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이는 사람 - 달달북다 앤솔러지
김화진 외 지음 / 북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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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낡은 감정은 여전히 유행 중이다. 과거에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정해진 코스 안에서 이뤄지던 사랑이, 이제는 동성, 친구, 반려동물 나아가 연예인을 향한 덕질까지 다양한 형태로 뻗어간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걸 넘어 정신적인 의지만으로도 힘이 되는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란 뭘까'라는 오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은 달달북다 앤솔로지 시리즈다. 12명의 작가가 칙릿, 퀴어, 하이틴, 비일상이란 주제와 로맨스를 엮어 저마다의 사랑을 정의한다. 각 단편의 시작에는 작가 개개인이 내린 사랑의 뜻이 적혀 있는데, 납작하다 여긴 단어가 다채로울 수 있다는 데 감탄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언제나 뭔가가 고프지 않은 동시에 고팠는데, 그게 아마도 사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있기는 있는 동시에 없는 것만 못하게 있는 것이다. (p. 33)


가장 많은 밑줄을 그은 건 김화진 작가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였다. 이 외에도 씁쓸한 하이틴의 맛을 보여준 백온유 작가의 <정원에 대하여>, 영화 같은 여운을 남긴 함윤이 작가의 <위도와 경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권혜영 작가의 <애정망상>은 화면 속 누군가를 향한 덕질만으로도 충분한 도파민을 얻는 묘사에 깊이 공감했다.


시간이 쌓이다 보면 시간도 흘러 있겠지. 너희도 변할 테고. 그걸 알았으면 해. (p. 351~352)


나는 어떤 사랑에 가장 힘을 얻을까. 내가 주고 싶은 만큼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되, 내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작은 표현을 받을 때 특히 위로가 된다. 내 바운더리를 존중해 주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다소 이기적인 사랑을 원하기에 연애를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중요한 건 나를 중심으로 삶과 관계를 꾸려가는 일일 테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신경 쓰이는 사람> 속 다양한 사랑 방식을 돌아보면, 그중 하나쯤은 내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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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터가이스트의 죄수 ㅣ 아시야 초자연현상 2
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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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 '소란스러운 유령'이라는 뜻인 '폴터가이스트'. 아무도 없는데 물건이 움직이거나 조용한 집에 소음이 발생하는 등의 초자연현상을 말한다. 낡은 구옥 거울 속에서 미지의 검은 형체를 만난다면, 그 형체가 오래전 죽은 여자아이이고 꺼림칙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스릴러를 예상했던 이야기가 점점 귀신과의 조우를 담은 호러임이 드러나면서, 공포 장르를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 나는 갑자기 놀래는 고전적인 수법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요양원으로 옮기면서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 도조는 그곳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목격한다. 2층에 있는 거울이 움직이고, 괴상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고, 거울 뒤에 형체가 보여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그런 기현상들이다. 생계형 배우인 도조는 매니저의 추천으로 소위 떡상을 노리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고,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단과 함께 비밀에 다가가면서 사건은 전환점을 맞는다. 갑자기 도조 쇼코가 실종된 것이다. 


조사단의 중심은 하루코는 대담하게 사건을 파헤치며, 설명하기 황당무계한 사건에 살을 붙여 나간다. 갑작스러운 현상을 심신미약이나 최면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 안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도조의 실종 전까지 맥빠진 이야기가, 납치되어 지하실에 갇힌 도조의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긴장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도조가 같은 성을 가진 아버지의 과거란 사실이 밝혀질 때는 소름이 돋았다.


