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쁨 -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권예슬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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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취향에 '초라함'이라는 딱지는 붙이지 말 것.

때로는 취향이 없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것. (p. 16)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다. 멋있는 장소, 감각적인 전시, 맛이 일품인 식당과 카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여행지… 핸드폰 속 피드는 모르는 이의 취향이 정사각형 사진으로 기록된다. 그들의 안목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론 초라한 내 일상이 부끄럽기도 한 이유는 취향에도 '급'이 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조금 촌스럽고 유행이 민감하지 않아도,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이들은 어엿한 '나만의 취향'이다. 꼭 다르고 특별해야만 취향일까?

 

저자 권예슬은 자신의 취향이 어떤 향기도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움츠러든다. 타인의 취향을 따라 하기엔 멋없어 보이고, 인생작으로 꼽을 만한 예술작품도 떠오르지 않는 평범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그가 취향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멋진 직장 생활과 반대로 망가진 일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즐기지만 어린시절 상장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과거는 '내가 취향을 가꿀만한 재능이 있는가'란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무난하게 어디서나 스미는 사람이란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취향의 기준이 바뀐다. 



나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 환경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결국 모든 화살표가 나에게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쪽의 잘못도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구에게나 빛나는 자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한다. 수많은 행성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뿐. 내면이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면 나에게 꼭 맞는 형태의 빛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가 내 인생의 빛자국들을 자주 기록해 두고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p. 142)



꾸준한 기록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어질러진 일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깨닫는다. 좋은 직장이라도 내가 일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시간을 쪼개 이직을 준비한다. 본인의 경험을 자유롭게 말해달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일기에 썼던 에피소드를 활용해 말할 줄 안다. 주말에는 집을 정돈하고 틈틈이 나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 생활에 애정이 깃들자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취향이자 불행을 피하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내가 직접 고르는 오늘 하루의 내 행복이 취향을, 시야를 확장해간다. 



속도가 다를 뿐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처럼, 부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다르더라도 각자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우리는 결국, 모두 다른 존재들이니까. (p. 121)


마지막으로 혹여나 뚜렷한 취향이 없는 게 고민인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일상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모아보길. 그리고 가끔 엉뚱한 시도도 해보기를. 그런 날의 기록이 삶을 더 찬란하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며.

 

취향은 발굴하는 게 아니다. 스며들어 발현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전염되는 힘, 그것만으로 그의 무색무취는 취향이다. 말간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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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람과 뻔뻔하게 대화하는 법 - 설득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수도 없다
진 마티넷 지음, 김은영 옮김 / 필름(Feelm)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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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Feed the Trolls!"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하고 뒤돌아서 후회한 적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대화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가족, 학교, 직장, 친구와 소통하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사회에 트롤 하나쯤은 있는 법. 저자 '진 마티넷'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트롤들과 유연하게 대처하는 포인트를 10장 걸쳐 소개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작은 세계관 속에 살고있으며 자신의 세계관이 옳다는 확신을 손에 쥔 장치를 통해, 다시 말해 확신을 주도록 미리 프로그램해 둔 장치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한다. (p.11) 

 

사회는 내 활동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나의 작은 세계 속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한다. 설사 방향이 틀렸더라도 쉽게 인정하긴 힘들다. 내겐 그게 정답이니까. 옳다고 믿어왔으니까. 인정하는 순간 나의 지난 잘못을 돌이켜봐야 한다. 두려움은 이곳에서 자란다. SNS의 발달로 나의 작은 세계는 느슨한 경계를 획득했다. 이름(또는 닉네임)만 아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일상을 전시한 사이버 세상은 박탈감마저 준다. 기술은 빠르게 발달했지만 내 세계의 가치관은 한참 뒤처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내 사람들이 믿는 것이다. 내가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라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 우리가 가진 신념 가운데 하나에 도전한다면 전반적 정체성과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식이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P. 38)

 

 

코로나19로 비대면 소통이 정착되자 작은 화면은 또 다른 자아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뉴스보다 피드 속 내용을 진실로 여기게 되었고 작은 세계는 더욱 폐쇄적이게 되었다. 여기서 소통은 잦은 불통으로 이루어진다. 문자로 오가는 건조한 말은 쉽게 상처를 헤집고 오해를 사게 한다. 꼬인 매듭을 풀기엔 멀리 왔다는 듯이.

 

저자는 사이버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그로부터 시작된 꼬인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며 '사람'보단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논란이 되는 대화를 우아하게 빠져나가는 꿀팁을 설명한다. 감정이 상하는 시발점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짚으며 전개될 상황을 예측한다. 저자의 통찰력은 후반부로 향할수록 빛을 발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공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든, 심지어 상대방이 예의를 지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예의를 표해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살펴보자. (P. 215)


- 공격하지 말고 소통하자.

