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7.10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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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확의 계절 10월이다. 곧 있으면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을 것이다. 귀향길 정체, 고소한 전 냄새,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벌써부터 이미지로 떠오른다. 이번 샘터에는 이런 가을 느낌 물씬 풍기는 글들이 보인다. 노력의 결실을 말하는 글,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글,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의 글 등 다양한 소재들이 마음을 풍족하게 해준다.

수많은 글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글은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알베르토가 쓴 것이다. 자신의 친구 스테파노가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위해 해준 말에 관한 글이었다.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던 그에게 스테파노는 이렇게 말해준다.


"알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생각보다 많아.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또 다른 길로 가면 돼.
그러니까 처음부터 정답만 고르려고 겁먹을 필요는 없어." (p.63)


이 말은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인생에서 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생각날 것 같은 말이다. 그동안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나를 가둬둔 것 같다. 이것저것 선택하며 대가를 치르다 보면 넘쳤던 선택지는 가지치기가 되어 진짜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만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스테파노가 위로를 건넸다면 모네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 같다. 미술에 엄청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모네의 작품은 좋아해 찾아보던 편이었는데 이번 <미술관 산책>에 그의 작품에 관한 글이 실렸다. 모네는 정원을 열심히 가꿨던 화가로 유명한데 그중 변화하는 물을 그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순간 물 위에 하늘의 한 모퉁이가 반사되기 때문에 연못은 늘 변화하고 움직임이 있네.
이 움직이는 식물과 물의 변화하는 모습이 얼마나 흥미를 끄는가가 중요하다네."(p.79)

 

그가 그린 수련 연작 시리즈는 시간에 따른 물과 수련의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사소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인 면도 좋았지만 즐거워하며 관찰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멋있기도 했다. 이런 그를 보며 나도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서 모네처럼 멋있는 성과를 얻어내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영화 <더 테이블>에 관한 글도 좋았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이고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더욱 유심히 읽은 글이다. 카페라는 열린 공간에서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70분간 네 커플을 바라보는 연출은 보는 내내 미소를 띠게 했다. 자극적이지 않은 사소한 이야기들이 주 무대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상영되니 그 이야기들이 특별하게 여겨진다. 며칠 전에는 영화에 담지 못한 비하인드스토리를 엮어 책으로 출간돼 꼭 책과 영화를 함께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영화들이 뜨거운 것에 집중하는 시기지만 사소한 것에도 집중하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누거나 엿들었던 일상의 여러 대화를 반추해보게 된다. 모두가 뜨거운 영화 같은 삶은 사는 건 아니기에 이 사소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더 큰 공감과 울림을 전해주기도 한다. (p. 96)

 

결실이 맺은 일도 그렇지 못한 일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끝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으로 하루하루를 살기보다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일을 차례차례 처리하면서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이 긴 여정도 '끝'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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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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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길거리를 걸을 때 이어폰을 꽃은 사람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음악은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 속에 비지엠이 되어가고 있다. 박상 작가도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달아서 끈적하다는 제목은 음악에 대한 사랑인 것 같다.


 

그냥 걸을 때보다 음악을 들을 때 좀 더 오래 걸을 수 있지 않은가. 음악은 언제나 무언가를 견디게 해주지 않았던가. (p.112)

 

음악은 무언가를 견디도록 해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나 역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3 시절 정말 싫어했던 수학문제를 몇 시간이고 앉아서 풀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있어서였다. 박상 작가도 그렇다. 붙잡고 쓰려 노력해도 써지지 않는 원고를 쓰도록 해주는 것도 음악이고 고갈된 소재를 채워주는 것도 음악이었다. 그가 집을 리모델링 하다가 때려치울 뻔한 것을 다시 붙잡아 끝내도록 해준 것도 음악이었다.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법은 거의 없다. 걱정 그만하고 문제 속으로 한 발을 쭉 내디뎌야만 어떻게든 그 문제를 풀 실마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호치민에서 길을 건넌 뒤 나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p.79)

 

호치민에서 길을 건널 때, 도움을 주었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보면 다시 한 번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매섭게 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기도문 같았던 이 곡은 무사히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마 이 곡을 되내이지 않았다면 그 도로를 건너는 도전을 했을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하지만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힘이 되어주는 무언가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음악은 때론 아픈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면도 있다. 기억 저편에서 특정 음악을 듣고 울던 내가 생각나고, 그땐 왜 그랬을까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짜서 들어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하고 듣기 힘든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작가가 산울림의 음악을 전곡 재생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1번 트랙부터 정주행을 할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을 읽어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동화되고 있었다.