결국 죽어서도 원한이 깊었던 아이의 슬픈 염원이 폴터가이스트의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하다 죗값을 치르게 되는 도조는 대체 무슨 죄인지, 수십 년이 지난 아이의 뼈는 왜 떨어져도 멀쩡한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마무리와 설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호러를 단순히 독자를 놀래기 위한 장치로만 쓴 작품은 아니었지만, 느슨해진 결말과 흐릿해진 주제는 아쉬웠다. 끝내 풀리지 않은 물음들이 한기처럼 오래 남는 겨울 초입처럼 남아 뜻밖의 호러의 계절을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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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곁에 두어 좋은 말 - 100년의 문학 작품에서 길어 올린 마음들
나민애 지음 / 북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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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처럼 마음을 살랑이는 말을 좋아한다. 시나브로, 윤슬, 선연하다, 까무룩, 일렁이다, 말간, 벅차오르다 등등. 말랑한 단어는 꼬인 마음을 쉽게 무너뜨린다. 사회가 각박할수록 더욱, 부드럽게 감싸는 언어가 필요하다. 쓰면 쓸수록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나민애 교수는 어딘가에 당신의 단어가 있다며 142개의 단어를 문학 작품에서 그러모아 삶의 곁에서 느낀 짧은 단상을 덧붙인다. 정확한 쓸모로 단어를 대하는 게 아니라 좋았다. '따뜻하다'와 '따듯하다'의 온도차처럼, 각자 가진 고유한 마음의 감각에 맡겨보라 한다.


특히 '들뜨다'와 '달뜨다'의 미묘한 차이를 서술한 부분이 와닿았다. 들뜬 마음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상기된 얼굴과 주체할 수 없는 몸의 떨림이 말해준다. 하지만 달뜬 마음은 안에서 발산된 마음이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게, 제어하지만 결국 피식하고 삐져나온다. 사전의 고유한 뜻과 작가가 말하는 감각적인 설명을 읽고 나면 '맞아, 바로 그거야!'하고 맞장구를 치게 된다.


깊이 우러나와서 내 사전에 이미지로 각인된 단어는 단골처럼 등장한다. 마르고 닳도록 비슷한 마음이 들 때마다 쓴다.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나를 대변한다. 그렇게 나는 그 단어가 되고, 삶은 그런 단어가 사는 생각처럼 흘러간다.


기쁨 때문에 세상이 살만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서 기쁨을 찾는 것이다. 기쁨을 찾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새롭게,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창조는 예술가의 것. 만약 당신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당신은 자기 삶의 예술가인 셈이다. (p. 59)


기존에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더 좋아진 단어와 몰랐지만 알게 된 어여쁜 단어를 다이어리에 메모했다. 까무룩, 함초롬, 총총히, 하마하마, 꽃자리, 말갛다.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잔잔한 호수에 파동이 인다. 오래간만에 흘러가는 생각에 맡기며, 대접하지 못한 내 단어의 실타래를 찬찬히 풀어 되감아 봤다.


나는 내 언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다. 가급적 많은 언어를 보살피고 싶다. 내가 키우던 언어들은 제 친구를 데려오면 매우 반가워할 것이다. (p. 242)


좋다. 단순하고 이 명쾌한 두 글자의 감상이 계속해서 내 마음의 주인이길 바란다. 아직 마주치지 못한 새로운 마음의 말도 기꺼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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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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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작년이었던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었다. 생동감 넘치는 서사라 수록작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신기하게도 그 소설은 출간 후, 큰 화제를 모아 열풍처럼 퍼져나갔다. 그 과정을 보며 이번에는 또 어떤 보석 같은 소설이 수상작에 있을지 옅은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번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박솔뫼 작가의 「사과」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창밖 풍경이 형체를 잃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화자 '애리'는 흔들리는 그 흐릿한 풍경과 닮은 자신의 일상을 말한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오던 '선호'와의 인연 그리고 결국 서로의 차이로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마음속에 작은 빗금이 그어졌다 이내 메워지는 미세한 회복의 궤적과 닮아 있었다.


「사과」는 어떤 날과 어떤 날의 사이에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여전히 짐작도 못 하는 것들 사이에서 쓴 소설이다. 그러나 기분은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고 사이를 넘어 앞으로 뒤로 어딘가로 범람해 나아간다. (대상 수상작가 수상소감 中)


이 슴슴한 소설이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명확히 맺어진 관계도 없이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지만, 애리의 방처럼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헛헛한 마음을 그려내고 싶었던 걸까. 채워졌다 비워지는 삶의 속성 속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다고 표류하진 않은 채 나아가는 감각이 맴돈다. 마치 동네 산책처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골목을 돌 때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다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일상처럼 말이다.


