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김미향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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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가족은 평안하신가요?"

 

가족 내에 문제가 많은데 별 탈 없이 유지되고 있다면 필시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한다. 대개 그 희생은 부모님인 경우가 많고,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많다. '엄마~'하고 마음을 담아서 불렀던 적이 까마득해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엄마란 여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엄마도 저자의 엄마처럼 희생만 하였기에, 좋은 시절 못 누리고 자식들을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따뜻한 손길보다는 차가운 생계로 내몰렸던 사람이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책장을 쉬이 넘기기 어려웠고 몇 번이고 읽기를 포기했다. 그만큼 저자의 엄마, 그리고 이 시대의 엄마 그리고 가족이란 공동체가 가진 상처의 흔적을 되짚는 건 타인의 삶을 내 삶으로 가져와 경험하는 것과 같다.

 

저자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녀를 추억하며 뒤늦은 후회와 그리움을 글로 풀어낸다.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야 깨닫는 잔혹한 진실들, 살아계실 때 살뜰히 대하지 못한 지난날의 냉소와 차가움, 단 한 번이라도 엄마의 말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지 못한 회한은 파도처럼 밀려와 살을 에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를 환영해준 손길이었다."라는 말에 울컥한 건, 새 생명을 지키고자 했던 그녀의 처음은 또 다른 처음을 포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로는 늘 엄마 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엄마 편을 들어야 할 상황이 오면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중립적인 척하는 나 자신의 위선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엄마가 원하던 바로 그 순간에 엄마 편을 들지 못한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작정하고 엄마 편이 되기로 했다. (p. 6)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져 1부는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그녀를 찾아오는 이야기, 2부는 죽음 이후에 가족이 겪는 상실과 이를 이겨내는 이야기, 3부는 엄마라는 칭호가 아닌 여자 정숙 씨의 이야기를 한다. 그중, 꿈에 나타난 엄마 이야기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읽어야 할 정도로 슬펐다. 꿈을 꾸면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좋지만 꿈을 깨면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했던 저자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내가 고통에서 헤어났으리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깊은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어두움은 터널에 있어 본 이들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쉽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상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무섭다. 나는 이제 다시는 누구의 고통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p. 71)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결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동안은 삶을 동력으로 살아왔지만 이젠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아간다. 죽음은 삶과 함께 불시착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나도 외할아버지 부고가 그랬다. 내가 슬픈 건지 아닌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공기는 이전에 느꼈던 것과 매우 달랐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인 나, 남편을 보낸 외할머니으 눈물, 그가 남기고 간 삼촌, 이모들 그리고 화장터에서의 마지막 인사. 검은 상복을 입은 어색한 내가 아직은 해맑은 동생들을 케어하고, 상실과 무력감으로 뒤덮은 나의 엄마와 가족을 바라보는 일은 지금 떠올려도 숨이 턱 막힌다. 그래서 섣불리 그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은 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생의 우울과 폭력, 나이듦과 병듦, 장애와 학대, 냉대와 모멸, 지척에 있는 죽음과 그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남겨진 이들의 삶,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자 누이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여성이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존재 그 자체인, 우리 곁의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그래서 나를 비롯해 엄마 곁의 사람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조용한 내 방에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쓰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그 글을 쓸 때만큼은 엄마가 곁에 있는 듯했다. (p. 195~196)

 

그녀의 어머니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차별이란 세상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딸이란 이유로 각종 권리를 박탈당했고 삶을 옥죄는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어린 생명을 희망으로 여기며 살아내고자 했지만 세월이 가져다준 우울과 늙고 병들어 가는 육체 앞에서 결국 해방되지 못했다.

 

독자인 나도 감히 행복을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이야기를 딸인 저자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했을까. 자신처럼 딸은 살지 않길 바라며 필사적으로 저항해왔을 보이지 않는 노력은 누가 알아주어야 할까.

 

누군가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다. 하지만 경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저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과정이며 삶의 덧없음을 마주함과 동시에 또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지옥이다. 어렵사리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내 생명을 빚진 엄마에게 거창한 효도가 아닌 사소한 효도를 자주 해야겠다고 느꼈다.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면 가고, 때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웃고 있다면 같이 웃고, 힘들어 보이면 돌림노래 같은 사연이라도 처음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일. 미래에 하는 후회는 이런 것들을 제대로 못해드렸다는 것일테니까.

