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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평점 :

해외여행이 붐인 시대에 살고 있다. 휴가철이면 인천공항이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휴가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서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해외에도 좋은 곳들이 많지만 국내에도 그에 견줄만한 장소들이 많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독특한 양식이 만든 건축물과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산사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유홍준 교수는 지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다룬 산사들을 다시 한데 모아 산사만을 위한 특별판을 보여준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산사부터 북한의 산사까지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절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종교를 불문하고 불교 양식이 산세와 결합한다면 어떤 건축 양식이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자 했던 조상들의 숭고한 마음이 미학적으로 비추어진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p. 66)
'여백의 미'를 정수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산사다.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마당을 중심으로 넓게 설계한 것이 매력이 된다. 마당은 단지 산책을 하며 거니는 장소가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을 관장하는 핵심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사는 들어가기 전, 입구부터가 미의 시작이다. 절로 들어가기 전의 비탈길, 오솔길, 숲길이 다른 세계에 와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절이 평범해도 길이 아름답다면 이 산사는 아름다운 곳이 된다. 자연과의 조화는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양쪽에 서있는 나무의 종부터 다리와 들꽃까지 잠시 보지 못했던 소중함에 눈길을 줘보라고 이야기한다.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 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직장에서 집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머릿속에서 무엇을 했나. 돌아오는 길은 어떠했나. 최소 하루 두 시간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인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있다. (p. 28)
목조양식이란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철근을 사용하면서도 길어봤자 100년도 못 가서 헐어버릴 집을 짓고 있는 이 시대의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 정서에 대한 무언의 꾸짖음이 여기 있다. (p.179) 산사의 대부분은 불교의 전성기였던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수천 년의 건물이다. 불타서 없어지지 않는 한, 녹슬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 오히려 보수와 수리를 하며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신에 박수를 쳐야 한다. 조금만 흠이 나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변덕을 반성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국보여서, 보물이어서, 세계가 인정해서 찾아가고 봐야 하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 깃들여있는 가치와 정신을 알아보려 노력하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산사는 모르고 가면 모르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탑과 주변 식물들의 이름들을 알고 간다면 현판의 글씨, 문의 문양, 기와의 모양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험한 산세에 있는 절과 완만한 산으로 둘러싸인 절의 분위기도 다르다. 따라서 서정의 여백은 산사를 여행할 때 꼭 지녀야 할 필수품이다.
책을 읽으니 산사는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장소로 제격이란 든다. 나무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갈 때 지나는 마당을 걸으며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답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