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자답 나의 1년 2023-2024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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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도 채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이 시점에,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올해가 '두달이나' 남았다고. 제겐 이번 한해가 너무도 깁니다. 여름 무렵부터 저를 괴롭히는 몇몇 사건들 때문이에요. 

붕 뜬 야구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제 생활도 평범함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와 또 다른 자신이 마주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라는 문구를 따라 나의 '오늘', '내일' 그리고 '미래'를 적어봅니다.

올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에는 회의감이 묻어나지만, 꼭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1년'이 되는 건 아니라는 홍성향 코치의 말에 잠시 짙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무거운 숨 속에 숨은 짐은 계속되는 질문에 가둬두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올 한해 그래프는 계속 하강하지만 아직 한달이 남았다는게 위안으로 다가오는 건, 여전히 희망을 바란단 뜻이겠지요.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인지, 오늘 여러번 질문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나 자신에게 오늘의 감정은 어땠는지, 친절하게 물어봐 준 적은 없더군요.

하루를 정리하며, 한 해의 페이지도 마감합니다. 기록하는 지난 1년 속엔 아직 부정적인 언어가 가득하지만 토해내면 숨겨진 긍정 언어가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2023년 나만의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 오늘도 차분히 써봅니다. 나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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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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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기 전, 첫 책을 마주하는 설렘은 여전하다. 김금희 작가의 엽서와 함께 도착한 <크리스마스 타일> 가제본은 체온에 녹아버릴까 소중히 간직하던 눈송이 같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연작소설로,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 수록된 '크리스마스에는' 이야기가 시작점이 됐다. 그렇게 <첫눈으로>의 소봄, <은하의 밤>의 은하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소설은 겨울이면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 인물들의 사랑과 이별, 노동과 상실을 그린다. 거리 곳곳이 밝은 알전구로 가득 차 빛나는 연말연시의 반짝임은 내밀한 속마음을 비추는 배경이 된다. 방송국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다음 편에 지인으로, 가족으로, 옛 연인으로 등장하며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의 시간을 궁금하게 한다.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일자리를 잃거나 방황하기도 하며, 사랑하는 가족 또는 반려견, 연인과 헤어진다. 그들은 빈자리를 대체할 타인을 찾기보다 오롯이 공허함을 느끼며, 찬 공기를 더욱 내 곁으로 끌어모은다.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은 편하게 보내주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작가의 말' 中)



인물 간의 관계만큼이나 방송국이란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도 재밌었다. 좌천된 아나운서의 말에서 시작된 프로그램부터 피디 '지민'의 전애인 현우을 '맛집 알파고'로 다시 마주하는 에피소드 등이 말이다. 인생의 소란이 작은 연결고리가 되어 다시 근황을 묻게 되는 과정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해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작가의 말처럼 크리스마스는 진짜를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다. 불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며, 살기에 바빠 놓친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두는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미안하고 원망스럽지만, 한때는 소중하고 애틋했던 그들의 겨울이 더는 춥지 않도록.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은하의 밤'),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데이, 이브닝, 나이트')는 말들을 건네면서. 



🎄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히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은하의 밤」, p. 64)


🎄 영화관을 나와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걸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음의 국면들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될까 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걸었을까. (「데이, 이브닝, 나이트」, p. 102)


🎄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버렸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월계동(月係洞) 옥주」, p. 133~134)


🎄 소봄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첫눈으로」, p. 219)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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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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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현실에 질식할 것 같을 때, 브런치에서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을 만났다. 당시 나는 심한 불안 및 우울장애와 불면증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이 글은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게, 매만져야 하는 마음을 그려내며 내게 큰 위로를 건넸다.