 

"엄마는 행복하지 않았어"라는 말보단 "엄마는 네가 있어서 그나마 행복했어"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니까. 그게 나에게도 행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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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다 임마 -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들에게
장성규 지음, 이유미 그림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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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기운이 축축 처졌다. 오늘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버티는 것만이 답인 걸까 물음표가 주위를 뒤덮어 다짐을 하기 어려웠다. 그럴 때, 눈에 들어왔던 <내 인생이다 임마>. 이 때다 싶어 책을 들고 멀리 바람 쐬러 나간 웅성거림이 가득 쌓인 카페에서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마음 한구석이 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꾸임 없이 솔직한 장성규 아나운서의 글은 TV에서 보는 이미지와 확연히 달랐다.

 

내가 장성규 아나운서를 알게 된 건, JTBC <아는 형님>이다. 장티쳐란 별명으로 패널들을 쥐락펴락하고, 뜻밖의 분장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엄청 웃긴 아나운서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뉴스도 진행했고, MBC 신인 아나운서 발굴 프로그램이었던 <신입사원>에서 최종까지 갔었다니. 과거의 스펙에 여러 번 놀랐다. 그뿐이 아니라 대범하고 용기 있는 인싸 기질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소심하고 팔랑귀에 방송 울렁증까지 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따돌림도 당하며 자존감도 많이 낮았다는 이야기를 읽는데 그는 순수한 노력파 인싸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절망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만큼 아끼고 도와주는 친구도 있었다고 말할 만큼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공감능력은 훗날 자신을 크게 위로해주는 친구를 선물해주기도 한다.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회계 공부를 하며 이 길이 내 길인가 고민이 많던 이십 대 후반, 그는 자신의 방향을 크게 유턴한다. 차마 입 밖에 꺼내진 못했지만 겉으로는 하고 싶어 안달 난 일, 그건 "넌 그거 되게 잘할 것 같은데?"라고 인정을 받으면 불씨처럼 살아날 숨은 열정이었다. 그건 바로 아나운서! 그의 은사님도, 친구도, 친척도 모두 아나운서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한 아나운서의 길은 용기를 내보게도 해주고, 나란 사람을 성장시켜 주는 고마운 업이 된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해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책하면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 먼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보며 무엇으로 행복을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본능적으로 알기를 바란다. (본문 중)

 

 

꿈에는 늦은 나이가 없다. 그럼에도 우린 나이를 걱정한다. 당연히 암묵적인 제한이 존재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까지 지배된다. 그도 그랬다. '아나운서를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인가?', '여기서 실패하면 나는 어쩌지?' 하는 보편적인 고민이 드러난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주어진 일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찾으려 할 것! 나이란 고민은 절대 해결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래서 <신입사원>이란 프로그램에 나간다. 매주 자신만의 끼를 뽐낸다. 그간의 무대 경력과 그만의 관종 능력(?)으로 대중을 휘어잡는다. 그렇게 각인된 이미지는 JTBC에서 알아주었고, 자신을 불러주는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다. 노력과 최선, 중요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를 표출해내는 사람이 있지만 그 틈에서 "행복함"을 드러낸다면 그건 또 다른 경쟁력이 아닐까?

 

 

 

주제 파악은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된다. 출발이 느리다고 전전긍긍하지 말자. 나의 답답함이 책을 읽으며 느슨해진 건, 내가 가진 고민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은 고민대로 놔두고, 나는 내가 가야 할 길만 바라보면 된다. 움직이고, 도전하다 보면 그게 꼭 원하는 결과가 아니어도 기회는 뜬금없이 손을 내밀 테다. 결국 한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가 되고 "장성규"란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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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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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악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다시. 세상이란 그런 것. 모든 것이 무너진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p. 13)

 

어느 날, 해안가에 노인이 떠밀려 올라온다. 그 노인은 몇 년 전, 난민 아이와 겹쳐지며 소설이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최악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인 영국을 살아가는 엘리자베스는 브렉시트 이후에 벌어진 사회의 문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거리에는 타국에서 온 사람들을 멸시하는 고성이 오가고 이웃을 경계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도 확실히 우세하지 않았던 영국의 선언은 속았다는 떨떠름한 기분을 국민들에게 얹어줬다.

 

매일 아침 그녀는 어쩐지 속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그러면 어느 쪽에 투표했든 속았다는 기분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온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p. 256)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지나며 엘리자베스와 대니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웃을 인터뷰하라는 숙제를 받고 엘리자베스는 근처에 사는 노인 대니얼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늙은 호모라는 소문이 있다면서 그녀의 엄마 웬디는 둘의 만남을 가로막는다. 그에 굴하지 않고 엘리자베스는 대니얼을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예술과 삶,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 장차 그녀가 미술강사로 자라게 된 건 대니얼의 영향이다. 그는 어린 소녀에게 다채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정신적 교감을 나누어서일까. 엘리자베스는 그가 요양원에서 잠만 자도 매번 찾아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만들어 내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실제 세상이 이미 있으니까요. 그냥 세상이 있고, 세상에 대한 진실이 있어요.