- 수없이 많은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들의 생각에 관심을 갖자.

- 절대 경멸을 드러내지 말자.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예의 차리는 게 익숙지 않은 가족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척에게도 무엇이든 생각해내서 감사를 표하자. 가령, 침대를 정리해 줘서, 불을 피워줘서, 디저트를 만들어줘서, 헤어스타일을 칭찬해 줘서 고맙다고 하자. 

- 감사하자. 감사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감사는 상황을 바꾸어 놓는다. 

- 용서하자.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무술을 배우는 것과 같다. 발전하고 강해지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가족 간에 용서는 행복한 미래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용서는 지혜의 필수요소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어떤 주제로 토론할지는 항상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싫어하는 사람을 따돌리거나 참는 법이 아닌 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은 바꿀 수 있다며 희망을 심어준다. 우린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마주 앉아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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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는 관성 - 딱 그만큼의 긍정과 그만큼의 용기면 충분한 것
김지영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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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대개 행복을 말하는 책은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말 것'으로 끝난다. 한 두 권은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비슷한 유의 수십 수백 권을 읽다 보니 지루해졌다. 이만큼 읽었으면 나도 행복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와 행복을 짓밟아버렸다.

 

책은 저자 김지영이 2018년 2월부터 현재까지 동아일보 <2030세상> 지면에 연재한 칼럼으로 구성됐다. 그녀는 '우리의 삶은 대체로 불행하지만, 종래에는 반드시 행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은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반환점처럼 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은 신선했다. 

 

'행복=관성'이란 답을 얻게 된 이유는 패턴화된 글 때문이다. 칼럼 특성상, 1,500자 5~6개 문단, 독자적 메시지를 담아야 했다. '기-승-전-긍정'으로 매듭짓는 습관은 행복을 낙관하려는 저자의 진심이 담겨 있다. 마지막에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을 하나 더하는 일(p.11)로 행복은 딱 그만큼의 긍정과 딱 그만큼의 용기만 대체로 충분하다는 것(p.11)을 배웠다. 




책은 세 챕터로 구성됐다.

 

‘part1 발견하기’는 별것 아닌 일상에 ‘그래도’를 덧붙인 일화들이 소개된다. 가족, 일상, 공간, 시간, 여행에 대한 추억이 주를 이룬다.

 

세월은 흐르고 오늘은 늘 바쁘다. 가족조차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버거운 현실 속에서 잦은 만남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갈수록 혼자됨이 편해진다. 주기적인 만남과 안부 인사에 지치고 멀어짐에 대한 죄책감이 짐스러워 스스로 완전하기를 택한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순수한 관계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리 잡고 있다. (p. 41~42)

 

별거 아닌 일상일지라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나름의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다. 돌아보면 여행이 좋았던 까닭은 대부분 ‘그때 그 장소’가 아닌 여행 중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 기인했다. 사소하지만 귀한 순간들을 알고 놓치지 않고 기뻐하는 것. 하루하루를 최대한으로 곱씹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놓아주는 것. 요컨대, 설레는 연습.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렇게 수련하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p. 45~46)

 

가끔은 용도 없는 시간도 필요하다. 죄책감 없이 낭비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멍 때리기를 조금 더 격상시켜 표현하면 명상, 사색이다. 비워야 채울 틈이 생긴다. 효율이라는 명목하에 모든 시간을 여백 없이 빼곡히 채우기만 한다면, 그 어느 틈으로도 내적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멍 때리는 뇌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하니, 이제 그만 해묵은 죄책감을 거두어도 되지 않을까. (p. 65)

 

여행이 삶의 환유라면, 인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연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다만 그 길이와 밀도가 다를 뿐. 때문에 ‘어차피 헤어질 건데’라는 말은 사실 모든 인연에 해당되는 숙명과도 같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이니 마음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것, 추억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삶 전반에 대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추억의 가치는 길이에 비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 87)

 

‘part2 정의하기’는 내 식대로의 행복으로 ‘나라는 사람’을 탐구한다. ‘다시 쓰는 백문백답’이란 주제로 어떤 작가, 어떤 노래, 어떤 여행지를 좋아하는지 묻거나 하는 일과 지향점을 토대로 나를 정의해보라는 독자 참여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결국 이 마지막 질문은 ‘내 식대로의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다.

