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평점 :
누구에게나 천국이란 이상향이 존재한다. 요즘에는 이직이나 퇴사를 통해 쉼 없이 달려온 나를
달래주는 일이 천국처럼 느껴진다. 적당한 임금과 자유로운 휴가, 야근 없는 삶처럼 당연하고 소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조차 마음대로 바랄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들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퇴사를 결심하고 몬그랜지의 캠프힐로 떠난다.
캠프힐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공동체를 말한다. 이곳은 관리자인 하우스페런츠, 자원봉사자 코워커, 캠프힐에 사는 빌리저가 빌리지가 살아가는 곳이다.
여행과는 또 다른 의미인 타지 생활은 지옥 같은 지하철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을지 몰라도 의사소통과 장애인이라는 특수함을 지닌 사람들과의 낯선
일상생활로 또 다른 의미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런 말을 듣는다.
여긴 파라다이스는 아니야. 하지만 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지. (p. 30)
이곳의 생활은 한없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모든 것은 직접 해야 하며 코워커에게 주어진 포켓 머니
역시 턱없이 작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동체는 구성되어 있다. 단순 반복작업은 빌리저가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이며 그
속에서 그들은 보람을 느낀다. 그들에게도 삶의 의지가 있고 영위하고자 하는 의욕 역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코워커는 단지 빌리저가 규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개입만 할 뿐이다.
일상의 작은 부분일지 언정 스스로 그것을
가꾸는 것과 제공받는 것의 차이는 컸다. 이는 자존감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윤이 나게 닦인 싱크대를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람의 순간은 이토록 사소한 데서 시작했다. 자신의 쓸모를 경험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자랑스러워하게 되는
게 아닐까. (p.99)
수레를 통해 배달을 하는 '니콜'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다운 증후증을 앓고 있으면서 몸도 왜소한
그녀가 과연 수레를 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문제없이 끄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와주려는 손길을 뿌리치고 니콜은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의지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에 대한 인식이
학습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문하게 되었다.
몬그랜지의 생활에 막바지에 다다르며 그녀는 많은 성장을 이룬다. 캠프힐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따뜻한
감옥"이었다. 빌리저들은 이 밖을 벗어나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돈 계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과연 몬그랜저의 존재가 빌리저에게 좋은 영향일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주제로 코워커들과 토론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빌리저를 위한 일이라 칭하더라도 결국 그들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주체는 비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100% 만족을 내놓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평온한 세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돕는 편이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p. 209)"
느슨한 일상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p. 151)
능숙치 못한 언어와 잦은 실수로 인한 자기변호를 일삼던 그녀는 꿈꾸던 천국은 아니지만 살만한 이
곳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1년간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분리되어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았고 결국 떠나기 전 원 상태로
돌아갈지라도 여기서 한없이 살 수 없음을 인지한다. 결국은 치열했던 삶 속으로의 복귀가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돌아간다.
처음 캠프힐에 왔던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문한다. 몬그랜지는 과연 파라다이스였을까? 평생 이렇게 살아갈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된 평화로운 삶에 권태기가
찾아올 수도 있고 한없이 게을러진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음이 편하다고 저 멀리 미뤄둔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알았기에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 달라진 마음가짐을 준비해서 돌아간다. 과거의 나와 다른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삶을
살기로. "느리지만 성실하게, 서툴지만 무리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