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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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보물을 찾아 피라미드로 떠나는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의 여정을 그린 <연금술사>.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고전 반열에 오른 책' 같은 화려한 찬사 속에 오히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책을 펼쳤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자아를 찾아헤매는 청년이다. 양치기라는 직업을 선택한 순간부터 내면의 물음표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피라미드에서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말뿐인 예언을 믿고 떠난 여정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위기와 사랑, 기회의 순간들을 통해 점차 확신을 얻어 나간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일찍 배우는 것 같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게 바로 세상이야." 노인이 씁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p. 59)


여전히 우리는 삶의 이유를 너무 일찍 배운다. 삶에 거창한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쉽게 시도를 멈추거나 아주 작은 실패도 무서워하면서. 산티아고의 여정은 그래서 특별하다. 교훈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숱한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자신의 보물을 향해 가는 일은 배울만하다. 애초에 길을 떠나지 않았으면 운명의 표지도, 기회도 그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미래를 추측할 수 있냐고?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다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다음에 오는 날들도 좋아지는 거고. 그러니 미래는 잊고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신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 영겁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네." (p. 191~192)


사막을 건너는 동안 산티아고에게 타인의 인정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안에서 찾아낸 그에게 허울뿐인 평가는 불필요했으니까. 결국 자아를 찾는 일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바로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모든 것을 잃고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하며 다시 막대한 부를 거머쥐는 산티아고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가능성은 놓친 것이 아니다. 놓지 않은 사람만이 가능성을 얻게 된다. 좌절할지언정 무너지지 않은 채,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의 미래를 그려내는 것. 바로 이 시대의 산티아고들에게 <연금술사>가 건네는 다정한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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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우주 - 더 잘 머물고 싶어 유영하는 삶의 기록
정영한 지음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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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전과 후, 이 책을 찬찬히 읽었다. 용기가 없는 건데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20대 초중반의 나. 그때 나는 여행 에세이를 탐독하며 상상의 여행을 떠났다. 그런 나를 떠올리며 묻는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지금이 그려지냐고.


이른 나이에 아나운서가 된 작가는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능력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 속에서 매일을 보낸다. 자연스레 계획 없이 훌쩍 떠나던 20대의 자유를 갈망하며 휴가를 내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떠난 30대의 그는 달라진 시선에서 이전의 여행을 반추한다. 너그러웠던 어린 나와 경계심으로 세모눈을 뜨는 현재의 나. 경계에 서 있는 같은 또래로서 그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방향 키를 조정하기 위해서,

흘러가는 젊음을 여행의 장면으로 조금이나마 묶어 두기 위해서. (p. 28)


간만에 여행자의 해방감이 묻어나는 문장을 읽으니,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둔 지 오래됐다는 걸 자각했다. 붙잡고 흘려보내는 것이 소중하던 날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생각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편안한데 왠지 갇혀 있는 기분. 나는 그걸 바로잡으려 늦은 여행을 시작한 것 같다.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들(그가 2군으로 점찍어둔 지역)을 다니는 이야기를 보면서 특정 시기만이 주는 힘이 와닿았다. 초록의 반짝임, 안락한 숙소와 탁 트인 풍경 앞에서 가만한 시간을 갖는 것. 매년 달라지는 체력을 느끼며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겠구나 체감한다.


오직 ‘나’만 신경 써도 누가 뭐라지 않는 유일한 시기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아닐까. 그리고 이 시기에는 선택권도 늘어난다. 신체적 컨디션도 최상이고, 연애를 비롯해 사람들을 사귀기에도 좋으며, 가치관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다. (p. 192)


그의 감상을 손으로 짚어가며, 체크박스 안에 열망을 가득 채우던 어린 내가 자주 소환됐다. 지난 시간에 머무르는 이유는 이 또한 과거가 되고, 계획은 자주 나를 배신한다는 명징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소용없지는 않다는 모순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는 데에 초점을 두기보다 내면으로 가라앉기 위해 떠나는 여행. 여행 앞에 ‘살아보는’이란 수식어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잠시 숨을 고르라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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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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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배우 박정민의 한 마디로 신드롬을 일으킨 성해나 작가가 <혼모노>에 이어 강렬한 기담집으로 돌아왔다. 기담이란 장르가 다소 생소한데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방지턱처럼 깔고 시작하는 독자인 나는 사실 엄청난 기대를 하진 않았다. 낯설다는 것은 호불호를 가르는 중요한 영역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웬걸.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었다. 보통 소설집과 달리 단편마다 작가 본인이 풀어놓는 작품에 대한 해설이 수록되어 작품 특유의 기묘하고 서늘한 기운을 중화시켜 주었다.