작가의 여행담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돈을 모아서 떠나는 게 아닌 카드로 질러놓고 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방식이 개성 넘쳐서 웃음이 났다. 가장 싼 방에서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며 아프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이겨내고 다시 돌아오는 그 여행기는 고생인지 여행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국 못 이겨 다시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고생은 결국 희석된 추억으로 저장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음악도 여행도 모두 현실을 견디기 위한 잠깐의 도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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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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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쓰가루 백년식당>, <당신에게> 등 많은 작품을 쓴 모리사와 아키오의 신작이다. 일본 소설의 특유 감성을 묻어 내면서 따뜻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그의 스토리텔링이 두드러진 소설이었다. 이전부터 그런 그의 감성을 좋아하던 터라 이번 신작 역시 기대가 되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주인공 '하야마 타마미'의 청춘을 그려내기에 충분히 필요했다고 보인다.

이 책은 따뜻하고 잔잔한 스토리와 다르게 일본의 사회문제를 적절히 녹여내고 있다. 고령화, 고독사, 다문화 가족, 성폭행, 청년이 없는 시골 등의 문제들이 위화감 없이 소설의 배경으로 쓰인다. 고령화로 인한 심부름 서비스를 하는 타마미의 모습은 실제 인물에서 가져온 것이다.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지만 그만큼 심부름 서비스의 어려움이나 문제점도 소설에서 드러나는 만큼 작가의 관찰력과 정보 수집 능력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주인공 '타마미'는 20살 청춘이다. 대학을 자퇴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심부름 서비스를 창업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 과정에서 새엄마인 '샤린'과의 마찰을 빚는다. 사사건건 샤린의 행동이 거슬리는 타마미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좋지 않다. 특히 엄마를 위해 기도드리는 샤린의 모습을 볼 때 엄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샤린은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고 타마미와 한 가족이 되기 위해 남모른 노력을 한다. 가족 전체를 잃은 기억이 있는 샤린과 엄마를 잃은 타마미는 서로 비슷한 상처가 있지만 이를 보듬으려는 서로의 표현방식은 늘 어긋나기만 한다. 이런 타마미에게 외할머니는 이런 말을 해준다.


"두 사람을 저울에 올리면 안 된단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야. 에미는 에미, 샤린은 샤린이지.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고 둘 다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란다. 타마짱이 샤린과 잘 지낸다고 해서 엄마를 잊는 건 아니지 않겠니? 또 에미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p.352)


외할머니는 샤린이 엄마 대신이 아니며 그녀를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엄마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저 둘 다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기에 둘 다 사랑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가 해준 말이기 때문에 타마미에게 더 큰 울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타마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할머니의 말은 오랫동안 살면서 축적된 지혜가 녹아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이런 타마미의 모습이 예쁘게 포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샤린의 음식에서 엄마의 맛을 느끼면서 당황하는 모습처럼 좋은 점과 싫은 점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억지로 그녀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지만 결국 집을 깨끗이 하고 식당을 같이 운영하며 아빠의 곁에 있는 것은 샤린이란 사실을 부정하려 해도 할 수 없음을 그녀는 안다. 일상 곳곳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타마미가 밉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가져봤던 마음들이라 공감이 갔기 때문일까?

이와 더불어 타마미가 심부름 서비스를 하려는 마음이 예뻤기 때문에 그녀가 밉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외할머니를 떠올려 생각한 이 사업 아이템은 후루타치 아저씨를 통해 실습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역시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뻐하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p.196) 라고 말하면서.

마지막 치요코 할머니의 말이 이 긴 소설의 끝을 장식해준다.


되도록 좋은 기분으로 살려 한다. 그렇게 결심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각오 따위 필요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긴장을 풀고 이 세상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p.438)


치요코 할머니, 타마미,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소스케와 마키, 샤린과 아빠처럼 모두 기분 좋은 느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것 같다. 긴장감 있는 삶보다는 살짝 풀어진 채 즐기는 삶이 더욱 자유롭고 행복한 삶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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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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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천국이란 이상향이 존재한다. 요즘에는 이직이나 퇴사를 통해 쉼 없이 달려온 나를 달래주는 일이 천국처럼 느껴진다. 적당한 임금과 자유로운 휴가, 야근 없는 삶처럼 당연하고 소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조차 마음대로 바랄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들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퇴사를 결심하고 몬그랜지의 캠프힐로 떠난다.

캠프힐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공동체를 말한다. 이곳은 관리자인 하우스페런츠, 자원봉사자 코워커, 캠프힐에 사는 빌리저가 빌리지가 살아가는 곳이다. 여행과는 또 다른 의미인 타지 생활은 지옥 같은 지하철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을지 몰라도 의사소통과 장애인이라는 특수함을 지닌 사람들과의 낯선 일상생활로 또 다른 의미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런 말을 듣는다.

여긴 파라다이스는 아니야. 하지만 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지. (p. 30)

이곳의 생활은 한없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모든 것은 직접 해야 하며 코워커에게 주어진 포켓 머니 역시 턱없이 작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동체는 구성되어 있다. 단순 반복작업은 빌리저가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이며 그 속에서 그들은 보람을 느낀다. 그들에게도 삶의 의지가 있고 영위하고자 하는 의욕 역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코워커는 단지 빌리저가 규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개입만 할 뿐이다.

