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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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살의 소년 폴과 48살의 어른 수잔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들의 '나이'에 주목할지라도 점점 고조되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도대체 무엇을 안겨다 주는지 고민하게 한다. 테니스 파트너로 처음 만난 둘은 점차 서로의 끌림을 인정하고 만나게 된다. 폴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수잔은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 안에선 폴이 어른이 되기도 수잔이 아이가 되기도 한다. 좋고 싫은 모습도 마주하며 봐야 하는 감정의 특성과 주변의 시선, 사회적 제약은 점점 둘을 힘들게 만든다.

우선, 수잔은 기혼이다. 그녀에겐 남편과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가정의 아내로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남편의 폭력을 받으며 살아왔다. 지켜야 하는 건 오히려 그녀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사랑하는 폴은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녀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둘은 도망친다. 마치 그곳엔 바라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단 듯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게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p. 75)

 

떠나서 과연 둘은 행복했을까? 오히려 수잔은 더 커진 불안감에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다. 결국 정신과를 들락날락하고 나중에는 완전히 정신을 놔버린다. 사랑이 만들어낸 손길은 독으로 돌아왔다. 폴과 함께 하면서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극복하지 못해 술에 의존하게 됐다. 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점점 지쳐가다가 질려갔다. 그녀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만들던 추상 명사는 지극히 추상적이었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애인은 사랑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그 강렬함, 사물의 초점이 또렷이 잡히는 느낌, 삶이 가속화하는 느낌,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이기주의, 욕정에 찬 자만심, 즐거운 호언, 차분한 진지함, 뜨거운 갈망, 확실성, 단순성, 복잡성, 진실, 진실, 사랑의 진실을 느끼고 싶어 한다. (p. 141)

 

그는 이야기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그녀를 이해한다는 뜻이라면, 그녀를 이해하는 것에는 그녀가 왜 술꾼인지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p. 222) 고. 그를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사랑은 아니란 것을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그녀를 깊이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쪽이 파국이 된 이상 사랑은 끔찍한 기억일 뿐이다.

책은 폴의 관점으로 쓰여있다. 즉, 폴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단 소리다. 폴이 수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고통을 겪는 상대를 보며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 이 모든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다. 이게 소설의 핵심 포인트인 것 같다. 수전은 어떻게 폴을 생각했는지,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렸는지 알 수 없기에 '사랑의 맹점'이 드러난다. 내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상대를 잃어버린 폴처럼.

완벽하지 않은 우리의 감정은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헌신적이고 아름다우며 잔인하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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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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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이 붐인 시대에 살고 있다. 휴가철이면 인천공항이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휴가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서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해외에도 좋은 곳들이 많지만 국내에도 그에 견줄만한 장소들이 많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독특한 양식이 만든 건축물과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산사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유홍준 교수는 지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다룬 산사들을 다시 한데 모아 산사만을 위한 특별판을 보여준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산사부터 북한의 산사까지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절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종교를 불문하고 불교 양식이 산세와 결합한다면 어떤 건축 양식이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자 했던 조상들의 숭고한 마음이 미학적으로 비추어진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p. 66)

 

'여백의 미'를 정수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산사다.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마당을 중심으로 넓게 설계한 것이 매력이 된다. 마당은 단지 산책을 하며 거니는 장소가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을 관장하는 핵심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사는 들어가기 전, 입구부터가 미의 시작이다. 절로 들어가기 전의 비탈길, 오솔길, 숲길이 다른 세계에 와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절이 평범해도 길이 아름답다면 이 산사는 아름다운 곳이 된다. 자연과의 조화는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양쪽에 서있는 나무의 종부터 다리와 들꽃까지 잠시 보지 못했던 소중함에 눈길을 줘보라고 이야기한다.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 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직장에서 집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머릿속에서 무엇을 했나. 돌아오는 길은 어떠했나. 최소 하루 두 시간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인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있다. (p. 28)

 

목조양식이란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철근을 사용하면서도 길어봤자 100년도 못 가서 헐어버릴 집을 짓고 있는 이 시대의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 정서에 대한 무언의 꾸짖음이 여기 있다. (p.179) 산사의 대부분은 불교의 전성기였던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수천 년의 건물이다. 불타서 없어지지 않는 한, 녹슬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 오히려 보수와 수리를 하며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신에 박수를 쳐야 한다. 조금만 흠이 나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변덕을 반성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국보여서, 보물이어서, 세계가 인정해서 찾아가고 봐야 하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 깃들여있는 가치와 정신을 알아보려 노력하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산사는 모르고 가면 모르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탑과 주변 식물들의 이름들을 알고 간다면 현판의 글씨, 문의 문양, 기와의 모양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험한 산세에 있는 절과 완만한 산으로 둘러싸인 절의 분위기도 다르다. 따라서 서정의 여백은 산사를 여행할 때 꼭 지녀야 할 필수품이다.

