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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나는 자유롭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모두가 편안한 세상에서.
아무도 그늘에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아무도 조롱받지 않는 세상에서.
혹시 내가 이상주의자냐고? 물론 그렇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여기에 만족한다는 뜻이니까. (p. 36)
44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페미니즘의 정의, 어디까지가 페미니즘인지를 알 수 있다.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이
'평등한 인권'을 위한 운동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평등을 말한다. 그 범주
안에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인종 등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아니란 점이다. 사회에선 남성과 이성애자, 백인과
비장애인이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틀을 만들어놨다. "~는 이래야 해"가 대표적이다. 이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튀는 사람 또는 목소리가 큰 사람, 물 흘리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배척받는다. 배척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코르셋이고,
최근 탈 코르셋은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나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허망한 노력과 시간을 벗어던지겠단 의미로 시작되었다.
폭력이 우리의 인격을 조각했다.
당신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은 크든 작든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폭력은 우리를 부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격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폭력의 손잡이를 쥔 그들보다, 우리가 정교하다. 우리가 미래에 가깝다. 우리가 옳다. (p.
46)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은
"왜 화장 안 했어?",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어머, 살찐 거 봐!", "쟤, 성형했네. 코봐" 등 언어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가장 많다. 이 모든 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 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로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여성에게 쏟아지는 말들이다.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몸의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남자들에게는 몸을 키우라고 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살을 빼라고
한다. (p. 68)
책에서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논한다. 위의 폭력은 여성에게 쏟아진다면 교차성 페미니즘은 이중으로
폭력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흑인 여성, 장애여성, 트랜스 젠더같이 오래전부터 차별받았던 두 부분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흑인 여성은 흑인이라서 일차적으로 차별받음과 동시에 여성이라서 이차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다.
포괄적인 페미니즘이 더 효과적인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행동이다 넓은 차원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이야기할 때, 모든 공동체가 서로 다르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공동체에 필요한 페미니즘 행동이 다른 공동체에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의 페미니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의 평등을 위한다는 것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최선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공동체에 약이 되는 것이 다른 공동체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종, 젠더, 계급, 성적 지향, 종교 등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 (p. 179)
책은 교차성 페미니즘만큼이나 페미니즘의
다양성도 중요하게 다룬다. 각 이해관계는 페미니즘 내에서도 존재한다. 궁극적인 평등의 목적은 같아도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만큼 장애나
성소수자는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생각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깊이도 다르다.
그래서 목적이 같다면 하나의 방법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한다. 1000명의 사람들이 있으면 1000개의 페미니즘 방법이
있는 것이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대로 가다 보면 당연히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진취적인 방향을 위해선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의견차로 생기는 불협화음은 건전한 논쟁이다.
고통받는 여성에게 타인의 시간과 인내와 이해와
연민과 공감과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두자. 상냥하고 호감 가게 행동해야만 그런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도 그만두자. 내가 호감의 규칙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사회가 그은 선 밖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고통을 숨기지 않더라도, 남의 호감을 사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에게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 (p.
127)
우리가 인권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과거에 내가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에게 숨죽이며 살라는 말은 죽으란 말과 다름없다. 이들이 최근
목소리를 낸 것은 주류세력이 자신들을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무시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소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수의 원칙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소수는 여전히 무력하다.
이 책은 계속해서 다양성의 존중을 말한다. 과거의 나에게 겁내지 말라며 편지를 쓴다. 44명의
사람 중에는 남성도 있다. 그는 남성으로 태어나 갖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휘두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말한다. 강요하는 자는 없다. 다만, 자신들이 선택한 이 길에 후회가 없단 걸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