이 책은 동생을 떠나보낸 사별자가 자신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는 대항해의 여정을 담았다.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나를 어루만지며,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는 과정을 말한다. '1장 일상 사별자의 품'에선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2장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에선 우울과 불안 속에서 흐트러진 일상을 정리하며, '3장 우리는 지금 살고 있군요'에선 나의 상처에서 타인의 아픔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래도 글로 마음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건 무기력에서 빠져나오셨다는 걸까요?" 질문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 그 굴레에서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당최 감이 잡히지 않고, 기껏 목표를 잡았다 해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모르는 순간에는 억지로 답을 찾겠다며 자신을 괴롭히기보다 허심탄회하게 모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쪽이 홀가분하다. 몰라, 몰라, 모르겠다고.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본인을 갉아먹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나를 괴롭히던 직장에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가끔 이성을 찾을 때면, 일상을 깨뜨린 주범을 꼬집기보다 깨진 일상 위에서 발이 다치지 않게끔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고민한다. p. 64~65


저자의 생활은 완벽히 복구되진 못했지만, 상실로 인한 절망을 담담하게 풀어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기록을 남긴다. 저마다의 고통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존재들의 가치를 조명하는 문장들은 삶의 어둠을 희미한 빛으로 물들인다. 


아픈 날이 훨씬 많은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웃을 만한 순간은 반드시 있었다. p. 113


고통을 벗어난 저자는 웃기도 하고 희망도 품으며 자잘한 행복을 느낀다. 때론 좌절과 회한이 밀려와도 잠시 절망할 뿐, 내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아팠던 마음도 시간의 힘에 옅어지는 걸 경험한다. 정신을 차리니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은 없단 걸 깨닫는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회복은 더디게라도 찾아왔다.


가끔은 애도하며 슬퍼하다가 일상에서는 작은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자살 유족이 아닌 일상 사별자의 품으로 오니 세상이 한 뼘 더 넓어졌다. (p. 83)


어쩌면 당신이 가장 먼저 당신의 몫을 덜고 타인을 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버티는 날이 모이면 언젠가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적당한 낙관을 잃지 않은 채 이성을 차리고 지금을 직시한다. (p. 205)


세상은 마냥 냉혹하지 않다고, 어둠이 존재하는 만큼 빛 역시 공존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세상이라는 유리에 부딪혀 기절했을 때는 어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눈을 감은 채라 내 앞에 누군가 따뜻한 물을 준비해 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p. 224)


나도 그녀에게서 용기를 얻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활자로 적힌 감정들이 그때만큼 아프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곁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정한 손길을 내밀자. 살리고 사랑하는 일은 언제라도 가능하니까.


당신이 유리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당신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 상처를 조금만 열어젖혀도 사람들은 당신의 곁에 머물며 기꺼이 우물을 내보일 테니. 우리에게는 모두 우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 주기를. 물론 당신에게도 말이다. p. 22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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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 -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
김미나 지음, 박문규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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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이 고정값인 사회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당장 내일의 내 모습조차 예측되지 않는다. 김미나, 박문규 부부도 비슷했다. 어려운 형편에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울음을 삼키며 월급을 기다리는 팍팍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유일한 즐거움은 주말마다 떠나는 여행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전국을 쏘다니며 블로그에 추억을 기록한다. 이 기록이 부부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 채.




여행자의 삶이 시작되다



퇴사 후 떠난 해외여행은 고생한 자신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풍족한 형편은 아니어도 자유가 눈앞에 있어 즐겁기만 하다. 때론 의욕에 앞서 몸이 상하기도 하고, 귀국 후 거취에 막막해졌지만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으려 더욱 여행에 집중한다.


그렇게 여행은 8년째 이어진다. 취미로 운영한 메밀꽃부부 블로그로 여행 콘텐츠 의뢰가 들어오며, 좋아하는 여행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꿈꾸던 삶의 초석은 기록으로 다져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비단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며 살아가면 좋을까. 여행하며 느꼈던 이 가뿐한 기분을 잃지 않고,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 재밌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 p. 53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어도 힘든 점은 있다. 여행 특성상, 항상 움직여야 하니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빠듯한 마감을 처리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안 받거나 덤터기를 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10kg 남짓 배낭에 살림살이를 이고 져야 하니 비움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둘 것인지, 덕업일치를 끝내 이루어낼 것인지는 결국 내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니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하고 싶은 일을 손에 꼬옥 쥐고 있다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면 되지 않을까? 혹시 가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싶으면 그때 가서 다른 길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p. 122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여행



