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서 과연
둘은 행복했을까? 오히려 수잔은 더 커진 불안감에 알코올 중독자가 돼버린다. 결국 정신과를 들락날락하고 나중에는 완전히 정신을 놔버린다. 사랑이
만들어낸 손길은 독으로 돌아왔다. 폴과 함께 하면서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극복하지 못해 술에 의존하게 됐다. 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점점 지쳐가다가 질려갔다. 그녀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하게 만들던 추상 명사는 지극히 추상적이었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애인은 사랑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그 강렬함, 사물의 초점이 또렷이 잡히는 느낌, 삶이 가속화하는 느낌,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이기주의, 욕정에 찬 자만심,
즐거운 호언, 차분한 진지함, 뜨거운 갈망, 확실성, 단순성, 복잡성, 진실, 진실, 사랑의 진실을 느끼고 싶어 한다. (p.
141)
그는 이야기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그녀를 이해한다는 뜻이라면, 그녀를 이해하는 것에는 그녀가 왜 술꾼인지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p. 222) 고. 그를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사랑은 아니란 것을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그녀를 깊이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한쪽이 파국이 된 이상
사랑은 끔찍한 기억일 뿐이다.
책은 폴의 관점으로 쓰여있다. 즉, 폴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단 소리다. 폴이 수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고통을 겪는 상대를 보며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 이 모든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다. 이게
소설의 핵심 포인트인 것 같다. 수전은 어떻게 폴을 생각했는지,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렸는지 알 수 없기에 '사랑의 맹점'이 드러난다. 내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상대를 잃어버린 폴처럼.
완벽하지 않은 우리의 감정은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헌신적이고 아름다우며 잔인하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