네 말은 그러니까 진실이 있고 그것의 가짜 버전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그 가짜를 듣고 산다는 거로구나. 대니얼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은 실재해요. 이야기들은 만들어지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진실인 건 아니지. 대니얼이 말했다.

그건 초강도 헛소리에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낸단다. 대니얼이 말했다. 그러니까 늘 네 이야기의 집에 사람들을 반겨 맞으려고 해 보렴. 그게 내 제안이다. (p. 158)

 

어린 엘리자베스가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할 때, 그는 사람을 반기라는 말을 해준다. 엘리자베스가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해준 건, 대니얼의 힘이었다. 오히려 혐오와 분노가 주가 돼버린 차가운 세상 속에서 그래도 엘리자베스가 버티며 살아간 건, 그와의 우정 때문이다. 대니얼의 하루가 행복한 꿈만 꾸는 수면기였을 때도 그를 찾아가 매일 책을 읽어주고 병원 직원과 꽉 막힌 대화를 반복한 건, 이런 사회이기에 사랑이 필요하고 사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이야.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조금 아는 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보았기를 바라야 해. 다른 건 결국 별로 중요치 않아. 대니얼이 말했다. (p. 210)

 

엘리자베스 주변은 답답하다. 우체국에선 여권 사진이 규격에 맞지 않다고 계속 반려하고, 이웃들은 늘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성소수자와 여성을 혐오하고 난민 문제로 자국민이 아니면 "꺼져!"라고 길거리에서 냉혹하게 소리친다. 나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너도 나도 모두 인간이기에 고정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엄마가 대니얼을 호모라고 기피했지만 자신의 동성 연인이 생겨 사랑을 나눈 것처럼. ,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해 건너온 청년들의 재정 지원을 삭감한다는 발표가 나자 기압계를 울타리에 던진 것처럼.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변했으니까.

 

영국만이 이러한 혼란을 겪고 있을까? 난민 문제는 제주도에서 이미 현실이다. 여성 혐오는 강력한 목소리가 시작됐다. 성소수자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들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관료주의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조직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악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불안한 현실에서 봇물 터지듯 공동체는 변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친애하는 대니 오빠,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보고, 할 수 있다면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때 절망하지 않고 가장 적절하게 대처하기로 어떻게 선택하느냐야. 바로 그거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하는 부정적인 행위들을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야. 희망은 바로 그거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하는 부정적인 행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 그것뿐이야. 그들도 우리처럼 모두 인간이라는 것을, 사악한 것이든 정당한 것이든 인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세상에 눈 깜짝할 순간만 머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데 그 눈 깜짝할 순간은 다정한 윙크일 수도 있고 자발적인 무지일 수도 있는데 자신이 두 가지다 가능한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해. 그리고 악이 턱까지 차 있다 해도 그 너머를 볼 준비를 해야 해.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친애하는 오빠의 따뜻하고 매혹적이고 쓸쓸한 영혼을 향해 직접 말하려고 해.) 시간, 우리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그것을 허비하지 않는 거야." (p. 247)

 

속는 기분이 든다면 이 때문이 아닐까. 잊지 말아야 할 자명한 사실, 그건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도 인간이란 것이니까. <가을>이란 제목이 붙은 건, 마치 대니얼의 모습처럼 우리도 곧 시들해져 겨울이 될 것이란 생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옳고 그름의 선을 잘 구축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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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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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밤, <스페인 하숙>을 보는 재미로 지낸다. '순례길'을 테마로 했던 예능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게 만든 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알베르게를 운영하며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부엔 까미노' 격려 인사를 건네는 프로그램 뒤엔 '왜 걷는가?'란 물음이 감춰져있다. 스페인 건축 전문가 김희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건축'이란 테마로 걷는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걷는 프랑스 길을 택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황량한 대지 위에 세워진 건축물들의 유구한 역사적, 종교적 가치가 새겨져있다.

 

오늘날 파리가 매력적인 것은 순례길의 제로 포인트여서도 아니고,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중세와 근대의 아픈 역사를 사랑으로 감싸고 미래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파리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게 좋다. (p. 51)

 

순례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는 길이 가장 유명하다. 파리하면 생각나는 에펠탑의 묵직함은 지난 시대를 묵묵히 견뎌온 역사의 실물이며,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역사를 말한다. 얼마 전, 불타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웅장하고 아름답던 풍채를 사진으로 나마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에게도 숭례문 화재라는 비슷한 아픔이 있었기에 시대를 대표하던 건축물의 소실은 상실임을 알 수 있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축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쉬운 발길을 성벽 끝에 폐허로 남은 산 페드로 성당으로 옮겼다 (p. 97)

 

