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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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우리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가끔 내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해 보기도 한다.

"장민혁"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민혁"은 성우 장민혁 님이다.

그리고 권투선수, 작가 등 몇 명 나오는데 감사하게도 그 끄트머리에 나도 살짝 나온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뭔가 민망한 소개이긴 한데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내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상상할까.


살면서 이름을 그렇게 자주 쓰면서도 정작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다.

그냥 당연히 불리는 것, 나를 지칭하는 단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한자어로 풀면 어떤 의미를 가지는 단어.


그런데 이 책 <이름의 빈자리에>는 바로 그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두는 가장 오래된 끈이지 않을까?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책은 이름 없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 <송곳니> 속 아이들은 이름도, 세상을 이해할 언어도 없이 자란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일이 아니다.

자신을 설명할 방법이 없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할 경계도 사라진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도 마찬가지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해줘야 하는 첫 번째의 일, 가장 기본이 되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크리처가 괴물이 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잖은가."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묘했다.

그랬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는 아담과 하외를 만들고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담과 하와가 자연을 다스리라고 하며 받은 첫 임무도 그것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군가를 함부로 괴물이라 부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은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이름을 불려본 적이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나 할 거 없이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 세상에 등록된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선언과도 같다.



사랑 :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


책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준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이름을 글자로 쓸 때와 입 밖으로 낼 때의 감정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 보인다.

저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윤희에게>, <늦가을 무민 골짜기> 같은 작품을 통해 이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보여준다.


"한 존재를 내 속으로 받아들이는 엄청난 일, 나를 한 존재의 속으로 온전히 들이미는 일."


생각해 보면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이름을 자주 부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 사람을 내 세계 안으로 초대하는 일.


그것이 아마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으로 남는 존재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가장 먼저 남는 것이 이름이다.

사진도 흐려지고 기억도 희미해지지만 이름은 이상하게 끝까지 남는다.


김소월의 <초혼>을 떠올리며 저자는 말한다.


"부르다가 죽을 이름을, 어쩌면 부르다가, 부르다가 내가 살 이름을."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옛날 사진을 보다 '고양이'하고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갓난아기의 아이와 그 옆에 얌전히 앉아 아이를 지켜보던 우리 짱고.


'은우야, 저 고양이는 짱고라고 해. 은우 어릴 때 짱고랑 많이 같이 놀았어.'

'짱고 짱고'


그리고 아이는 그 고양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짱고!'라고 부른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헤어진다. 사람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다.

그리고 떠난 존재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온다.


아이가 '짱고'라고 부를 때마다

짱고가 잠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름은 기억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름에 가까워지고 있나요?


우리는 태어날 때 누군가로부터 이름을 얻지만, 정작 그 이름의 주인이 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누군가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새 이름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무엇이 됐든 결국 우리는 어떠한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 이름으로 사랑받고, 상처받고, 일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이름의 빈자리에>는 그 이름에 관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면 어떤 이름으로 기억할 것인가.


책을 덮고 또 한 번 내 이름을 검색창에 검색해 보았다.


평생 써온 이름인데도 조금 낯설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름에 가까워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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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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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이팝을 좋아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케이팝을 잘 모른다.

누군가는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몇 세대 아이돌이니 하는 말도 낯설고 팬덤의 문법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 <펑펑>의 표지를 봤을 때 이걸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별 걱정을 하며 책장을 펼치긴 했는데 생각보다 책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조금 어릴 것 같아 보이는 저자는 케이팝을 이야기하며 예능에서나 보던 이름들과 더불어 우리 세대의 아이돌까지 소환해 내는데 외국어로 뒤범벅이 된 글자들 사이에 아는 영단에 몇 개를 찾아낸 것처럼 반가웠고, 또 아는 이름들이 나오자 책은 꽤 즐겁게 읽히기도 했다.


사실 우리 나이쯤 되면 케이팝을 입에 올리고 팬을 자청하는 것이 조금 민망스럽다.

이미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린 케이팝의 이면을 봐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무대 앞에서 열광하는 건 왠지 어른의 태도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또한 거대한 편견이다. 인정)


재밌는 건 저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케이팝의 산업구조의 문제는 문제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며 울었던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맞다. 사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해 사달이 나는 경우가 우리 삶에는 꽤 많다.



2. 케이팝을 통해 바라본 세상


초반부가 케이팝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 아이돌이 어떤 시선 속에서 소비되는지,

왜 누군가는 노래보다 몸매를 먼저 평가하는지,

팬덤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이야기한다.


이전에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2NE1의 팬클럽이 기후 위기를 위한 모금활동과 기부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일련의 활동을 지근거리에서 보며 팬덤이라는 게 단순히 앨범을 사고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제 팬덤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세상을 읽고, 사회를 읽고, 자기 자신을 읽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의 스타가 연예산업의 소모품으로 사라지는 걸 거부한다.

팬의 이름으로 이 구조를 바꾸고,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하는 일에 일조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보니 이들이 조금 달라 보이기도 했다.

뭔가 존경스럽기도 했고.



