스크 학교로 향한다.

모라, 초희, 보배, 옥엽, 원혜, 주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정식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혼란에 빠진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살아온 심장인간도, 결함을 지닌 ORE 인간도 모두 인간이기 이전에 ‘아이’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각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뿌리가 된다. 그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이를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아이들의 선택을 통해 보여준다.

서로의 교류와 연대를 끊어내려는 학교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끝내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탈출한다. 그 일련의 과정과 점차 드러나는 진실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하나의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작금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과거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체득되던 가치들이 이제는 교육의 대상이 되었고, AI의 광속적인 발전 속에서 인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결이 필요하지만 단절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이 모순은 과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어릴 적 과학의 날 행사에서 보았던 기술은 인간에게 긍정적인 미래만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발전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한한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내게 남긴 대답은 결국 ‘연대’였다. 여린 손을 맞잡고 학교라는 시스템을 탈출한 아이들처럼, 우리에게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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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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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을 둘러싼 출판계 사람들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출간만 하면 수만 부는 거뜬히 찍는 인기 작가 ‘아모 카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다. 그는 뒤로 압박을 넣고, 자신의 위세로 편집자를 몰아붙이며 상에 다가가려 하지만 문턱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초중반까지의 카인은 솔직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자체는 인간적이라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욕망을 다루는 태도였다.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믿지 않고, 편집자에게조차 무례하며, 자신의 완벽성에는 단 한 치의 의심도 두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였다면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했을 법한 인물이다. 그런 카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그의 작품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온 편집자 ‘치히로’의 존재다. 치히로 역시 단순한 조력자라기엔 복잡한 사연과 감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녀를 통해 카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벽에 균열을 낸다.

예술의 세계에서 늘 대립하는 두 가치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 대체로 우리는 작품성에는 후하고, 대중성에는 박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고전 <깊이에의 강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깊이가 없다’는 평론에 사로잡혀 본래의 색을 잃고 끝내 삶을 허망하게 마감한 그 작가의 생애가, 현대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재현된 인물이 바로 아모 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만약 상이라는 구분이, 상에 따라 주어지는 명예와 위계가 이토록 중요하지 않은 사회였다면, 인간의 욕망은 지금보다 덜 위험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의 욕심이 과도하게 증폭된 세계에서 과연 ‘건전한 욕심’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장된 캐릭터로 형상화되었지만, 우리는 누구나 카인의 마음 한켠을 품고 살아간다. 인정받고 싶다는 결핍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것을 타인과 세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마도 평생 우리 앞에 놓인 시험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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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함, 인생을 담아드립니다 -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환대하는 법
최나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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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영원한 시간 중에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건 찰나의 삶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 (p.5)


그리워할 모, 특별하게 다룰 리, 담을 함. 모리함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소망을 작은 액자에 담아 보존하는 작가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전통 표구를 배우게 된 그는,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시간에 닳지 않고 언제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사연을 듣는다. 그리고 그 원형과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표구의 재료와 복원의 과정, 메시지의 시각적 구현까지 진심을 담아 완성해 나간다.

이 책은 ‘기억’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다. 가까운 현재의 기억은 선명한데,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기억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어떤 기억은 그리움이 되고 어떤 기억은 끝내 닿을 수 없는 꿈으로 기록된다. 그 아이러니함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작을 기록하는 것도, 이어지는 삶을 보듬는 것도 결국은 함께한 물건들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우리를 다시 처음으로 데려간다. 사라진 것 같아도 그 앞에 서면 마음은 다시 출발선에 선 듯 떨린다. 그렇게 그 물건은 삶의 시작과 끝을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p. 57)

