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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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영험한 기운과 부적을 차용한 책갈피가 인상적이다. 보기왕이란 전설 속 귀신같은 존재와 맞서는 이야기는 공포와 스릴러를 느끼게 한다. 이쪽 장르를 즐겨보지 않지만 역시 책은 읽고 난 후에 판단을 해야 맞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내가 책을 읽기 전 느꼈던 두려움과 같은 이야기가 소설에서 다루어진다. 다하라, 가나, 노자키 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한 사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린 다하라는 어렸을 적 만났던 보기왕에게 고통을 받는다. 녀석이 건네는 말에 어떠한 대답도, 빈틈도 주지 말아야 하지만 계속해서 틈은 생기고 녀석은 다하라의 집을 쳐들어와 풍비박산 낸다. 단란한 가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무당만을 찾아헤매는 고통의 순간만이 찾아온다.

하지만 아내 가나가 바라본 사건은 다르다. 보기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만 다하라의 생각처럼 가정은 행복하지 못했다. 다하라의 왕국 속의 인형처럼 살아야 했던 그녀는 오히려 보기왕에게 다하라가 죽임을 당하자 비로소 해방감을 느낀다. 소통의 부재, 가정폭력, 갈등은 부부 사이 균열을 만들었고 보기왕은 보기 좋게 틈을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좋은 먹잇감이었단 게 맞는 표현일 터다.

노자키가 바라본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오컬트 작가인 그는 보기왕의 근원을 파고들어가며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녀석이 데리고 간다는 산은 오래전 아이들이 버려졌던 곳이고, 버려진 이유는 마을의 궁핍한 사정 속에서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단 사실을. 아이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은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가상의 귀신 보기왕을 만들어 공포에 떨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것은 대상 자체의 모습이나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아닐까? 괴물의 유래나 실제로 저지른 나쁜 짓이 아니라 그것이 무섭다는 소문 자체가 음침함과 공포를 부추기는 게 아닐까?" 즉,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라는 것이다. (p. 382~383)


막연한 불안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불안을 악용하는 사람이 생기고 기댈 곳이 필요해진 사람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면서 불안은 사실로 변모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기에 이른다. 다하라의 불안은 보기왕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이 안 되면 어쩌지?'였을 테다. 가나의 불안은 '아이가 해를 입으면 어떡하지?'였을 테다. 제3자였던 노자키가 바라본 한 가정의 모습은 행복을 가장한 폭력이 얼룩진 전쟁터였다.

보기왕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에도 녀석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다시 틈이 보이면 나타날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의 흔들림은 삶에서 겪는 악재와 일치한다. 보기왕은 그걸 알려주려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불안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괴물은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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