어떤 선택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삶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해서, 무모하게만 보이던 선택 덕에 여행하는 삶이 조금씩 만들어졌다. p. 35


인생은 '내 생각대로 될 거'라는 오만함에서 벗어나는 여행 같다. 철저하게 세운 계획일지라도 한순간에 무너지기 일쑤니까. 코로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하늘길이 막히자 부부는 제주로 내려가 '일상 여행'을 시작한다. 고요한 시골에 집을 빌려 창밖의 변화를 관찰하고 산책하고 일한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자 여행 강연과 사진 전시회를 통해 추억을 공유한다. 여행은 길 위의 순간만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선택이 만든 길 속에 있었다. 방향을 잃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 길을 통해 배웠다.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건 길 위에서의 시간이라는 것도(p. 58). 우리는 무수한 삶의 선택지 중 몇 가지를 택해 살아가는 여행자였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더라도 애쓰고 버티기만 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하는 이유, 돈 버는 이유, 열심히 사는 이유로 결국은 즐거운 내 인생을 위해서니까.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사는 재미, 먹는 재미, 노는 재미, 일하는 재미 같은 여러 가지 재미들이. p. 177




메밀꽃부부가 생각하는 '진짜 여행'



“여긴 상업적으로 변해 별로다”, “여긴 굳이 갈 필요가 없다”, “거길 도대체 왜 가는지 모르겠다” 같은 말에 부부는 직장인 시절 4박 5일 휴가를 떠올린다. 1년에 한 번뿐인 휴가를 망치기 싫어서 계획된 여행을 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여행은 다녀온 뒤 그 힘을 발휘한다. 힘들 때마다 꺼내 먹는 초콜릿처럼, 당분이 되어준다.


패키지 여행이든 SNS용 사진을 건지기 위한 여행이든 호캉스이든 이러나 저러나 모두 각자의 여행이고 각자의 소중한 추억이다. 진짜 여행을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여행하고, 즐거웠다면 그 자체로 좋은 여행이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p. 90)


여행엔 권리가 없다.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곳으로 떠날 뿐이다. 지쳐서 떠나온 여행이니까, 쉬러 온 곳에서까지 눈치 주진 말자고 부부는 말한다.


뭘 좀 엉망으로 했다고 해서 나까지 망한 건 아니니까, 다음에 조금 더 잘 해보면 될 일이다. ‘좀 못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뭐. 하지만, 딱 한 번만 다시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p. 244





코로나 변이바이러스가 다시 퍼지며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겨우 되찾은 일상이 다시 멈추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평범한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저자의 삶처럼 무수한 변수와 선택으로 나라는 여행을 여러 해째 하는 중일 테다. 지금의 변수가 악수(惡手)가 되지 않길. 새로운 여정은 평온하길 간절히 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필요한 용기는 그 결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후에 만일 내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삶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쉽게 되지만은 않으니까. 

맨땅에 헤딩할 수 있다는 마음과 어떤 결과가 오든 

일단 하루를 잘 살아보자는 마음가짐, 


어쩌면 그게 용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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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만이 살길 - 콘텐츠 전쟁에서 승리하는 27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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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핸드폰 화면에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해시태그를 꼬리표처럼 달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가는 개인의 일상에는 그날의 감정, 장소, 맛집, 문화, 사람들이 녹아있다. 하지만 이들을 콘텐츠라 말하진 않는다. 나를 포함한 우리를 아우르는 추억이 되면 그제야 콘텐츠라 불린다. 단순 게시물이 콘텐츠가 되는 데 필요한 마법, 스토리텔링은 여기서 등장한다.