모리함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한 조각을 작품으로 남긴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파편을 물리적으로나마 붙잡아 두고, 그 액자를 통해 초심을 상기하며 다시 여행을 떠난다. ‘기억을 오감으로 확장한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장마다 소담하고 정성스럽게 놓인 액자들을 보고 있자니, 내 기억이 아님에도 마음이 자꾸만 뭉클해졌다.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들의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다하여 다가가고 싶다. 이것이 그 기억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정중한 답례라고 믿는다. (p. 86)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연말에 어울리는 고민 하나를 선물 받은 기분이라 오히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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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작별
김화진 외 지음 / 책깃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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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이꽃님, 이희영, 조우리, 최진영, 허진희. 우리 곁의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온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소설집 『우연한 작별』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관계의 종결이 아니라, 삶을 옭아매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으로 다시 정의한다.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는 특정 인물, 과거의 시절, 미해결 감정과 트라우마 등 각자의 삶을 붙잡고 있던 짐과 서서히 작별하려는 인물들이 갈림길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청년과 청소년의 시선을 통해, 불투명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과거에 두고 떠나보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표제작인 김화진의 「우연한 작별」은 늘 비교 대상이었던 또래 친척이자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애써 외면해왔던 열등감과 질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꽃님과 이희영의 작품은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자아와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조우리와 최진영은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처와 선택의 무게를 보여준다. 허진희의 작품에서는 AI와 기술 발전으로 계층 갈등이 더욱 심화된 근미래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물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결국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고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불과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의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이고, 지금은 스스로 화해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감정의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질투와 혐오 사이, 그 어디쯤 내 마음”(p.25)이라는 문장은 현실과 타협하며 애써 지켜온 또래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분노로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쥔 채 버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짚어낸다.


결국 이 모든 감정의 출발점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자연스러움이 기계로 대체되고, 성적과 학벌, 재력이 인간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되더라도, 작가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끝내 자기 마음만큼은 옳다고 믿고 지켜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그 마음을 쓰지 말라고, 자신을 갉아먹는 기준과는 작별하라고.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상상해본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어린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손길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에게도 늦지 않게 다시 건네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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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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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대표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새 옷을 입고 돌아왔다. 작품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예전에 <카스테라>를 읽다 포기했던 기억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테마라니… 사랑 이야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더욱 망설여졌다. 그에 무색하게도 이 묵직한 책을 단 사흘 만에 읽어 치워 버렸다.

소설은 믿음이 사치가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세 남녀의 허무와 온기를 더욱 섬세하게 비춘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그와 그녀, 그리고 두 사람 곁을 묵묵히 지키는 조력자 요한. 세 사람은 첫 마음을 붙잡지 못한 채 맴돌면서도, 진심이라는 투명한 감정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꾸밈없이 보여 준다.

이야기는 불륜으로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둔 그, 그리고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될 만큼 못생긴 외모로 상처받아 온 그녀가 서로에게 닿아 가는 과정을 그린다.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탓에 ‘추녀’라는 설정은 지금의 시선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흐린 눈으로 바라보면, 외모라는 키워드 뒤에 겹겹이 숨어 있는 자기혐오가 어떻게 한 사람을 잠식하는지, 그리고 사랑이 그 혐오를 이길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서로의 상처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워하는 두 사람의 순간들은 아프지만 아름답다. 가시를 숨기지 못한 고슴도치를 살살 쓸어내듯, 스스로 내면화해 버린 혐오의 가시를 더듬어 가던 그녀가 결국 사랑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는 장면. 그 진심이 담긴 마지막 고백 편지는 얼어붙어 있던 나의 심장을 천천히 녹여 냈다.

시간이 지나 그녀를 찾아가는 그, 그리고 불의의 사고. 그 이후의 삶을 서로 다른 가능성으로 펼쳐 보이는 세 개의 결말은 모두 각자의 여운을 남긴다. 특히 미숙한 두 사람의 속내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들어 준 요한은 다시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염세적이면서도 사실은 가장 사랑이 고팠던 인물. 그의 곁에도 누군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괜히 오래 남았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p. 16~17)

결국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나도 몰랐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너’를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관계의 형식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자격 같은 건 없다고, 긴 연서를 끝맺고 난 뒤에서야 우리는 어둠 같은 세상 속에서도 왜 사랑을 붙들게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이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들었는데, 이 복잡하고도 순수한 세 사람을 어떻게 구현할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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