책을 읽으니 산사는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장소로 제격이란 든다. 나무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갈 때 지나는 마당을 걸으며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답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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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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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를 앞둔 중견 무용수 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릴러 같은 소설이다. 입양아인 제인은 양부모의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딸 제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용수의 삶을 살게 된 그녀에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볼 시간도 관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인은 촉망받는 무용수였지만 춤엔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을 뿐 철저히 감정을 배제했다. 교과서처럼 로봇처럼 흡수하고 그대로 나타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춤이었다. 그러다가 마주한 마리와 맥스의 춤은 그녀 안에 잠재된 불온한 욕망을 자극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춰야 하는 그 춤에 제인은 자연스레 이끌린다.

제인은 그때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장이 발각되자 제인은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 둘을 버린다. 매몰차게 버려진 둘을 뒤로하고 다시 평온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기회를 쟁취하는 삶을 산다. 그때의 자신을 지우려 도망쳐 무용수로 성공한 삶을 산다. 그렇게 만난 남편 진과 딸 레나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데 있어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그녀는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안정을 위한 구성품인 듯 대한다.

그녀에겐 무대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산소호흡기였다. 레나를 헬퍼인 크리스티나에 맡기고 오로지 춤에만 집중하는 제인은 결국 갈등을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딸의 이미지가 아닌 레나를 크리스티나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리고 매몰차게 크리스티나를 버린다. 과거에 마리와 맥스를 버렸던 것처럼.

갈등은 크리스티나에서 시작해 레나로, 텐으로 이어진다. 재도약하기 위해 텐의 안무를 습득해야 하는 제인은 그의 춤에서 다시 과거의 춤을 떠올린다. 어둡고 관능적인 그 춤은 그녀를 옥죄며 다시 숨겨진 그녀의 본능을 이끌어낸다. 텐의 의도대로 그녀는 춤을 추지만 욕망은 철저히 배제된 껍데기의 춤을 춘다.

결국 그녀는 그 춤을 제대로 추었을까 궁금해진다. 손에 쥔 것이 모래인 줄도 모르고 더욱 옥죄는 제인을 보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결핍은 그녀를 이끈 원동력임과 동시에 파멸을 불러왔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고 물으면 그녀는 뭐라 대답할까. 저 멀리 도망칠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그 시선이 자신이 서 있는 이유라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삶을 부정해야 하는 질문. 우리에게도 제인과 같은 모습이 있어서 이 질문이 무겁게 다가온다. 제인은 온몸으로 방황하며 힘들어하지만 절대 밑바닥까지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버려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안온한 숨을 한숨 내뱉길 기도했다. 한 번이라도 슬픔, 분노, 좌절, 눈물에 굴복해보길 바랐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처절함에 다가가면 조금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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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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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모든 기록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조선왕조실록』 은 어떤 왕도 열람할 수 없는 기밀문서였다. 자신의 업적을 후대 왕이 이어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록된 엄청난 양의 역사가 10권의 책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덕일 작가님은 이를 위해 무려 10년간의 구상과 5년간의 지필 활동을 했다고 하니 대단하신 것 같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인 1권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을 담고 있다.

고려 말기 상황은 원 간섭기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기황후』 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며 당시 상황을 그렸지만 역사왜곡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황후를 등에 업고 왕 행세를 부리던 기철의 최후와 공민왕의 개혁 이야기가 깊고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고려는 토지를 둘러싼 부패가 만연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해 매번 원상복귀되는 상황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성계는 토지 제도의 문제를 알았는지 후에 자신이 왕이 되고 나자 과전법을 실시하며 개혁을 이뤄냈지만, 이는 기존의 경정 전시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 새로웠다. 역사에서 승자였던 이성계가 자신의 눈으로 쓰인 역사임을 알게 해준 부분이었다. 그래도 누락된 토지를 조사, 기록하여 농민들의 울분을 털어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정도전과의 관계는 군신관계를 넘어 진한 우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명의 주원장이 정도전을 보내라 협박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지켜냈던 것을 보면 이들은 같은 꿈을 꾼 동지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가 2번의 왕자의 난을 수습하지 못한 걸 보면 왕과 아버지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이방원을 세자로 임명했으면 조선의 역사는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방원에 의해 북벌정책을 통한 황제국은 물 건너 갔지만.


