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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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소와 인물이 등장하는 40편의 짦은 이야기들. 그 안에는 현시대가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아이러니와 근원이 날카롭게 포착되어 있다. 저자가 창조한 40여 편의 세계는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기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자칫 난해하게도 보이는 작가의 세계관 속에 인간은 본능으로 균열을 감지하고 있다. 그들은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삶을 설명하기보단 '고독사'의 화자처럼 결백을 증명하기 이해 발언하는 듯한 자세가 드러난다.


방 안의 누군가가 문을 잠가놓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 느끼는 무기력감이 고독감이라고 한다면, 방 안으로 무례하게 들어오려는 자의 의지에 저항하여 문고리를 쥐고 힘껏 버티는 결연함이 곧 자존감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겁니다. (p. 105 '고독사' 中)


40여 편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던 '고독사'에서 화자는 고독사로 사망한 고인의 뒤처리를 담당하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마지막으로 포착한 고인의 생활상은 유품이 되어버린 생활용품으로 쓸쓸하게 추리된다. 혹시나 그의 부고를 듣지 못한 가족에게 그의 상황과 여분의 재산을 정리하며 인생의 씁쓸함을 마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고인의 재산을 화자가 훔쳤다는 누명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구체적인 묘사가 재판에서의 최후 발언이었다는 사실이 두려움에 애써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그려지게 했다.


이처럼 저자의 농담은 진담에 가깝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다. 그 이상한 세계가 바로 지금 책 바깥의 세계니까. 진실과 거짓의 공방이 무의미처럼 느껴지고 끝내 무기력해지는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시도하며 발랄하게 앞으로 걸어나가려 한다. 그들은 살아나서 살아남으려는 시도를 계속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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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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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낯이 익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어디서 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혹시나 해서 예전 리뷰를 뒤져보니 '문학과 지성사'에서 선보인 <소설보다>에 수록되었던 작품이었다. 그 때도 <시절과 기분>이 가장 마음에 둔다고 적어두었는데, 좋았던 문장도 당시와 지금이 똑같았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p. 46)


소설은 주인공 '나'의 대학시절 첫 연인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인 혜인과 보낸 과거의 한 시절, 지금의 기분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 '나'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한때 사랑했던 여자가 주는 과거의 아련함과 심장의 떨림은 기차소리와 맞닿아 증폭된다. 심장의 떨림 그 자체인 작품이다. 감정은 휘발되지만 기분은 찜찜하게 붙어있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들인 지워지지 않을 테다. 그 상황이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져 예쁘게 심장을 후벼판다.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 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닿았다 떨어진 가슴의 감촉 역시 여전히 저릿한 감각으로 끈질기게 맴돌았다.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알 수 없는 고동이 기차가 내는 착, 착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 그건 어떤 과거의 회한으로 뻗어나가 겨울날의 술집으로 데려가기도 했고, 가본적 없는 미래의 풍경으로 도약해 가닿기도 했다. 대부분 슬펐지만 어떤 것은 너무 생생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대체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순전하게 기뻐했다. (p. 45)


순전히 누군가가 있어 기뻐했던 사실은 이후 기분이 되어 마음 한 켠에 아릿한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가 느낀 감정은 한 여름의 무르익은 사랑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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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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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와 아르테의 콜라보로 시작했던 에세이의 대장정이 끝이 났다. 마지막은 모든 캐릭터가 건네는 일상 위로로 sns 감성시인 ‘흔글’작가님이 참여해 캐릭터에 맞게 글을 썼다. 나를 아껴주는 말들은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에게 해주어야 한다. 자존감이 쉽게 깎이는 시대에선 사소한 습관까지 나를 지키기 위해 설계해야 한다. 답답하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항상 벌어지곤 하니까.

 

중요한 건 꼭 누군가 있어야만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꼭 누군가가 없어서 외로운 것도 아닌 것 같아.


부끄럼이 많고 수줍음이 많다는 건 남들보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좋아하는 무언가를 향해 찬찬히 다가간다는 것.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좋아하는 게 있어서 좋아.

따뜻한 색의 노을, 진심이 담긴 눈맞춤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

그거면 돼.



내가 남에게 하지 않을 행동만 내가 내게 안 하면 그걸로 충분해.

 

 

 

 



좋아하는 것들, 좋아서 어찌할 수 없는 대상에게 위안을 받아야 우린 사랑을 되돌려줄 수 있다. 찬찬히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 인생 필름을 돌려본다면 나는 어느 순간을 오래 응시할까. 아주 잔잔한 일상을 꿈꾸는 나에게도, 잔잔해서 더 이상은 지루하다며 소리칠 날이 오기는 올까.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허무함을 이 글이라도 달래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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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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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만이 성장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잠이 효과가 있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기분이 들었고 감정도 살아났다. 좋은 일이다. 이제 이건 내 삶이다. (p. 350)