중세 시대 순례자들은 목숨을 걸고 길을 걸었다고 한다. 성당마다 그들을 위로하던 성모마리아는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보호자였다. 순례란 무엇일까? 소중한 것을 걸어 얻고자 했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평소에 걷지 않던 험준한 길을 걸어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간신히 몸을 뉘어 보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당은 그런 존재였던 것인가 생각해본다.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은 길이란 목적지로 현대인을 위로한다. 나는 걸을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지만 책으로나마 생생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 그간의 기분이 환기된 듯하다. 순례길은 엄청난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애초에 길을 걷는다고 나 자신이 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그들이 배운 건 걸으면서 혼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그 이외의 불필요한 생각을 잠재우는 일이다. 걸을 땐 걷는 것만이 중요하다. 내일의 숙제나 과제를 여기서 할 수도 없을뿐더러 당장 다음 알베르게에 도착하려면 바삐 내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가장 길고 아름다운 박물관'이란 띠지 문구는 이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끝이 있지만 당장은 보이지 않는 길에는 오로지 '걷는 나' 그리고 지난 이들이 세운 영혼의 건축만이 남아있으니까. 소원을 빌며 돌탑을 차곡차곡 쌓는 것처럼 이들도 부족한 연장으로 돌을 깎아 자신의 영혼을 새겨 넣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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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흐려도 모든 것이 진했던
박정언 지음 / 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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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취준생이라면 '나에게 잘 맞는 자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막상 꿈꾸던 자리에 있어도 생각했던 곳이 맞는지 자주 헷갈린다. 그녀는 기자 생활이 맞지 않아 10개월 만에 이직을 한다. 그런데 이직한 방송사는 얼마 가지 않아 파업을 한다. 마음을 좀 풀어도 될 것 같은 라디오국에서도 아날로그 매체인 라디오가 설자리를 고민한다.

 

행위는 지속될 때 빛을 발한다. 이 명제에는 '보통의 존재'들뿐 아니라, 보통을 넘어선 특별한 존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오로지 지속될 때만이, 행위는 그 자신도 모르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진화한다. 그러니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대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한다. 계속한다. (p. 29)

 

즐거운 일이 가득했을 때 우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반면, 슬프고 힘들 때는 토로하고 싶은 곳이 없어 기록한다. 그녀에겐 스무 살부터 써온 일기가 있다. 이 책은 수년간 써온 그녀의 일기이고, 생의 기록이고 쓸모를 고민했던 사람의 고백이다. 그 안에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길거리로 출근하는 방송국 사람들의 모습과 휑해진 방송국을 늘 깨끗이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눈앞이 깜깜한 사람들을 취재해야 하는 기자가 있다. 나에게 좀 더 맞는 자리, 내가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서 삶의 균형이 흔들려버린 연출자가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나라는 자아와의 저울질이기도 했다. 때론 나를 내놓아야 하고, 몸을 사려야 했던 사람이 있다.

 

이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을까. 경계선이 있다 해도 아마 몹시 흐릿해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든 자칫하면 밟을 수 있는, 흐리고 또 흔한 선, 삶이 우리를 살짝이라도 떠밀면 속절없이 넘어가게 되는. (p. 166)

 

삶에는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이상한 이분법이 존재한다. 마치 외줄 타기 장인처럼 한발 한발 맨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곧두세워야 하는 순간이 끼어든다. 어색한 정장을 입고 출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버텨야 할 이유가 있는지 생(生)과 자아실현이 고민이란 전쟁을 선포한다. 다들 잘만 일상을 보내는 것 같은데 나란 요란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어 내뱉는 한숨 속엔 매듭이 꽈악 묶여있다.

 

선택은 미래를 바꾸기도 하지만 과거를 새로 기억하게 합니다. 미래를 바꾼 대신 과거를 다시 쓸 수밖에 없는 것, 이것도 선택의 대가 중 하나인 걸까요. (p. 114)

 

다시 돌아가서 그녀가 사회 초년생 때 했던 고민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대신 삶의 목소리를 포착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익숙함으로 덮여졌다. 쓸모를 찾아 떠난 자잘한 기록들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는 많은 파도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 자리를 찾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소리의 세계에 귀를 열고나니, 그건 세상을 얼마나 시각 중심으로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소음이라고만 여겼던 소리 안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었고, 눈을 감고 소리만 들었을 때 더 잘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관계 같은 것들이 그랬다. 대부분 어떻게 '보이는지'에 신경을 쓰다보니 어떻게 '들리는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소리야말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양상, 그리고 또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p. 17)

 

여러 자리에 있었기에 볼 수 있던 풍경은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평온하기만 하면 아무도 뒤돌아 보지 않을까 봐 이리도 소란스러운가 보다. 나는 여전히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언젠가 알아서 알아봐 주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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