만약 방원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북벌을 했다면 조선의 영토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주원장이 계속 조선을 경계할 정도면 가능성 있는 싸움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이 명의 위에 있지 않았을까?

이덕일 작가님이 조선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둔 것이 보인다. 역사를 좀 더 바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단 것이 좋았다. 드라마를 통해 관심을 갖긴 하지만 고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이 많아 왜곡한 역사관이 심어지기도 하니 앞으로 이런 콘텐츠들이 사랑받고 읽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란 없고,

미래를 언제나 그랬듯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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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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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모두가 편안한 세상에서.
아무도 그늘에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아무도 조롱받지 않는 세상에서.
혹시 내가 이상주의자냐고? 물론 그렇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여기에 만족한다는 뜻이니까. (p. 36)

 

44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페미니즘의 정의, 어디까지가 페미니즘인지를 알 수 있다.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이 '평등한 인권'을 위한 운동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평등을 말한다. 그 범주 안에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인종 등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아니란 점이다. 사회에선 남성과 이성애자, 백인과 비장애인이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틀을 만들어놨다. "~는 이래야 해"가 대표적이다. 이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튀는 사람 또는 목소리가 큰 사람, 물 흘리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배척받는다. 배척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코르셋이고, 최근 탈 코르셋은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나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허망한 노력과 시간을 벗어던지겠단 의미로 시작되었다.


 

폭력이 우리의 인격을 조각했다. 당신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은 크든 작든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폭력은 우리를 부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격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폭력의 손잡이를 쥔 그들보다, 우리가 정교하다. 우리가 미래에 가깝다. 우리가 옳다. (p. 46)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은 "왜 화장 안 했어?",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니?", "어머, 살찐 거 봐!", "쟤, 성형했네. 코봐" 등 언어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가장 많다. 이 모든 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 기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로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여성에게 쏟아지는 말들이다.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몸의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남자들에게는 몸을 키우라고 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살을 빼라고 한다. (p. 68)

책에서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논한다. 위의 폭력은 여성에게 쏟아진다면 교차성 페미니즘은 이중으로 폭력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흑인 여성, 장애여성, 트랜스 젠더같이 오래전부터 차별받았던 두 부분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흑인 여성은 흑인이라서 일차적으로 차별받음과 동시에 여성이라서 이차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다.


 

포괄적인 페미니즘이 더 효과적인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행동이다 넓은 차원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이야기할 때, 모든 공동체가 서로 다르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공동체에 필요한 페미니즘 행동이 다른 공동체에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의 페미니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의 평등을 위한다는 것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최선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공동체에 약이 되는 것이 다른 공동체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종, 젠더, 계급, 성적 지향, 종교 등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 (p. 179)

 

 

책은 교차성 페미니즘만큼이나 페미니즘의 다양성도 중요하게 다룬다. 각 이해관계는 페미니즘 내에서도 존재한다. 궁극적인 평등의 목적은 같아도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만큼 장애나 성소수자는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생각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깊이도 다르다.  

그래서 목적이 같다면 하나의 방법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한다. 1000명의 사람들이 있으면 1000개의 페미니즘 방법이 있는 것이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대로 가다 보면 당연히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진취적인 방향을 위해선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의견차로 생기는 불협화음은 건전한 논쟁이다

 


고통받는 여성에게 타인의 시간과 인내와 이해와 연민과 공감과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두자. 상냥하고 호감 가게 행동해야만 그런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도 그만두자. 내가 호감의 규칙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사회가 그은 선 밖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고통을 숨기지 않더라도, 남의 호감을 사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에게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 (p. 127)



우리가 인권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과거에 내가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에게 숨죽이며 살라는 말은 죽으란 말과 다름없다. 이들이 최근 목소리를 낸 것은 주류세력이 자신들을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무시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소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수의 원칙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소수는 여전히 무력하다.

이 책은 계속해서 다양성의 존중을 말한다. 과거의 나에게 겁내지 말라며 편지를 쓴다. 44명의 사람 중에는 남성도 있다. 그는 남성으로 태어나 갖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휘두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들 모두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말한다. 강요하는 자는 없다. 다만, 자신들이 선택한 이 길에 후회가 없단 걸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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