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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부터 낯이 익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어디서 본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혹시나 해서 예전 리뷰를 뒤져보니 '문학과 지성사'에서 선보인 <소설보다>에 수록되었던 작품이었다. 그 때도 <시절과 기분>이 가장 마음에 둔다고 적어두었는데, 좋았던 문장도 당시와 지금이 똑같았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p. 46)
소설은 주인공 '나'의 대학시절 첫 연인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인 혜인과 보낸 과거의 한 시절, 지금의 기분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 '나'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한때 사랑했던 여자가 주는 과거의 아련함과 심장의 떨림은 기차소리와 맞닿아 증폭된다. 심장의 떨림 그 자체인 작품이다. 감정은 휘발되지만 기분은 찜찜하게 붙어있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들인 지워지지 않을 테다. 그 상황이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져 예쁘게 심장을 후벼판다.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 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닿았다 떨어진 가슴의 감촉 역시 여전히 저릿한 감각으로 끈질기게 맴돌았다.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알 수 없는 고동이 기차가 내는 착, 착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 그건 어떤 과거의 회한으로 뻗어나가 겨울날의 술집으로 데려가기도 했고, 가본적 없는 미래의 풍경으로 도약해 가닿기도 했다. 대부분 슬펐지만 어떤 것은 너무 생생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대체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순전하게 기뻐했다. (p. 45)
순전히 누군가가 있어 기뻐했던 사실은 이후 기분이 되어 마음 한 켠에 아릿한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가 느낀 감정은 한 여름의 무르익은 사랑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