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일기
소피 퓌자스.니콜라 말레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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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다듬어진 글보다 거칠고 솔직한 문장이 더 깊숙이 다가올 때가 있다. <내면 일기>는 바로 그런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속삭이듯 내면을 파고들며, 독자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매일 써 내려가던 일기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면 일기>는 몽테뉴, 카프카, 시몬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 사뮈엘 베케트 등 이름만 들어도 숨막하니는 문호들의 일기에서 발췌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서 살아간 이들이지만, 그들이 남긴 일기에는 공통적으로 '내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 문학 작품으로 만났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혹은 감춰져 있던 그들의 속내와 사유가 날것 그대로 펼쳐진다.


흥미로운 건, 이 일기들이 결코 매끄럽거나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문장이 다소 엉성하기도 하고, 논리적인 흐름이 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 허술함 속에서 오히려 더 진한 감정이 느껴진다. 문장 구조나 표현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나느냐가 핵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기가 가진 힘 아닐까.


"나는 어떤 일기를 쓰고 싶은가? 코는 성기게 짜였으나 소홀함 없는 어떤 것. 뇌리에 떠오르는 중대하거나 가볍거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아우르기 위해 충분히 유연한 어떤 것. 검토하지 않은 채 수많은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둘 수 있는 낡고 바닥이 깊숙한 사무용 책상이나 드넓은 벽장을 닮았으면 좋겠다." - 버지니아 울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일기는 문학의 원형이자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장르가 아닐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위한 글.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진실하며, 때로는 더 아프다. 작가들의 고백과도 같은 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나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무심코 써온 내 일기도 문득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저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일 뿐이었던 일기장이,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 일기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글이자, 가장 나다운 기록 일지도 모른다.


<내면 일기>는 그런 깨달음을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것들을 언어로 꺼내고 싶어질 때, 이 책은 좋은 동반자가 되어준다. 일기를 쓰는 사람, 쓰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 또는 그저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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