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기쁨 -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권예슬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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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취향에 '초라함'이라는 딱지는 붙이지 말 것.

때로는 취향이 없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것. (p. 16)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다. 멋있는 장소, 감각적인 전시, 맛이 일품인 식당과 카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여행지… 핸드폰 속 피드는 모르는 이의 취향이 정사각형 사진으로 기록된다. 그들의 안목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론 초라한 내 일상이 부끄럽기도 한 이유는 취향에도 '급'이 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조금 촌스럽고 유행이 민감하지 않아도,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이들은 어엿한 '나만의 취향'이다. 꼭 다르고 특별해야만 취향일까?

 

저자 권예슬은 자신의 취향이 어떤 향기도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움츠러든다. 타인의 취향을 따라 하기엔 멋없어 보이고, 인생작으로 꼽을 만한 예술작품도 떠오르지 않는 평범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그가 취향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멋진 직장 생활과 반대로 망가진 일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즐기지만 어린시절 상장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과거는 '내가 취향을 가꿀만한 재능이 있는가'란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무난하게 어디서나 스미는 사람이란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취향의 기준이 바뀐다. 



나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 환경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결국 모든 화살표가 나에게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쪽의 잘못도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구에게나 빛나는 자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자 한다. 수많은 행성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뿐. 내면이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면 나에게 꼭 맞는 형태의 빛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가 내 인생의 빛자국들을 자주 기록해 두고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p. 142)



꾸준한 기록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어질러진 일상의 원인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깨닫는다. 좋은 직장이라도 내가 일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시간을 쪼개 이직을 준비한다. 본인의 경험을 자유롭게 말해달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일기에 썼던 에피소드를 활용해 말할 줄 안다. 주말에는 집을 정돈하고 틈틈이 나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 생활에 애정이 깃들자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취향이자 불행을 피하는 방식임을 알게 된다. 내가 직접 고르는 오늘 하루의 내 행복이 취향을, 시야를 확장해간다. 



속도가 다를 뿐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처럼, 부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다르더라도 각자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우리는 결국, 모두 다른 존재들이니까. (p. 121)


마지막으로 혹여나 뚜렷한 취향이 없는 게 고민인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일상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모아보길. 그리고 가끔 엉뚱한 시도도 해보기를. 그런 날의 기록이 삶을 더 찬란하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며.

 

취향은 발굴하는 게 아니다. 스며들어 발현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전염되는 힘, 그것만으로 그의 무색무취는 취향이다. 말간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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