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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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를 앞둔 중견 무용수 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릴러 같은 소설이다. 입양아인 제인은 양부모의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딸 제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무용수의 삶을 살게 된 그녀에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볼 시간도 관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인은 촉망받는 무용수였지만 춤엔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을 뿐 철저히 감정을 배제했다. 교과서처럼 로봇처럼 흡수하고 그대로 나타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춤이었다. 그러다가 마주한 마리와 맥스의 춤은 그녀 안에 잠재된 불온한 욕망을 자극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춰야 하는 그 춤에 제인은 자연스레 이끌린다.

제인은 그때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장이 발각되자 제인은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 둘을 버린다. 매몰차게 버려진 둘을 뒤로하고 다시 평온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기회를 쟁취하는 삶을 산다. 그때의 자신을 지우려 도망쳐 무용수로 성공한 삶을 산다. 그렇게 만난 남편 진과 딸 레나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데 있어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그녀는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안정을 위한 구성품인 듯 대한다.

그녀에겐 무대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산소호흡기였다. 레나를 헬퍼인 크리스티나에 맡기고 오로지 춤에만 집중하는 제인은 결국 갈등을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딸의 이미지가 아닌 레나를 크리스티나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리고 매몰차게 크리스티나를 버린다. 과거에 마리와 맥스를 버렸던 것처럼.

갈등은 크리스티나에서 시작해 레나로, 텐으로 이어진다. 재도약하기 위해 텐의 안무를 습득해야 하는 제인은 그의 춤에서 다시 과거의 춤을 떠올린다. 어둡고 관능적인 그 춤은 그녀를 옥죄며 다시 숨겨진 그녀의 본능을 이끌어낸다. 텐의 의도대로 그녀는 춤을 추지만 욕망은 철저히 배제된 껍데기의 춤을 춘다.

결국 그녀는 그 춤을 제대로 추었을까 궁금해진다. 손에 쥔 것이 모래인 줄도 모르고 더욱 옥죄는 제인을 보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결핍은 그녀를 이끈 원동력임과 동시에 파멸을 불러왔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고 물으면 그녀는 뭐라 대답할까. 저 멀리 도망칠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그 시선이 자신이 서 있는 이유라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삶을 부정해야 하는 질문. 우리에게도 제인과 같은 모습이 있어서 이 질문이 무겁게 다가온다. 제인은 온몸으로 방황하며 힘들어하지만 절대 밑바닥까지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버려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안온한 숨을 한숨 내뱉길 기도했다. 한 번이라도 슬픔, 분노, 좌절, 눈물에 굴복해보길 바랐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처절함에 다가가면 조금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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