 

혼자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혼자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혼밥이 아프고 외로운 청춘이 아닌 단단하고 건강한 청춘을 상징하는 날이 오길, 그리하여 대수롭지 않은 밥 한 끼가 되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p. 137)

 

내일 뛰더라도 오늘은 멈춰 쉬고 싶은 날이 있다. 매일 쉬지 않고 걷는 삶과 가끔 뛰더라도 종종 멈추어 쉬는 삶.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일 뿐. 그러니 오늘이 혹시 그런 날이라면 오늘 당신,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p. 143)

 

‘part3 유지하기’는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한 순간을 얘기한다. 글 쓰는 자아부터 미래에 대한 고민, 쉼 없이 달려온 지난 나날을 회상하며 기꺼이 내가 됨을 긍정한다. 복잡한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뤄 오늘만큼은 내게 ‘마음 방학’을 선사하는 기쁨과 사색과 명상, 루틴이 주는 안정과 나를 돌려놓는 힘은 그녀가 충분히 건강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극도의 자율 속, 하루를 지키는 것은 결국 사소하고 건강한 루틴이다. 그것들이 모여 단단한 생활을 이루고 나아가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을 알기에,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고 책상 앞에 앉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 위에 선다. (p. 199)

 

아무리 바쁘고 아파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스스로에게 쉼의 기회를 부여하는 일만큼은 소홀해지고 싶지 않다. 대단한 계획도 마음 맞는 동행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새 저물어지는 한 해 동안 여지없이 고생한 스스로에게 그저 약간의 여유를 허락하는 일. 올가을, 거창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낯선 거리를 훌훌 걷는 작은 사치를 누려봄은 어떨지. (p. 202)

 

‘마음 방학’이라는 자체 제도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에 방학을 주는 것인데,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 ‘작전타임’을 외치듯 스스로 부여한다. 원칙은 간단하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최대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염려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잠시 내려놓는다. 내일의 나에게 후일을 맡기고 오로지 ‘지금 나의 기분’만을 생각하는 철없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보는 것.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먹고 싶은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묻는다. (p. 231)

 

 


 

 

자주 울더라도 결국 웃을 것입니다. 대체로 불행하더라도 결국 행복할 것입니다.

고작_______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좀 멋진 일입니다.

 

 

우린 무너지지만 부서지지 않는 담담한 마음을 만들며 살아간다. 행복은 시험처럼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연습을 통해 발견하고 단련을 통해 유지하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일상의 소중함은 ‘평범함=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던 시간과 퇴근 후, 모여앉아 마시는 술 한 잔, 왁자지껄 떠들던 가족 행사와 휴가철이면 떠난 여행까지. 평범해서 지루하다던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만큼 우린 ‘고작 그만큼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고작 그만큼’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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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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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하다 보면 종종 닥치는 모멸의 순간... 여성이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직급이 낮기 때문에, 금력이 없어서...

그럴 때마다 그들처럼 품위 있게 사고하고 그들처럼 우아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유교 사회에서 대개 남성에게만 부여되던 수신이라는 덕목을 매끄럽게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나의 '야망'이라면 야망이겠다. (p. 8)

 

사회에서 모멸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했던 책 속의 여성들이 저자 곽아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과거의 나를 구축했고,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며 미래의 나를 일궜다. 2021년 <조선일보> 최초의 여성 출판팀장이 된 그의 야망은 당장 닥친 일을 수습하고 편안하게 내일을 맞이하는 것. 거창하지 않다. 때론 사표를 던져버리고 싶었고, 실제로도 던지고 대학원이나 해외로 도망쳤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독서’였다.

 

오랫동안 내게 독서란 지식을 쌓기 위한 일도, 즐거움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도피였다.

책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서는 현실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은신처를 찾아가서 책을 읽었다. (p. 25)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고 종이 위 주인공에게 위로를 받던 경험은 나도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는 합리화를 하며 불편함을 외면하려 했던 지난날, 나는 곽아람과 동류(同流)였다. 저자가 동질감을 느낀 여성 주인공과 나도동류(同流)였다.

 

‘가난해져도 나누는 것이 공주’라던 『소공녀』의 세라, ‘사람을 원망하며 내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빙점』의 요코, ‘내 몫의 짐은 내가 든다’고 선언한 『작은 아씨들』의 ,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캐서린, ‘내 우아함은 스스로 성취해야 했다’는 『비커밍』의 미셸 오바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긴즈버그의 말』의 긴즈버그, ‘부모가 만들어준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배움의 발견』의 타라, ‘살아 있다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의 폴리애나까지.