소설은 9개의 단편이 3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어제', '오늘', '내일'이란 직관적인 시간 흐름 아래 친일파와 그 후손,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 AI와 로봇 등 기술 발달로 도래할 SF적 미래를 그린다. '인간이지만 인간 같지도 않은 이들의 욕망과 불안'을 괴이한데 그럴듯한, 흡인력 있는 전개로 독자를 휩쓸고 간다.


인간 아닌 인간.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수나 AI일 수도 있고 귀신 혹은 신일 수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P. 51)


표제작이기도 한 <인비인>은 일제가 조선인을 대상으로 감행한 생체실험에서 탄생한 괴이한 생명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닌 것', 또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사람이 아니길 원하는 것'이라는 숨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조만간 닥쳐올 위기와 불안을 생생하게 그려내서일까. 궁지에 몰린 인간이라면 당장을 모면하고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겠구나, 떨떠름한 수긍을 하게 된다.


결핍은 늘 다른 조건을 달고 돌아온다. 인생에서 내보낸 줄 알았던 불청객이 나도 모르는 새 문 앞에 서 있듯이 말이다. 허상으로 채워지는 건 결국 결핍이 아닌 더 단단해진 불안 아닐까. (p. 137)


연달아 상영된 짧은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친일의 잔재인 핏자국이 묻은 책상과 대대손손 간직해 온 가보, 윤회를 위한 사이비적 모임, 모든 것을 가졌으나 결핍이 있는 보통의 삶을 돈으로 구매하는 사람들.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이 섬뜩하다. 나아가 나의 지난 프롬프트를 백과사전처럼 꿰고 있는 기계가 나의 프라이버시를 역이용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무서운 협박을 해올 것만 같다.


점점 익숙해지는 편리함이 파국을 향한 지름길의 급행열차는 아닐까. 결국 우리가 가진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시대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올라타는 것 말고, 타인과 다른 나의 차별점을 용케 찾아내는 것 말고, 순수하게 본연적으로 우리가 가진 것들 말이다. 사소한 불편함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만행이 인비인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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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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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어깨와 까무잡잡한 피부, 예쁘지 않은 외모 탓에 줄곧 위축된 채 살아온 안나. 반면 오랜 시간 예쁜 외모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중심에 서 있던 경선. 소설은 두 자매가 각자의 시선으로 쌓아 올린 개별의 서사가 어떻게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는지, 지난 기억을 몸의 노화와 이를 인식하는 두 자매의 현재 시선으로 교차해 보여준다.


부모의 죽음으로 연결고리가 끊어진 둘은 오랜 시간 왕래 없이 살다가 경선의 전남편 P의 부고를 계기로 재회한다. 마침 수술을 앞두고 간병이 필요했던 경선을 위해, 일과 육아로 분주한 딸 다은을 대신해 안나가 그의 곁을 지키며 어색한 교류가 시작된다. 같은 나이, 비슷한 몸의 변화를 겪는 둘은 지척에서 상태를 살피며, 소멸의 감각인지도 몰랐던 시간이 멈춰있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노화란 어쩌면 자신이 혐오했던 모습으로 퇴화해가는 고통과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p. 212)


경선이 퇴원한 후, P가 남긴 뜻밖의 유산으로 손녀 다니엘 그리고 안나와 돌연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동상이몽인 두 사람이 한때 친밀했던 과거를 복기하게 된 것은 여행지에서 비로소 털어놓은 몰랐던 속 이야기 덕분이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부모와 안나만 서울로 떠나고 경선은 친가에 남겨졌던 첫 헤어짐의 순간. 오랜 시간 멀어진 마음의 시작이 각자 어떻게 비치고 해석되었는지 대화하며, 기억이란 참 얄궂고 이기적이지만 서로를 이어주는 구실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겪고 또 해결하면서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은 어딘가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p. 286)


