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순간을 나답게 사는 법
브레네 브라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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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용기는 요구를 동반하는 느낌이 들어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포기와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모습이 패배자란 낙인을 찍을 것 같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단어. 나에겐 용기란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전의 나를 잊어버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이전의 나는 때론 우울했지만 맡은 일엔 최선을 다했고, 웃기도 잘했고, 계속 힘을 내고자 많은 노력을 다했다. 주 5일, 하루 9시간을 보낼 소속 집단이 생기기 전까진.  시간을 내야 하는데 힘이 없어 흘려보낸 시간들 속엔 나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시간들이 들어있었다. 그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 보니 저절로 무기력해졌고 귀찮아졌고 잠만 자고 싶었다.

소속은 자유를 대가로 얻는 안정감이며 족쇄다. 안정감은 일상의 균형을 맞춰주지만 한편으로 벗어나고 싶단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일찌감치 소속감을 경험한다. 자신이 배제되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한 후, 학창시절 내내 어딘가에 소속되어 집단에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 바랬다. 그 결과, 취약성, 소속감, 수치심, 공감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진정한 소속감은 수동적이지 않다. 집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더 안전하다는 이유로 적응하거나 가식적으로 행동하거나 신념을 버리는 행동도 아니다. 취약성을 드러내고 불편함을 느끼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법을 배워야 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소속감을 얻으려면 힘들 걸 알면서도 역경에 부딪히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p. 57)

 

소속감은 내가 집단에 속한다는 일차적인 개념을 넘어 내가 나에게 속한다는 고차원적인 개념으로 발전한다. 그런 발전이 있어야 소속감을 칭하지 않아도 반듯하게 설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나약해지면 약한 마음이 밀려온다.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데 나는 왜 이게 힘들까?'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잦아진다. 중요한 건, 이때 나를 가로막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용기는 이때 발휘된다. 계속 나를 알아보려는 용기는 건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면서 갑옷을 입게 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첫째, 감정에 익숙하지 않고 취약성을 나약함과 동일시하기 때문이고 둘째, 정신적 외상을 입은 경험에서 취약성이 위험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폭력과 탄압에 마주할 때 온화한 가슴은 불리하고, 취약성을 드러내도 될 정도로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기는 어렵다. 취약성의 정의는 불확실성과 위험, 감정 노출이다. 그러나 취약성은 나약함이 아니다. 취약성은 용기를 가장 정확하게 재는 척도다. 취약성에 대한 믿음이 장벽일 때 관건은 '결과를 통제할 수 없을 때 기꺼이 나타나서 본모습을 드러낼 것인가?'이다. 취약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안전할 때 문제는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기꺼이 용감한 공간을 마련할 것인가?'이다. (p. 208~209)

 

진정한 소속감은 외부와 타협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마음에 담는 개념이다.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홀로 황야에 용감히 맞서며 성스러움을 찾는 경험이다. 잠깐이라도 경지에 이른다면 우리는 어디에나 속하는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진실이다. (p. 62)

 

타협점을 찾는 것이 사회라 한다. 타협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마저도 놓을 수 없는 마지막 끈과 갈등을 일으킨다. 타협을 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중할 가치가 넘치는 사람이란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어디에나 속하는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역설에 마음이 동하는 날이 언젠가 올 테지 하고 기다려본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뒤처졌다 자책하는 건 진정한 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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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산책 - 요나의 요리일기
요나 지음 / 어라운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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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에 연재되었던 '재료의 산책'이란 코너가 4권의 얇은 요리책으로 출간되었다.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레시피를 만들고 요리하는 요나 님의 모습에선 즐거움이 잔뜩 묻어 나온다.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는 그녀의 손끝에서 잊힌 손맛이 끌어올려진다.