3. 낭만에 대하여


나는 어린 시절 리어카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대중가요를 배웠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면 꼭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순서대로 들었다.

(사실 테이프는 여기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끝까지 들을 뿐)

재킷을 펼쳐보고 가사를 읽고, 왜 이 노래가 1번 트랙인지, 왜 저 노래가 마지막 곡인지 혼자 상상하곤 했고 어쩌다 이에 관한 기사라든지 인터뷰를 볼 때면 혼자 흐뭇해하곤 했다.


그렇게 앨범을 꽉 채운 아티스트의 취향과 선택을 들으며 그를 이해하기도 했고 그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유튜브 스트리밍이 어색하다.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한다치면 CD나 LP를 더 찾고,

디지털 싱글이니 뭐니 하면 괜히 섭섭해진다.


이 책은 케이팝 이야기를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음악을 사랑하던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자꾸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괜히 다시 처박아 놓은 LP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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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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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다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했다. 꽤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그 수많은 배움에도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

하필이면 선거철이다. 누군가 세상은 계속 진보한다고 했지만 그 선언이 무색하게 자꾸 뒤로만 가고 있는 공약들을 보는 것이 힘겹기도 하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집으로 배달되어 온 공보물에는 모두가 노동을 이야기하고, 복지를 이야기하고, 청년과 주거를 이야기하는데 자신이 약속하고 있는 공약이

이전에 한번 실패했거나 상대측의 공약이라거나 혹은 자기 진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약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더 심각한 건 선거 이후 누가 당선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한 약속을 너무 쉽게 잊고 4년 뒤에 똑같은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더 큰 문제는 이걸 우리도 잊는다는 점이다.


한겨레 기자로 오래 일해온 이창곤의 책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는 이 문제를 마주한다.

정책이라는 키워드로 정치를 둘러싼 생태계 전체를 톱아보며 우리에게 정책은 왜 늘 실패하는지를 풀어낸다.



정책 생태계


그는 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을 시민이 배제된 채 움직이는 폐쇄적 정책 생태계에서 찾는다.


사실 우리는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복지 예산이 왜 늘거나 줄어드는지, 교육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행되는지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행여 유난한 사람이 이 과정을 알라치면 지난한 과정이 따라온다.


기자로써 이러한 일을 우리 대신해왔던 저자는 대통령과 관료, 정당, 언론, 시민단체, 기업 등 다양한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이야를 들려준다.

그리고 권력이 특정 집단에 집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부는데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시민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이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멀어지는지 들려준다.



정치와 언론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칼럼들도 꽤 찾아보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정당이나 언론에도 있는데


첫째, 그는 정당에 관해 이야기하며 한국 정치는 왜 정책 중심으로 움직이지 못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사람을 뽑지 정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누가 더 좋은 비전을 제시하는지 보다 누가 더 강한 사람인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 버린 선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둘째, 우리는 언론이 정책을 감시한다고 배웠는데 실제로 요즘은 언론은 클릭 수에 더 관심이 많다.

정치적 갈등이나 싸구려 정쟁은 늘 정책을 뒷자리로 밀어버리고 이런 제목뿐인 이슈를 모든 언론은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논쟁은 설자리를 잃는다.

설령 이에 집중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아마 구글링 가장 끝자락에서 그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좋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저자가 복지를 전공한 것 같지는 않는데 의외로 그는 복지정책에도 깊이 관여한다.

커뮤니티 케어. 즉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체계를 말한다.


언뜻 들으면 너무 당연하고 좋은 이야기 같지만 이 정책은 아직도 제대로 된 기틀을 잡지도 못했다.

기존에 이 업에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예산, 제도의 벽은 기득권이 되어 정책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복지현장의 변화를 열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기득권의 벽은 이들이 넘기에는 굉장히 큰 산으로 존재한다.


아마도 좋은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의 기득권을 깨고 움직일 사람들의 조직화된 힘이 없어서.

어쩌면 이것 또한 결국 사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할까


저자는 이 정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민의회와 공론장, 장기 국가 비전과 같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이런 제도들도 필요하지만 결국 남는 질문은 이거다.


당신은 정책의 소비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정책의 주체가 될 것인가.


성숙한 시민사회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거철에만 분노하고 투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후보의 공약을 읽고, 언론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와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쌓여야 한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길 기다리는 사회 보다 함께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정답을 외치는 사람보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은 사회.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좋은 정책은 좋은 시민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은 묻는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자.


당신은 좋은 시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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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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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외울 때, 길이 보인다


이다혜 작가를 좋아한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도, 책 이야기를 할 때도, 사람 이야기를 할 때도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좋다.

이다혜 작가의 글이 딱 그렇다. 지나치게 냉소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팔지도 않는다.


그래서인가. 책 이야기를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사람으로 그의 첫 책 <책 읽기 좋은 날>은 지금도 내가 추천하는 책 제일 위 칸에 있다.

그의 책을 만나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출근길의 주문>도 그랬다.


몰랐는데 7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온 책이다.

커버에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책으로 소개되지만, 사실은 오래 일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에 가깝다.