작가는 노년의 자매가 느끼는 노화에 대한 당혹감을 쓸쓸하게 그리지 않는다. 아직 모든 게 새로운 손녀 다니엘이 세상을 감각하듯, 할머니들의 여생에도 생애 '첫' 순간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기록한다. 할머니-엄마-안나와 경선-다은-다니엘로 이러지는 5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는 무한히 흐른다. 이 흐름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다니엘의 사랑스러운 장래희망과 맞물려 깊은 온기를 남긴다.


안나와 경선에게도 첫 순간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경선이 틀렸다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p. 357)


변해간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아도, 지나간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너머의 문을 열 수 있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것을, 무형하고 막연한 시간이 어떻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감촉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온전히 실감했다.


"그래. 누군가가 기억하면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 거지." (p. 247)


경선의 웃음이 참 행복하고 예쁘다고 진심으로 느낀 안나처럼, 안나 역시 웃을 때의 자신도 충분히 예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다니엘의 명랑함과 다은의 주체적인 선택이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우리들의 이야기'로 계속 쓰이길 응원하게 된다. 한 사람의 몸 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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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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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는 프랑스 문학 번역가 신유진이 사랑한 프랑스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 속에 자신의 사유를 깊게 투영한 책이다. 유려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 귀퉁이에 적어둔 나만의 사소한 느낌을 정성껏 쌓아 올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학적 건축물을 마주하는 듯하다. 


흔히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작가의 삶과 소설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아무리 정교하게 창작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이 작가 개인과 완벽히 분리된 것일 수 있을까. 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내밀한 마음과 생활, 그들의 진짜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시나 소설 외에 그들이 쓴 산물을 종종 찾아 읽는다. 그럴 때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어두운 방들이 마치 열린 문처럼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작품은 결국 작가의 삶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삶과 철학, 인생의 굴곡을 만드는 여러 순간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인간의 본질을 건드린다. 우리는 늘 어딘가를 벗어났다 생각하지만, 결국 본질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들이 와닿았다. 뒤라스의 여자들이 안전한 삶 대신 균열을 선택하고 존재를 선명하게 확인했듯, 카뮈가 설명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기를 자처했듯 말이다.  


우리는 어느 작가의 삶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그와 비슷한 혹은 다른 무언가를 우리 삶에서 발견하기 위해. (p. 32)


하지만 나는 뒤라스도, 카뮈도, 에르노도 아니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 성취로 이끌어낼 힘이 없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어떤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쓰려고 할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내 안의 오래된 향수를 마주한다. 기억이 가진 소멸성, 분명 가졌으나 허공으로 휘발되고 마는 인간사 전반에 대한 아련한 마음이다. 위선일지라도 따뜻한 마음을 먹고 싶은 사람이라서, 사라지는 것을 문장으로 붙잡아두고 싶어 나는 쓰려 한다. 문학은 슬픔의 터널 끝에서 폐허가 아닌 ’그다음의 이상‘을 꿈꾸게 하니까. 절망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게 하는 힘(p.34)을 건네니까. 이 무모하고 아름다운 도약에 매료되어 쓰고 싶은 것이다. 


삶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어 투명해지는 과정(p.56)이며, 자신의 시간을 공간에 새기며 존재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p.165)이다. 글은 그 여정의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넘치는 고백들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이야기의 쓸모와 방향을 묻는 일이다. ‘자기 쓰기’는 거울 앞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거울을 깨고, 그 자리에 창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열린 창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깨고 깨지는 경험이 결국 우리 안에 창을 만들 것이다. 물론 그 창 너머에 누군가의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189)


나의 보잘것없는 글쓰기는 역시 매번 거울을 깨뜨리는 부끄러운 경험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나만의 사투를 이어간다. 나를 균열 내고 부수는 아픔 역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진짜 내가 되어가는 여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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