황예인 평론가는 <그래도 비워두기>에서 애리의 '비어 있음'이란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고 짚어낸다. 선호의 텅 빈 방은 애리의 방과 다르다. 침대와 책장,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음에도 애리는 가구들 사이 텅 빈 구석을 발견한다. 이런 무채색의 마음은 책장을 넘길수록 그 폭을 넓혀가며 다른 작품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수록작인 황시운 작가의 「일일업무 보고서」에 이르면 최소한의 존엄마저 무너져 내린 내면이 돌덩이처럼 육중하게 다가온다.


반려묘를 잃은 상실, 학폭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에 대한 울분. 그럼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부유하듯 찾아 헤매는 모습까지. 소설들은 인간이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작은 응어리가 있으며, 아무리 비워낸다 해도 결국 다시 채워 넣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일깨운다.


특히 「일일업무 보고서」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히 남았다. 하반신 마비로 배변활동마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진'은 결국 통제력을 잃은 신체에서 배설물이 흘러나오는 상황을 막지 못한다. 악취와 수치심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을 '더럽다'고 말하던 부분은, 비록 겪어보지 못했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스스로 지켜낼 수 없는 이의 서러움과 슬픔이 오롯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결국 그만둘 수 없는 생의 굴레에서 우리는 영원해 보이는 사투를 이어가며 늙어갈 테고,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또한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별일 없는 일상이 주는 작은 평화에 안도하다가도, 궤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는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한 채,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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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 공감과 이해를 경쟁력으로 만드는 대화의 기술
비치키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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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대화의 경쟁력을 기대한 것에 비해 다소 아쉬운 책이다. 1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기존 자기 계발서에서 접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화법이 주를 이루었고, '인간은 진심을 담아 대화할 수 있다'는 식의 명제는 다소 뻔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2부로 넘어가 대화의 깊이와 관점을 다루는 파트에 이르자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들이 생겼다. 특히 AI와 인간 대화 차이를 다룬 부분에선 김애란 작가님이 "AI와 인간의 차이는 망설임"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보는 대체될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오가는 순간은 대체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지만, 내 질문에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까지 지어 보일 수 없다. (p. 30~31)


AI는 망설임 없이 완벽한 답을 내놓는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인공지능의 등장은 지식을 얻고 체화하는 데 걸리던 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나는 AI의 발전으로 촉발된 인간의 불안함은 기술의 뛰어남 그 자체보다, 빠른 속도와 완벽함 앞에서 인간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진짜 무서운 지점은 맹목적인 믿음이다. 모든 대답을 진실인 것처럼 확신하는 AI와의 대화 구조 속에서, 검증 없이 믿어버리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발전하는 기술을 우리가 어떤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흔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깊이 생각하는 거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깊은 것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다. 판단력은 더 많이 덧붙이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는 능력에 가깝다. (P. 118)


AI의 탄생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늘 존재했다. 논리보다 목소리의 크기가 중요한 사람, 내 감정만 중요하고, 반대의 경우는 생각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내가 왜 이해해야 하냐고 따지는 사람들. 그 사이에 생긴 소통의 공백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측으로 메우고 있다.


핵심은 균형이다. 무비판적으로 결과물을 긁어다 쓰지 않는 것. 'AI는 완벽하고, 인간은 감정적이다'라는 단순한 구도에 갇히지 않는 것. 주체적인 태도로 AI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할 때,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유연하게 넘어서는 서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보는지만 분명하다면, AI는 그것을 세상 밖으로 구현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p .198~199)


내 식으로 중심을 잡아 균형을 찾아가는 자기통제.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질문을 던져주었단 점에서 의미 있었다. 결국 감정을 읽는다는 건, 남에게 단순히 공감을 잘해주는 것을 넘어 맥락에 맞게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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