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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캐럴라인 냅의 전작인 <명랑한 은둔자>를 인상 깊게 읽었다. 생전, 지독히 그녀를 괴롭힌 거식증은 유년기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 불안정된 마음에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을 수용한 여성의 역사, 계속해서 반복되는 불충분의 톱니바퀴가 주는 위태로운 삶까지 확장된다. 나 역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이기에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녀는 20세기에 태어나 여성인권이 형태를 갖춘 시점에 교육을 받았다. 과거의 여성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산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되어서 오히려 힘들었다고 한다. 격동하는 시대에 자신도 목소리를 내며 거리에 나갔으면 더욱 진취적으로 권리를 쟁취하며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면서.
<욕구들>은 <명랑한 은둔자에 비해 ‘거식증’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된다. 전작은 그녀의 삶을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던 나면 이번에는 여성의 욕구를 부모와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불충분한 애착관계가 향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와 같은 병을 앓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기도 할 것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 거식증을 욕구, 여성이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와 애착관계’로 바라본다면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2장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자신의 상호작용을 되짚는다. 자신이 왜 불충분을 느끼고 있는지, 여전히 어머니를 애증의 관계로 바라보고 독립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는지 낱낱이 서술한다. 나도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부딪힘이 있었던 부분, 여전히 갈등과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 생활 속에서 내가 반복하는 바보짓(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을 ‘감정의 거식증’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분명 가족 역학과 뇌 화학의 지극히 복잡 미묘한 조합에서 생겨났을 내 가장 오래된 기억들은, 관계 맺기의 실패와 허함에 대한 감각, 이름 없고 어쩌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p.23)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힌 거식증은 표면적으로 여성이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미의 기준’ 때문인 것 같지만 그보다 ‘유년기 결핍’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아이의 첫 사회인 가족, 특히 여성이라면 엄마와의 관계가 어긋나버리면 현재의 나도 어딘가 어긋나 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독립’을 강조한다. 특히, k-장녀라는 키워드로 희화화되는 맏딸의 자리는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딱 좋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독립된 인격체로 나아가는 시간, 이것이 나와 엄마를 개별화하고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재확립하며 부적절한 죄책감,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완벽한 부모와 자녀도 존재할 수 없다. 정말 화목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가정은 희박하기 때문에 우린 대부분 얻지 못한 욕구가 존재한다. 그런 건, 연애에서, 친구관계에서, 결혼생활에서 폭발하게 된다.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 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한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위험에 처하게도 만들 수 있다. (P.148)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녀가 거식증으로 깊은 결핍을 표현했다면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패턴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으로는 스트레스성 폭식 또는 단식, 지나친 수면과 무기력, 과소비, 과억제, 지나친 통제 등이 있을 수 있다. 문제점으로 시사될 만큼은 아니더라도 생활에서 내가 되지 말아야 할 인간상을 구축하고 계속 그대로 이행해간다. 살아온 환경은 대부분 바꿀 수 없다. 성격과 행동도 그에 기반하여 생기는 만큼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평화로운 관계는 ‘누군가와 어떻게 지낼지가 아니라 ‘나와 어떻게 지낼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결국 그녀가 다이어를 그만두고 부족함을 직시하고 살아냈던 것처럼. 나는 그녀가 음식과 투쟁을 벌인 게 아니라 덜 자란 어린 나와의 투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현재를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비록 긴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가열하게 스스로를 연구했던 그녀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자들은 충분히 분노하지 않아요. 여자들이 하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죠.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