그 해, 그 계절을 나타내는 음식들은 제철이란 말이 알맞다. 연근, 아보카도, 아스파라거스, 샐러리, 여주 등 나에겐 생소한 재료부터 쑥, 귤, 감자, 고구마 같은 친숙한 재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저마다의 계절에서 탄생하는 아이들이었다. 매일 마트에서 보기 때문에 항상 수확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때가 되어야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손님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에서 혜원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왔던 것처럼 요나 님 역시 내려놓고 얻은 기록들이 다시 시작할 힘을 주었다. 나를 위한 음식들은 거창한 양념과 신념이 필요 없다. 그녀는 '밥 좀 잘 먹고살고 싶다'라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의 폭도 넓어졌다.

음식에는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묘한 마법이 있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 귀퉁이를 몰래 뜯어먹던 기억부터, 넘치는 귤을 하나씩 까서 잼을 만드는 할머니의 뒷모습까지 다시 느낄 수 없기에 아쉽고 그리운 잔상이 아른거린다. 요리에 소질도 흥미도 없지만 누군가의 요리 영상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건, 앞으로 경험할 수많은 맛에 자연의 신비가 깃들길 바라기 때문일 테니까.


어쩌면 요리가 어려운 이유는 재료를 멋들어지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긴장을 내려놓자. 재료는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는 선물이다.
- 가을의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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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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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영험한 기운과 부적을 차용한 책갈피가 인상적이다. 보기왕이란 전설 속 귀신같은 존재와 맞서는 이야기는 공포와 스릴러를 느끼게 한다. 이쪽 장르를 즐겨보지 않지만 역시 책은 읽고 난 후에 판단을 해야 맞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내가 책을 읽기 전 느꼈던 두려움과 같은 이야기가 소설에서 다루어진다. 다하라, 가나, 노자키 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한 사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린 다하라는 어렸을 적 만났던 보기왕에게 고통을 받는다. 녀석이 건네는 말에 어떠한 대답도, 빈틈도 주지 말아야 하지만 계속해서 틈은 생기고 녀석은 다하라의 집을 쳐들어와 풍비박산 낸다. 단란한 가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무당만을 찾아헤매는 고통의 순간만이 찾아온다.

하지만 아내 가나가 바라본 사건은 다르다. 보기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만 다하라의 생각처럼 가정은 행복하지 못했다. 다하라의 왕국 속의 인형처럼 살아야 했던 그녀는 오히려 보기왕에게 다하라가 죽임을 당하자 비로소 해방감을 느낀다. 소통의 부재, 가정폭력, 갈등은 부부 사이 균열을 만들었고 보기왕은 보기 좋게 틈을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좋은 먹잇감이었단 게 맞는 표현일 터다.

노자키가 바라본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오컬트 작가인 그는 보기왕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며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녀석이 데리고 간다는 산은 오래전 아이들이 버려졌던 곳이고, 버려진 이유는 마을의 궁핍한 사정 속에서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단 사실을. 아이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은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가상의 귀신 보기왕을 만들어 공포에 떨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은 대상 자체의 모습이나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아닐까? 괴물의 유래나 실제로 저지른 나쁜 짓이 아니라 그것이 무섭다는 소문 자체가 음침함과 공포를 부추기는 게 아닐까?" 즉,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라는 것이다. (p. 382~383)


막연한 불안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불안을 악용하는 사람이 생기고 기댈 곳이 필요해진 사람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면서 불안은 사실로 변모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기에 이른다. 다하라의 불안은 보기왕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이 안 되면 어쩌지?'였을 테다. 가나의 불안은 '아이가 해를 입으면 어떡하지?'였을 테다. 제3자였던 노자키가 바라본 한 가정의 모습은 행복을 가장한 폭력이 얼룩진 전쟁터였다.

보기왕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도 녀석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다시 틈이 보이면 나타날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의 흔들림은 삶에서 겪는 악재와 일치한다. 보기왕은 그걸 알려주려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불안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괴물은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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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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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도 혹은 읽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문장은 누구에게나 있다. 들려오는 노래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SNS 감성 피드 속에서 글은 남겨지기 위해 존재감을 떨쳐내듯 쏟아진다. 마음에 자신의 방을 만든 글들은 점차 서랍을 들여놔 차곡차곡 쌓이고 손을 끄적이게 만든다. 그렇게 쌓인 '대변자'는 공유되어 멀리 날아간다.

