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곽아람 지음, 우지현 그림 / 이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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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하다 보면 종종 닥치는 모멸의 순간... 여성이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직급이 낮기 때문에, 금력이 없어서...

그럴 때마다 그들처럼 품위 있게 사고하고 그들처럼 우아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유교 사회에서 대개 남성에게만 부여되던 수신이라는 덕목을 매끄럽게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나의 '야망'이라면 야망이겠다. (p. 8)

 

사회에서 모멸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했던 책 속의 여성들이 저자 곽아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과거의 나를 구축했고,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며 미래의 나를 일궜다. 2021년 <조선일보> 최초의 여성 출판팀장이 된 그의 야망은 당장 닥친 일을 수습하고 편안하게 내일을 맞이하는 것. 거창하지 않다. 때론 사표를 던져버리고 싶었고, 실제로도 던지고 대학원이나 해외로 도망쳤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독서’였다.

 

오랫동안 내게 독서란 지식을 쌓기 위한 일도, 즐거움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도피였다.

책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서는 현실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은신처를 찾아가서 책을 읽었다. (p. 25)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고 종이 위 주인공에게 위로를 받던 경험은 나도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는 합리화를 하며 불편함을 외면하려 했던 지난날, 나는 곽아람과 동류(同流)였다. 저자가 동질감을 느낀 여성 주인공과 나도동류(同流)였다.

 

‘가난해져도 나누는 것이 공주’라던 『소공녀』의 세라, ‘사람을 원망하며 내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빙점』의 요코, ‘내 몫의 짐은 내가 든다’고 선언한 『작은 아씨들』의 ,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캐서린, ‘내 우아함은 스스로 성취해야 했다’는 『비커밍』의 미셸 오바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긴즈버그의 말』의 긴즈버그, ‘부모가 만들어준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배움의 발견』의 타라, ‘살아 있다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폴리애나의 기쁨 놀이』의 폴리애나까지.

 

고르지 못한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이들을 보며 나도 현실에 발붙일 힘을 가질 수 있었다. 20명의 여성이 가진 공통점은 ‘우아함’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에는 교양이 흘러넘친다. 삶의 존엄이란 ‘누가 지켜줘야 되는’ 수동형이 이니다. ‘내가 지켜야 하는’ 능동형이다.

 

우아함은 교양의 영역에 있다. 부유함이라든가 도회적인 것과는 다른 문제로 어느 정도의 천성과 어느 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독서란 교양을 쌓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면서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훈련법이다. (p. 207)

 

 

일에 치이면 순식간에 부당함을 참고 만다. 그것만 참으면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쉽게 지나가니까. 하지만 참을성은 미덕이 아니라서 순간을 모면한 후에 곱씹게 된다. 그때 한 마디라도 할걸, 후회하면서. 저자는 '밥벌이 세계에서 노력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학교는 잘하면 칭찬이 자연스레 따라오지만 회사는 잘했다고 말 한마디 듣기 힘들다. 잘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배려는 아둔함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과 나, 타인과 나 사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점이 독서의 품위다. 오늘도 지식과 태도, 감정과 서사가 내면을 채워 부조리를 감당할 힘을 갖기 위해 저자와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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