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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고통만이 성장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잠이 효과가 있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기분이 들었고 감정도 살아났다. 좋은 일이다. 이제 이건 내 삶이다. (p. 350)
처음 제목과 추천사만 보면 우울한 주인공이 잔잔하게 풀어낼 이야기 같았다. 1년만 직장도 그만두고 오로지 잠만 자겠다 선언한 그녀가 어떤 점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 궁금함과 연민, 걱정의 감정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 하지만 실제 스토리는 첫인상과 결이 조금은 달랐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 외모도 능력도 모두 뛰어나서 별다른 걱정 없이 보냈을 것 같은 주인공이 약물에 의존해서 잠을 갈구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녀의 속사정과 내면을 알게 되며 왜 그녀가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의식으로 '잠'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다시 살겠다는 '의지'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점점 사라졌다. 계속 이대로 가면 나는 완전히 사라졌다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나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이 내 소망이었다. 내 꿈이었다. (p. 110)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주인공은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아이였다. 전 남자친구에게 굴욕적이라 여겨질만한 성행위를 요구받으면서도 그녀는 애정을 향한 강한 집착과 열망을 보인다. 힘들 때마다 옆에서 따스한 안아주는 사람,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는 사람, 외적인 면이 아닌 내적인 면을 챙겨주는 사람이 그녀 곁에는 없었다고 봐야 했을 정도로 '사랑'이란 감정은 그녀를 염세적인 인간으로, 피폐한 삶으로 이끌었다.
리바는 화를 내거나 열의를 불태우기도 하고 우울함이나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를 거부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빈 서판이 되었다. 언젠가 트레버는 내가 불감증 같다고 했고 나는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아. 냉정한 년이 될 거야. 얼음 여왕이 될 거라고. (p. 249)
그럼에도 그녀는 삶을 끝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지경이 갈 정도로 잠에 들게 하는 약물에 의존하지만 잠이 주는 안정감은 그녀의 생활 루틴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 믿는다.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들면 세상을 향한 분노도, 자신을 힐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아도 됀다. 잠은 도피처이자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루 종일 잠에 들면 며칠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그녀의 수면 프로젝트는 여러 방해꾼들로 틀어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더 큰 공허함과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휴식과 이완의 해인데 어째 점점 스트레스의 해로 변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때는 읽고 있는 나조차도 "그만!"이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직시했다. 회피하지 않았고 부딪혔다. 감정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오물이 온몸에 묻어도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그것이 조금씩 효과를 거둘 때면 응원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규칙적으로 잠에 들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다시 잠에 든다. 자신에게 알맞은 약의 용량을 찾았고 그녀는 반복해서 일어난다. 일어나기 위해 잠에 드는 상태가 된다. 끔찍했던 상황이 한순간에 안정되진 않겠지만 참혹함에서 한 걸음 떼었다. 나는 과연 어떨까 자문해본다. 나는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기분 좋은 수면은 가장 지켜져야 할 기본 욕구일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린 욕구를 무시하고 허영을 쫓아 달리다 허무함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자살을 하려 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그건 자살과 정반대였다. 나의 동면은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생명을 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p.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