백영옥 작가님은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공유해주었던 분이다. 앤을 보지 않았던 나도 그녀가 내뱉은 문장들에 공감하고 미소 지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책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 시절 그 만화를 봤던 사람들은 추억 속에서 현재의 고단함을 씻어냈다. 이번에 그녀가 건네는 이 책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이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것이 옳은 질문이었습니다. (p. 201)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을 때, 들춰보았던 책 속엔 또 다른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빨갛게 그어진 선을 최상의 조건이라 믿으며 딱 그만큼까지 에너지를 부으며 열정과 절제 사이 어디쯤에 머무른다. 질문이 많아진다는 건,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증거고 풀어내야 할 삶의 숙제가 남아 있다는 소리다. 그녀는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책 속을 헤맨다.


결국 진짜 문제는 나 자신을 희생할 만큼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상대가 내게 어떤 에너지도 빼앗길 원치 않기에 곧장 거리를 두게 되니까요. 내 공간, 내 시간, 내 취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p. 46)


내가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이기심이 넘친다고 말하지만 주위엔 억울하게 착한 사람만 많은 것 같다. 여전히 우리가 중요하고 좀 더 나만 생각해도 된다고 책들이 말하는 것 보면 소수의 이기주의자들이 다수의 소심자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주관은 생겼는데 표현하지 못해 끙끙댄다. 힘들면서 표현하지 못한다. 헤매지만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 이 속에서 '여기까지'라고 그어놓은 빨간 줄은 의미 없어 보인다.

표지의 일러스트처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다 우유를 넘치게 만들어도 된다. 흘린 우유는 닦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닦아내며 살면 되는 거라고 다독여 본다. 혼자여도 괜찮고 함께여도 괜찮다고. 나는 여전히 소중하니까 내가 하는 건 그냥 뭐든지 다 옳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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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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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곤란한 인생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일본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로 태어나 부족한 거 없이 부잣집 고귀한 아가씨로 지낸 '모리 마리'. 풍족했던 유년 시절과 달리, 2번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전쟁과도 같았다. 상황적으로 극과 극을 경험했던 그녀가 무너지지 않고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확행 정신의 선구자'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그녀의 중심엔 '음식'이 자리해 있다.

음식은 발 빠르게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다. 나도 화가 나면 엄청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마음을 달래고, 힘들 때는 달달한 디저트와 카페모카를 먹으며 단 맛의 놀라움을 몸소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음식은 맛을 통해 단순하게 행복한 탈출구를 제공해 준다. 모리 마리는 책에서 내내 자신이 만들고, 먹었던 여러 가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년 시절의 음식에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묻어 나온다. 청결과 위생을 엄격하게 지켰던 아버지로 인해 날 것의 음식을 먹지 못했던 그녀가 우연히 외가댁에서 먹은 복숭아의 단 맛에 놀라움을 느끼고, 금단의 문을 열 듯 하녀가 몰래 가져다준 군것질거리에 재미를 느낀다. 시집을 가고 나서는 오요시를 통해 보고 배우며 음식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갖는다.

요리는 잘하든 못하든 그녀가 집안일 중 가장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였다. 세숫물부터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일거수일투족을 하녀의 도움으로 해냈던 아가씨는 요리를 통해 '스스로'의 재미를 붙여나갔다. 작가로서 급한 마감이 코앞에 있더라도 그녀는 과거의 음식을 떠올리며 해먹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들어 재현하고 맛보며 과거를 현재화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요리는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며 행해야 원하는 맛과 모양을 얻을 수 있다. 그 속에서 평온함은 느낀다. 요즘 누군가의 요리 영상을 보며 맛을 상상한다. 칼질하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 지글지글 볶는 소리는 ASMR이 되어 잠시 스트레스 상태에서 무해하게 만들어 준다. 마리의 음식 이야기도 보는 내내 침이 고였다. 대단한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만 행복하다면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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