스토리텔링은 대중의 편에서 서사를 구현해 콘텐츠의 차별화를 꾀한다. 이 책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리사 크론'은 분야를 총망라한 전문가답게 그의 노하우를 잘 알려진 성공사례에 적용, 독자가 실전 감각을 체득하도록 도움을 준다. 특히, 책의 절반을 '왜 인간은 스토리에 끌리는지'에 할애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1️⃣ 심리학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의 대대적인 공사 안내방송으로 책은 시작된다. 당시 안내방송엔 이용객의 불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항 측 생각만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자는 위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다. 사실에 스토리란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을 뜻한다. 그 속에는 공항이 간과했던 '듣는 이'의 서사가 반영돼야 한다.

왜 인간은 스토리에 반응할까. 저자는 스토리가 인간의 본능과 관련이 있다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설명한다. 그중 인지적 무의식에서 이유를 찾는다. '인지적 무의식'은 인간이 위험할 때, 레이더를 발동시킨다. 지루한 설명은 아무리 중요해도 흘려듣지만, 이를 짧은 드라마로 만들면 집중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즉, 생존에 필요한 자극은 '맥락 있는 자극'이고, 스토리는 지금까지 '생존 수단'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가 스토리에 귀 기울이는 목적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p.53)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또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스토리는 원활한 결정을 돕는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눈을 뜨도록 콘텐츠 제작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스토리 심리학에서 발견한 접근법은 크게 4가지다.

1) 인간은 사실을 스토리로 '인격화'하면 주목한다.

2)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은 가르치려는 의도가 담기면 무시한다.

3) 취약점을 드러낸 주인공에게 인간은 공감하며 마음을 움직인다.

4) 인간의 선택에는 '타인의 시선'이 투영된다.


생전 처음 보는 방법은 없었다. 스토리에 현실을 반영한 요소들을 집어넣어 우회적으로 보여주면서 감정을 끌어내면 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하되 눈앞에 대상이 없을 뿐이다. 그럼 막연한 대상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2️⃣ 스토리 구성 전략 A to z


화제된 콘텐츠에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 대상을 고려해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에서 소개한 콘텐츠 사례들도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거창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녹아 있었다.


저자는 어떤 내적인 깨달음이 외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 것이 스토리라고 정의하며, 궁극적 목표와 스토리가 요청하는 행동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예로 생리대 브랜드 '올웨이즈'의 <여자애처럼> 광고를 보여준다. 해당 광고는 고객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지만, 취한 행동은 '여자애처럼'이란 말에 담긴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브랜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광고였지만,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표현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인식 개선에도 성공한다.


청중을 설득하려면 스토리를 통해 그 진실을 경험하고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p. 300). 이 광고는 대중이 잘못된 믿음을 경험하게 했고,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주었다. 리사 크론은 스토리를 통한 '내적 변화'를 강조하는데, 이 역시도 확실하게 성공했다. 또한, 잘못된 믿음 → 진실 → 깨달음 → 변화'라는 스토리 구성 방식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가 정의한 스토리 개념이 정확히 녹아들어 있는 문법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청중'을 강조한다. 확실한 대상 설정과 시선 처리, 그들이 처한 상황이 납득 가능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법까지. 방법 안에는 타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드러난다. 심리학 관점에서 강조했던 스토리의 '인간화'는 여기서 연결된다. 목표 청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 특유의 논리로 생각할 때, 스토리는 개연성을 획득한다(p. 351).




스토리의 힘을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스토리에 희생될 수밖에 없다. (스토리 생존 법칙 27)


오늘날의 이야기는 발견되어야 한다. 셀프 브랜딩을 한다면 '나를 어떤 이미지로 홍보할 것인지', 마케터라면 '우리 브랜드 히스토리는 어떻게 짤 것인지', 취업 준비생이라면 '내 경험과 경력을 어떤 스토리로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비록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지만, 내가 기획한 스토리 안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스토리의 힘 덕분이다. 그만큼 스토리는 힘이 세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택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서사가 쌓여 층이 두터워지면 하나의 역사가 되고, 팬이 생기고 그들은 두툼한 더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즐거워한다. 어쩌면 콘텐츠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과 연결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스토리는 매력적인 세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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