처음 제목과 추천사만 보면 우울한 주인공이 잔잔하게 풀어낼 이야기 같았다. 1년만 직장도 그만두고 오로지 잠만 자겠다 선언한 그녀가 어떤 점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 궁금함과 연민, 걱정의 감정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 하지만 실제 스토리는 첫인상과 결이 조금은 달랐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 외모도 능력도 모두 뛰어나서 별다른 걱정 없이 보냈을 것 같은 주인공이 약물에 의존해서 잠을 갈구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녀의 속사정과 내면을 알게 되며 왜 그녀가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의식으로 '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다시 살겠다는 '의지'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점점 사라졌다. 계속 이대로 가면 나는 완전히 사라졌다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내 소망이었다. 내 꿈이었다. (p. 110)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주인공은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아이였다. 전 남자친구에게 굴욕적이라 여겨질만한 성행위를 요구받으면서도 그녀는 애정을 향한 강한 집착과 열망을 보인다. 힘들 때마다 옆에서 따스한 안아주는 사람,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는 사람, 외적인 면이 아닌 내적인 면을 챙겨주는 사람이 그녀 곁에는 없었다고 봐야 했을 정도로 '사랑'이란 감정은 그녀를 염세적인 인간으로, 피폐한 삶으로 이끌었다. 


리바는 화를 내거나 열의를 불태우기도 하고 우울함이나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를 거부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빈 서판이 되었다. 언젠가 트레버는 내가 불감증 같다고 했고 나는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아. 냉정한 년이 될 거야. 얼음 여왕이 될 거라고. (p. 249)


그럼에도 그녀는 삶을 끝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지경이 갈 정도로 잠에 들게 하는 약물에 의존하지만 잠이 주는 안정감은 그녀의 생활 루틴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 믿는다.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들면 세상을 향한 분노도, 자신을 힐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아도 됀다. 잠은 도피처이자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루 종일 잠에 들면 며칠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그녀의 수면 프로젝트는 여러 방해꾼들로 틀어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더 큰 공허함과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휴식과 이완의 해인데 어째 점점 스트레스의 해로 변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때는 읽고 있는 나조차도 "그만!"이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직시했다. 회피하지 않았고 부딪혔다. 감정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오물이 온몸에 묻어도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그것이 조금씩 효과를 거둘 때면 응원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규칙적으로 잠에 들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다시 잠에 든다. 자신에게 알맞은 약의 용량을 찾았고 그녀는 반복해서 일어난다. 일어나기 위해 잠에 드는 상태가 된다. 끔찍했던 상황이 한순간에 안정되진 않겠지만 참혹함에서 한 걸음 떼었다. 나는 과연 어떨까 자문해본다. 나는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기분 좋은 수면은 가장 지켜져야 할 기본 욕구일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린 욕구를 무시하고 허영을 쫓아 달리다 허무함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자살을 하려 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그건 자살과 정반대였다. 나의 동면은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생명을 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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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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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 <코끼리의 마음>, <잘 지내니>, <잘 다녀와>까지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동화를 쓰는 톤 텔레헨의 신작이다. 뜻대로 안돼서, 고민이 있지만 말할이가 없어서 끙끙 앓고 있는 동물 친구들에게 이번엔 다람쥐기 위로를 건넨다. 동물 친구들은 갑자기 묻는다.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지', '내가 행복해 보이는지',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는지'. 꽤나 철학적이며 존재론적인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다람쥐는 적합한 위로를 해준다. 억지로 짜낸 설탕 발린 말이 아니라 상대를 기다리는 태도로 한 발짝 앞서가 이들을 바라본다. 


귀 기울인다의 뜻은 '듣는다'에 방점이 찍혀있다. 하지만 우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조급증에 걸려 실언을 하고 예상치 못한 상처를 안기기도 한다. 말은 크게 필요 없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충분한 건, 언제나 몫은 당사자의 것이며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해결책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람쥐는 올바른 위로 방식을 취한다. '조언'이나 '충고'라는 서두를 붙이기보단 침묵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며, 신중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전한다. 침묵은 이 말이 새어나가면 상처가 될 수도, 적절한 처사가 아닐 수도 있기에 취하는 태도라 확실히 이 친구는 위로 천재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네가 전혀 싫증이 안 나. 아마 절대로 싫증 나지 않을 거야. 결코.넌 정말 확실히 예외야!" 

그러고는 다시 앞다리와 귀를 흔들어댔다. (p. 126)


다람쥐는 생각에 잠겨 어스레한 숲을 걸었다. 고통을 느끼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람쥐는 그렇게 개미에 대한 감탄을 가득 안고서

너도밤나무 위 자신의 집으로 올라갔다. (p. 167)


막상 물으면 쉽사리 답하기 힘든 질문 속에는 선택을 한 뒤에 따라올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매해 각종 힘듦과 부침에 단련되는 것 같아 보여도 항상 새롭게 닥쳐오는 각종 불운은 우리의 앞날을 걱정하게 하며 이런 자신을 굳건히 믿어줄 사람을 찾게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아니 믿었다가 좌절할까 두려운 현대인에게 '정확함'은 소원이다.


다람쥐는 고슴도치에게 인사하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오랫동안 생각을 못할까?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다람쥐는 비틀,넘어졌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생각에 잠긴 채 계속 걸었다. (p. 21)


다람쥐가 하는 말과 행동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그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태도에 정성을 다한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친구들의 말을 곱씹으며 위로를 해준 자신은 좋은 친구일지 고민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다람쥐는 이미 좋은 친구라고 여겼다. 착함을 가장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비일비재한 일상 속에서 내 몫의 고통을 나눠지려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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