 

고르지 못한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이들을 보며 나도 현실에 발붙일 힘을 가질 수 있었다. 20명의 여성이 가진 공통점은 ‘우아함’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에는 교양이 흘러넘친다. 삶의 존엄이란 ‘누가 지켜줘야 되는’ 수동형이 이니다. ‘내가 지켜야 하는’ 능동형이다.

 

우아함은 교양의 영역에 있다. 부유함이라든가 도회적인 것과는 다른 문제로 어느 정도의 천성과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독서란 교양을 쌓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면서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훈련법이다. (p. 207)

 

 

일에 치이면 순식간에 부당함을 참고 만다. 그것만 참으면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쉽게 지나가니까. 하지만 참을성은 미덕이 아니라서 순간을 모면한 후에 곱씹게 된다. 그때 한 마디라도 할걸, 후회하면서. 저자는 '밥벌이 세계에서 노력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학교는 잘하면 칭찬이 자연스레 따라오지만 회사는 잘했다고 말 한마디 듣기 힘들다. 잘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배려는 아둔함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과 나, 타인과 나 사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점이 독서의 품위다. 오늘도 지식과 태도, 감정과 서사가 내면을 채워 부조리를 감당할 힘을 갖기 위해 저자와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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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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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의 전작인 <명랑한 은둔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 생전, 지독히 그녀를 괴롭힌 거식증은 유년기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 불안정된 마음에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을 수용한 여성의 역사, 계속해서 반복되는 불충분의 톱니바퀴가 주는 위태로운 삶까지 확장된다. 나 역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이기에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녀는 20세기에 태어나 여성인권이 형태를 갖춘 시점에 교육을 받았다. 과거의 여성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산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되어서 오히려 힘들었다고 한다. 격동하는 시대에 자신도 목소리를 내며 거리에 나갔으면 더욱 진취적으로 권리를 쟁취하며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면서.

 

 

 

<욕구들>은 <명랑한 은둔자에 비해 ‘거식증’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된다. 전작은 그녀의 삶을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던 나면 이번에는 여성의 욕구를 부모와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불충분한 애착관계가 향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와 같은 병을 앓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기도 할 것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 거식증을 욕구, 여성이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와 애착관계’로 바라본다면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2장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자신의 상호작용을 되짚는다. 자신이 왜 불충분을 느끼고 있는지, 여전히 어머니를 애증의 관계로 바라보고 독립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는지 낱낱이 서술한다. 나도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부딪힘이 있었던 부분, 여전히 갈등과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 생활 속에서 내가 반복하는 바보짓(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을 ‘감정의 거식증’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분명 가족 역학과 뇌 화학의 지극히 복잡 미묘한 조합에서 생겨났을 내 가장 오래된 기억들은, 관계 맺기의 실패와 허함에 대한 감각, 이름 없고 어쩌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p.23)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힌 거식증은 표면적으로 여성이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미의 기준’ 때문인 것 같지만 그보다 ‘유년기 결핍’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아이의 첫 사회인 가족, 특히 여성이라면 엄마와의 관계가 어긋나버리면 현재의 나도 어딘가 어긋나 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독립’을 강조한다. 특히, k-장녀라는 키워드로 희화화되는 맏딸의 자리는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딱 좋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독립된 인격체로 나아가는 시간, 이것이 나와 엄마를 개별화하고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재확립하며 부적절한 죄책감,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완벽한 부모와 자녀도 존재할 수 없다. 정말 화목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가정은 희박하기 때문에 우린 대부분 얻지 못한 욕구가 존재한다. 그런 건, 연애에서, 친구관계에서, 결혼생활에서 폭발하게 된다.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 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한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위험에 처하게도 만들 수 있다. (P.148)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녀가 거식증으로 깊은 결핍을 표현했다면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패턴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으로는 스트레스성 폭식 또는 단식, 지나친 수면과 무기력, 과소비, 과억제, 지나친 통제 등이 있을 수 있다. 문제점으로 시사될 만큼은 아니더라도 생활에서 내가 되지 말아야 할 인간상을 구축하고 계속 그대로 이행해간다. 살아온 환경은 대부분 바꿀 수 없다. 성격과 행동도 그에 기반하여 생기는 만큼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평화로운 관계는 ‘누군가와 어떻게 지낼지가 아니라 ‘나와 어떻게 지낼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결국 그녀가 다이어를 그만두고 부족함을 직시하고 살아냈던 것처럼. 나는 그녀가 음식과 투쟁을 벌인 게 아니라 덜 자란 어린 나와의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현재를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비록 긴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가열하게 스스로를 연구했던 그녀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자들은 충분히 분노하지 않아요. 여자들이 하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죠.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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