일상의 작은 부분일지 언정 스스로 그것을 가꾸는 것과 제공받는 것의 차이는 컸다. 이는 자존감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윤이 나게 닦인 싱크대를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람의 순간은 이토록 사소한 데서 시작했다. 자신의 쓸모를 경험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자랑스러워하게 되는 게 아닐까. (p.99)

 

수레를 통해 배달을 하는 '니콜'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다운 증후증을 앓고 있으면서 몸도 왜소한 그녀가 과연 수레를 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문제없이 끄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와주려는 손길을 뿌리치고 니콜은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의지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에 대한 인식이 학습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하게 되었다.

몬그랜지의 생활에 막바지에 다다르며 그녀는 많은 성장을 이룬다. 캠프힐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따뜻한 감옥"이었다. 빌리저들은 이 밖을 벗어나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돈 계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과연 몬그랜저의 존재가 빌리저에게 좋은 영향일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주제로 코워커들과 토론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빌리저를 위한 일이라 칭하더라도 결국 그들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주체는 비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100% 만족을 내놓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평온한 세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돕는 편이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p. 209)"

느슨한 일상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p. 151)

능숙치 못한 언어와 잦은 실수로 인한 자기변호를 일삼던 그녀는 꿈꾸던 천국은 아니지만 살만한 이 곳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1년간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분리되어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았고 결국 떠나기 전 원 상태로 돌아갈지라도 여기서 한없이 살 수 없음을 인지한다. 결국은 치열했던 삶 속으로의 복귀가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돌아간다.

처음 캠프힐에 왔던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문한다. 몬그랜지는 과연 파라다이스였을까? 평생 이렇게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된 평화로운 삶에 권태기가 찾아올 수도 있고 한없이 게을러진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음이 편하다고 저 멀리 미뤄둔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알았기에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 달라진 마음가짐을 준비해서 돌아간다. 과거의 나와 다른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삶을 살기로. "느리지만 성실하게, 서툴지만 무리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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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9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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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더위도 한 풀 꺾인 듯 보인다. 아침, 저녁의 일교차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이니. <월간 샘터>도 어느덧 9월 호가 출간되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을까? 인상 깊었던 '브랜드 다이어리', 배우 '봉태규'씨의 인터뷰, 특집 글 중 하나인 '우리 형의 첫 월급'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브랜드 다이어리에서는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삼시 세끼> 나영석 PD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둘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예능 작품을 만드는 피디이면서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이기도 하다. 둘은 늘 비교 대상으로 오르내리지만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은 달라 보인다. 김태호 PD는 극한 도전을 통해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영석 PD는 식사, 여행 등과 같은 일상 보편적인 소재를 특별하게 보여준다.

한 명은 도전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현실을 극적 미장센으로 밀어 넣고, 또 한 명은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생활을 극적 상황으로 승화시킨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극대화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현재로부터 벗어나 극대화된 상황으로 치닫는 원심성과 현실에 집중하여 그 의미를 극대화하는 구심성 정도의 차이랄까. (p.23)

 

봉태규 씨의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글을 쓰게 된 이유와 배우로써 다른 이에 시선에 갇혀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 전 <개별적 자아>라는 책을 발표한 그는 글을 씀으로써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악플과 시선에 신경 쓰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자신의 본 자아를 다독이고 내면을 표출하게끔 도와준 행동이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아내 역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꿔준 사람이라고 한다. 신중한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받은 그를 많이 보듬어 준  듯하다. 배우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평소 주변을 의식하며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인터뷰였던 것 같다.

"처음 글을 쓰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느라 미처 보이지 않던 제 마음이 선명히 보인다는 거였어요. 글로 표현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제 감정을 되새기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오래 갖고 싶어서 리뷰를 송고하며 잡지사에 연재를 먼저 제안했어요." (p.26)

"아내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되 함부로 표현하지 않아요. 항상 예의 바른 태도로 단어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말을 하죠. 그래서인지 충고나 조언을 곧잘 하는 편인데도 늘 지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요. 진심이 담긴 정중한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걸 아내를 통해 배웠어요." (p.27)


 

특집 '내가 가진 게 진짜 진짜야!'에 수록된 <우리 형의 첫 월급>은 필자의 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신장애가 있는 그의 형은 공공 근로를 다니며 번 첫 월급으로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자 한다. 하지만 계산서와 봉투 안의 돈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봉투에 5만 원 하나를 더 넣어두었다. 무사히 계산을 마치고 뿌듯해하는 형의 모습을 보는 필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물씬 풍기는 특집 글이었다.

이번 샘터는 소중한 것을 견주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비교하는 삶은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보단 내면의 나를 보듬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때론 포기를 통해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할 필요도 있다. 17년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기 위해 이제 그동안 왔던 길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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