언어와 관계, 마음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읽다 보면 누군가의 성공담보다 실패담과 고민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언젠가부터 달게 된 시니어의 직책.

권한은 많지 않은데 책임은 늘어나는 시기.

많다고 생각했던 후배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떠나고 그에 반해 조직은 움직이지 않는, 그 답답한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자꾸만 지치고 흔들린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언어 – 라뗴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언어다.


우리는 일을 배우지만 말하는 법은 잘 배우지 못한다.

특히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다혜 작가는 쿠션어와 스몰토크, 호칭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직설적인 말이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요점만 말하는 것이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직언이 누군가에게는 압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조금 다르게 말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들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소위 말하는 '잘'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네트워크 –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일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일하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경험이다.


책은 여성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조금 더 조언한다.

업계를 넘고 세대를 넘는 관계를 만들라고 권한다.


나도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떠나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

힘든 시기에 마음을 터놓고 물어보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터에서 만났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던 사람들이다.



마인드셋 – 오래달리기 위한 마음의 체력


지금 가장 고민하고 또 공부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번아웃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늘 더 빨리 가야 한다고 배운다.

더 성장해야 하고, 더 성과를 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 즉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일단 해보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도 대부분 그랬다.

사회복지사에서 NGO 마케터가 된 일도, 블로그를 시작한 일도, 브런치에 글을 쓰려 했던 일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한번 해본 일이었다.

생각보다 인생은 준비된 사람보다 먼저 손을 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다.



커리어 – 오래 일하는 사람의 비밀


이 책의 제목은 <출근길의 주문>이다.


왜 하필 주문일까.


그가 말하는 주문은 마법이 아니다. 현실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꺼내 읽게 되는 문장 혹은 루틴 같은 것이다.


다들 성공을 말하는 시대에 이 책은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일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버티는 법을 이야기하고, 함께 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오래 일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 것.

혼자만 잘하려 하지 말 것.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 일할 것.


이 주문이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길.

꽤 뿌듯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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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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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의미


최근에는 좀 지양하는 분위기지만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 순간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인사와 동시에 서열과 호칭, 관계의 방식이 정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않았던 그 장면을 다시 보게 한다

저자는 <나이 묻는 사회>에서 노인을 "틀딱충", 청년을 "급식충"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을 톺아보고 한국 사회에 깊게 스며든 연령주의와 연령차별주의를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이를 이해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누군가를 더 빠르게 분류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세대를 향한 수많은 말들은 한국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소비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다.



멸칭은 왜 생겼으며 무엇을 겨누는가


책은 이런 멸칭의 발생과 진화를 단순한 언어 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바라본다.

이 멸칭은 계속해서 진화하는데 '영포티', '젊꼰'같이 세대별로 생산된 수많은 표현들은 결국 특정 연령대를 웃음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노인은 시대에 뒤처진 존재, 청년은 무능한 세대,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표현된다.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해온 사회, 그리고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는 이를 비꼬는 인터넷 밈을 타고 나이를 삶의 과정이 아닌 평가의 기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도 생산되는 이 멸칭들은 특정 세대를 향한 농담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쓸모로 판단하려는 사회의 오래된 습관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이로 규정되는 삶의 경계와 제도적 차별


이렇게 저자는 멸칭의 문제를 언어에서 끝내지 않고 제도와 구조로 확장해 보여준다.

정년제, 임금피크제,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처럼 우리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아래 노년은 쇠퇴로, 어린 세대는 미성숙으로 쉽게 규정된다.


심지어 "젊으니까 괜찮다", "나이 들었으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식의 사고는 각종 주거 정책과 제도 안에도 스며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들이 단순한 구분을 넘어 세대 간 단절과 혐오를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원래 삶의 흐름을 설명하는 정보일 뿐인데, 어느새 기회와 권리, 자원의 배분 기준이 되어버렸다.


책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는다.

나이가 사람을 설명하는 요소일 수는 있어도,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연대의 조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나이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책은 문제를 세대 간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그 실마리를 찾는다.

서로 다른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 어린 세대와 노년 세대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구조, 그리고 교과서와 미디어 속 부정적 언어를 바꾸는 일.


결국 중요한 것은 접촉과 경험이다.

자주 만나고, 함께 살아보고, 서로를 이야기 속 대상이 아니라 실제 얼굴로 마주할 때 편견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세대를 향한 혐오는 대개 경험 부족에서 시작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 그 사랑을 알고 있는 아이는 그렇게 쉽게 노인세대를 재단하지 못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선을 긋는 사회보다,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려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숫자인가, 경계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한번쯤은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는 그 숫자 위에 너무 많은 편견과 기대, 역할을 덧씌우며 살아간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시대에 뒤처진 존재로 여기고, 어리다는 이유로 가볍게 소비하는 순간,

언젠가 우리는 그 칼날이 내게도 돌아오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두는 늙고, 한때는 어린아이였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왜 나이를 묻는가. 이해하기 위해서인가, 구분하기 위해서인가.

책을 덮고 나면 그 익숙한 질문 하나의 무게가 좀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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